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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Jan 20. 2024

첫 번째 퇴고는 '구성'을 수정하는 것부터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구성(플롯)은
왜 일어났는지를 말해준다.
-E.M 포스터


나는 읽기와 쓰기를 함께 가르치며 쓰기는 '개별첨삭'으로 진행한다.

글쓰기란 가장 사적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매뉴얼로 가르친다는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우울증이라고 진단하면 똑같은 약을 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증상은 같더라도 원인이 다르다는 것이다.

시험 성적이 떨어져서, 연인과 헤어져서, 폭행을 당해서, 회사에서 왕따를 당해서 등등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약으로 증상은 가라앉힐 수 있지만 그 원인까지 돌아보고 마음을 치료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누군가 나에게 막연히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나요?'라고 묻는다면

우선 '많이 읽으세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마치 우울증 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처방하듯이.


그러나 강의에서는 첨삭지도를 하기 전에 '왜 글을 쓰는지?' 묻는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 오로지 둘이 대화하게 될 때.

글쓰기도 글쓰기를 최종 종착지로 생각하는지 거쳐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지 등등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개인이 흥미를 갖는 장르도 다르고 써야 하는 매체도 다르다. 글쓰기를 한다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책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지금은 중요해 보여도 살다 보면 뒷전으로 밀리는 때도 온다.

하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글쓰기가 중요하고 당장 배워야 할 것처럼 가르치려 하지만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배우는 사람의 이유, 입장, 상황을 고려해서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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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글이라도 좋으니 우선 초고를 가져오라고 한다.

초고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또 대화를 한다.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

글로만 읽을 때는 몰랐던 글쓴이의 진짜 의도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함께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떻게 하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쓸 수 있을지 어떤 내용이 더 들어가고 빠져야 할지

이야기의 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무엇을 써야 할지.

구성이 제대로 되어야 그 이후에 문장을 고칠 수 있다.

그러니까 초고의 글만 보고 지도한다면 그저 글자체의 부족함에 대해서밖에 지적할 것이 없다.

우선 '진짜 쓰고 싶은 것'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다.


구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 내용이 아니다.

이야기의 내용을 포함한 배열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처음에 들어갔을 경우와 뒤에 들어갔을 경우에 따라 글이 많이 달라진다. 그렇게 달라지면 그에 맞게 들어가고 빠져야 할 이야기들이 또 달라진다.


범인을 심문할 때 처음에는 이야기 순서대로 듣지만 진짜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갑자기 순서를 바꿔서 질문한다고 한다. 그랬을 경우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라서 순서를 바꾸면 앞뒤가 틀어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글을 쓸 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순서를 바꾸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진실'이 튀어나올 수 있다고. 그래서 이야기가 더 생생하고 촘촘해질 수 있다고.

'구성'을 고민하는 이유는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 즉, 독자를 위해서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결코 시간의 순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물도 처음에는 자세하게 소개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출근하다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회사에 늦었어.'

라고 말하기보다

'회사에 늦었잖아!!! 멀쩡하던 엘리베이터가 왜 하필이면 내가 나올 때 고장이 나는 거냐고.'

이렇게 말한다.

듣는 사람이 반응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럼 그전에는 엘리베이터가 문제없었던 거야?'라고 묻게 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소설만 플롯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에세이도 구성이 중요하다. 제목도 중요하다. 그리고 화자(시점)도 중요하다.


그래서 초고를 쓰고 난 후에 점검해야 할 것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이 구성이 효과적인가라는 것이다.

만약에 효과적이지 않다면 같은 내용으로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수도 있다.


구성이란 정말 다양하다. 시간적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법부터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법도 있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전결'이 될 수도 있고 '결기승전'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의심 없이 믿어온 '기승전결'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나는 상당히 재미있고 신기한 형식을 발견했는데 코맥 매카시의 소설 <<핏빛 자오선>>은 소설 시작에 구성을 개요로 보여주고 있었다.

<<핏빛 자오선>>의 시작 부분-알라딘 미리보기 캡쳐


나도 이 글을 쓸 때, 구성을 고민해서 인용구-제목 이미지-내용-결론 이런 구성을 짰고, 첫회부터 이 구성으로 쓰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의 1단계는 '구성'이고

초고를 쓴 후에 가장 먼저 수정을 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구성(플롯)이다.


그러면 에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설은 초고를 쓴 후에도 구성을 위해 정말 많이 수정해야 한다.

다만 감사한 것은 컴퓨터가 탄생한 이후 손으로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대학교 교지에 단편소설을 응모할 때 원고지 60매를 손으로 여섯 번 쓴 기억이 난다.  당선되어 그 당선금으로 전자 타자기를 구입했다. 덕분에 손으로 쓰는 그 힘든 과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컴퓨터 덕분에 더 효과적인 구성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에 더욱 구성에 공을 들여야 하고, 그 구성에서 나의 개성이 드러나고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기에 오늘도 나는 구성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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