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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Dec 27. 2023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배우는 글쓰기 수업

끌리는 제목 울리는 문장 수업

교육의 전체 목적은
거울을 창문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시드니 J 해리스



나는 글쓰기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성인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도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글쓰기를 '완벽'하게 가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글쓰기를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글쓰기는 개인의 고유의 영역이고 또 그 개성을 백분 활용해야 좋은 글쓰기이므로 타인에게 배우는 것은 오히려 가능성을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고, 나는 그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맞춤법, 원고지 사용법, 비문법적 문장 고치기 등의 테크닉적인 부분은 당연히 배워야 하지만 그 외의 '영감을 얻는 것',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 '자신의 글의 적합한 장르를 고르는 것' 등은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의 시작은 가르치기가 아니라 '함께 쓰기'였다. 글쓰기는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그림책으로 날 위한 글쓰기'로 '그날그날 글쓰기 1기'였다.

한 달 동안 주 5일, 그림책으로 글쓰기를 SNS에 올리고 공유하는 식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오픈 챗방에서 글쓰기에 대한 궁금증,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제안 등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 기회를 통해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궁금증, 또 내가 작가로서 체득해서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을 이제 막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책 제목은 책이 출간되기 직전까지 정해지지 않으며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인쇄 직전까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 또 책이 편집자의 손을 거치며 많은 부분이 수정되기도 한다는 것, 책이 출간되더라도 홍보가 어렵다는 것 등등.


그렇게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고,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것을 가르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강의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혹은 강의를 듣고 '배웠다'라는 느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글을 쓸 수 있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개별첨삭'이었다. 물론 이 강의는 대형 강의로는 불가능하고, 단발적인 강의로는 불가능하다.

10명 내외의 소규모여야 하며 최소 4주 이상의 강의여야 했다.

그리고 글쓰기 강의에서 쓰기만이 아니라 '읽기'또한 같이 해야만 글쓰기가 향상되기에 '읽기'도 강의에 필수다.

그러다 보니 수강생들은 책을 읽어야지, 글도 써야지 무척 바쁘다. 그러나 다들 자신의 글쓰기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만족했다. 운동도 P.T가 있듯이 글쓰기도 퍼스널 트레이너(티쳐)가 필요하다.


현재 나는 <글쓰기>, <서평 쓰기>, <그림으로 글쓰기> 등 글쓰기자체만이 아니라 글쓰기와 다른 장르와 결합한 글쓰기도 강의하고 있다.


강의를 할 때면 나는 꼭 '빵 굽기'로 예를 들어 글쓰기를 배우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서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는데 내용은 이렇다.


시어머니의 빵이 맛있어서 배우고 싶은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한다.

시어머니는 꼼꼼하게 레시피를 다 적어서 알려준다.

그러나 며느리는 레시피대로 했지만 여전히 빵의 맛이 달랐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빵 굽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딱 한 가지가 달랐다.

시어머니는 반죽을 한 후에 반을 잘라서 오븐을 넣는 게 아닌가.

자신에게 적어준 레시피에는 반을 자르라는 부분이 없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왜 저한테는 반으로 자르라는 걸 안 가르쳐줬어요?"

"너네 오븐은 크잖니."


이 빵 굽기 에피소드는 '배움'과 '가르침'의 간극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도 다 가르쳤다고 생각하고 배우는 사람도 다 배웠다고 생각해도 그 안에는 가르치지 못한 것, 배우지 못한 것이 존재한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빵을 반으로 자르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오븐이 작아서 반으로 자른다고 생각해서 레시피에서는 뺐던 것이다.

며느리는 레시피가 전부라고 생각해서 그대로 했지만 맛은 달랐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지켜보다가 자신과 다른 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질문을 했다.

앞으로 며느리는 똑같은 빵맛을 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에피소드만큼 교육에 대해서 잘 설명한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가르칠 수 없는 것'과 '배울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보고 배워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또 '질문의 중요성'이다.

직접 만나서 보지 않으면 질문할 수 없고, 대답도 들을 수 없다.


나는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글 쓰는 누군가와 함께 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진짜로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초고를 쓴 후에 수정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 막막하다고들 한다.

그럴 때 나는 우선 '구성'부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한다.

집을 지을 때 인테리어부터 먼저 할 수 없으니, 초고 후에 문장을 고치는 것은 나중을 생각하면 인테리어를 두 번 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글쓰기 수업 시간에 수강생들의 질문은 내가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가르치게 해 준다.

나는 늘 질문을 기다린다. 그래야 나는 '가르치는 것을 배울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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