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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Mar 08. 2024

글이 삶을 넘을 수 없다

우리는 예술가들 작품만이 아니라 삶을 접할 때 예술가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삶을 바라본다.

예술가들이 살았던 파란만장한 삶은 당연히 예술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그 덕분에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늘 그런 삶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예술가이기 전에 한 인간이라면 비난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가족을 괴롭혔을 그런 예술가 삶을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닌가 하고.

반대로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간 예술가들도 있다. 그러나 그 삶은 회자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윌리엄 케인은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 에서

'사람들은 불행한 예술가 삶이 위대한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인생을 더 잘 살았다면 훌륭한 작품을 더 많이 만들었다'는 취지로 이야기한다.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한다.


나는 글보다 삶이 먼저라는 생각을 늘 해왔고 글쓰기 수업을 할 때도 글보다 삶이 먼저라고 했다.

오늘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인데 글을 쓰기보다는 음식을 구하러 나가야 한다고.


지식의 저주만큼이나 나는 '가르침의 저주'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수업만 해도 그렇다.

수강생들은 '글을 잘 쓰고 싶다'라고 찾아오고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글 잘 쓰는 것'을 가르친다.

이 과정이 무엇이 문제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래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드러나는 욕망은 늘 정확하지 않다.

내가 무언가를 바란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속마음에서 바라고 있는 무언가를 알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돈을 벌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 '내 기록을 남기고 싶다.' 등등.

진짜 욕구는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꼭 처음에 '왜 글을 쓰는지?' 묻는다.

그리고 글쓰기를 가르치면서도 글 실력보다 삶이 달라지고 있는지 관찰한다.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글이 달라지지 않는다.

글쓰기는 정확하게 삶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는 그만두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글을 평생 써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스쳐가는 취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취미가 삶에 어느 한순간 도움이 된다면 글쓰기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오래 가르치며 지켜본다.

그러다 보면 짧게는 3개월 정도지만 길게는 1-2년을 지켜보면 삶의 궤적들이 바뀌는 상황들을 본다.


나는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도 또 같이 글을 쓰는 분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글쓰기, 삶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글은 삶을 넘을 수 없다. 그리고 넘어서도 안된다.

글쓰기를 위해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바뀌어 글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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