프롤로그-줄리엣의 장미처럼

by 북도슨트 임리나


줄리엣의 장미처럼



"김지온~"


나는 출석부를 보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요새 따라 노안이 심해진 탓인지 가끔 비슷한 모음이 헷갈렸다. 그래서 더 주의 깊게 이름을 봤고, 보통 흔히 쓰는 '지은'이 아니라 '지온'인 것을 확인하고 정확히 '지온'이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아이한테 말을 걸었다.


"지온인데 사람들이 지은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겠다."


"맞아요~저 지온이에요."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느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점점 기억력이 쇠퇴해지는 나이 탓도 있어서 아이들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라도 꼬박꼬박 출석을 부르며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걸어보려고 노력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기억해 주고 싶고, 또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다.



이쯤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대사가 떠올랐다.


'장미를 장미로 부르지 않더라도 향기는 마찬가지지요.'라고, 로미오와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게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집안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을 빗대어 말했다.



'너를 지온이라 부르든 지은이라 부르든 예쁘고 적극적인 그 모습은 그대로일 거야.'


라고 속으로 말해주었다.


언젠가 내가 지온이라는 이름을 잊더라도 장미가 이름이 없어도 여전히 향기는 같은 것처럼 지온이에 대한 그 무엇인가를 기억할 것이다.



이름 모르는 꽃을 기억하는 방법


지온이만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 이름을 잊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한 송이 꽃으로 남아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꽃'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름을 몰라 부르지 못해도 그들은 분명히 누군가에겐 혹은 스스로 '꽃'이었을 것이다.


또 한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꽃이 된' 시절이 있었지만, 그 시절이 지나 더 이상 부르지 못하게 되고 이름을 잊은 '꽃'도 있다.


'꽃'으로 기억하고 싶어도 세월의 흐름에는 속절없이 '무명'으로 휘발되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오히려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보다 나에게 많은 감사함과 때로는 분노도 안겨주었다. 단지,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로 혹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이야기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혹은 이름은 잊었지만 나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사람들', 그들과 짧은 순간 혹은 긴 세월 함께 했음은 분명하다.



나이가 들면 꽃을 들여다보고 꽃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꽃이 좋아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이 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 아닐까.


<<인도방랑>>(2009)에서 '여자와 죽은 사람에게 꽃이 잘 어울린다'라는 글을 보고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관 속에 가득 들어있던 꽃을 떠올렸다. 그 꽃이 꽃이 아니라 시아버님의 기억에 남아 있는 꽃 같은 사람들이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사람이 꼭 지고 피는 '꽃'같기도 하다. 꽃이 피는 시기는 짧지만, 그 꽃을 피우기 위해 보낸 세월과 또 꽃이 지고도 잎과 열매로 이어지는 세월은 꽃이란 전성기보다 훨씬 길다. 전성기를 지나야만 전성기의 아름다움을 알 듯, 꽃이 진다는 걸 알아야 꽃이 아름답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름은 모르지만 혹은 잊었지만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그들을 위해 '이름 모르는 꽃을 기억하는 법' 이라는 글을 남기려고 한다. 그대들이 나의 꽃이었다면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은 그 꽃을 내 마음속에 담아둔 한 장의 사진이라고, 이제 이마를 맞대고 그 사진을 함께 보자고 말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