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도슨트 임리나 May 20. 2024

[북토크]에 가보신 적 있나요? <<어슬렁 오고리>>

어느샌가 작가들이 책을 내고 독자와 만나는 행사를 <북토크>라고 부르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 서울 방산시장에 있는 <그래서>라는 서점에서 주최한 <<어슬렁 오고리>>의 저자 박선영 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5년 전에 아이들과 여행을 함께 했던 '엄마'로서의 첫만남이었다.

엄마였지만, 자기 일을 놓지 않았던 어쩌면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그런 시간의 교차점이었달까.

연락이 끊어진 듯했지만, 책 때문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십대부터 내 주변에는 작가들이 있었고, 작가와 만남이라는 게 특별한 일이라기보다 내 일의 일부이고, 내가 북토크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북토크>란 나에게는 익숙한 이벤트다.

나이 들며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을 다닌다면 나에게는 이 중에 북토크가 하나 더 추가된 느낌.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이 북토크에 가지는 의문을 정리해 보면...


책만 읽는 것과 저자를 만나는 것은 정말 다를까?

글을 잘 쓰지만 말도 잘 할까?

어떤 스타일의 외모일까?

책에 나오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이런 정도가 아닐까 싶다.


책만 읽는 것과 저자를 만나는 건 다르다. 

간단하게 말하면 온라인으로만 보던 사람을 오프라인으로 만나면 다른 것처럼.

또한 책과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책 속에 있지 않고 밖에 있다고 믿는 나이기에 사람은 만나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슬렁 오고리>> 북토크였지만 북토크의 주제는 <집 밖의 집>이었다.

재건축 집에 15년 살게 된 그녀가 여행지에서만큼은 살고 싶은 집에서 살아보자고 시작한 여행지의 집 이야기가 그 중 일부가 책으로 나왔다. 


그녀가 얘기하는 집에서 나는 그녀의 가족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을 건 북토크인데 저자의 자리엔 가족 3명이 함께 앉아 있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도 신기했다. 

보통은 작가만 앞에 앉아 있고 식구들은 객석에 앉아 있다가 인사 정도 하는 것으로 등장할 텐데 3명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집밖의 집>이 아니라 <집밖의 가족> 같았다.


그녀가 여행지의 집을 고른 여러 가지 이유가 흥미로웠다.

현관문 때문에, 발코니 때문에, 벽지 때문에, 식탁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가 집(여행지 포함)을 고르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나는 집안보다 집밖이 중요했다. 정류장과의 거리를 가장 먼저 본다. 그 거리 때문에 난 다른 걸 포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따뜻한 집. 난방이 잘 안되는 집은 제외한다. 오랜 외국 생활 동안의 '보일러'에 대한 그리움일까.


그리고 보니 나는 집을 고르는 '미적'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좋은 <북토크>란 저자의 생각을 알게되는 북토크가 아니라 나에게 영감과 통찰을 주는 북토크다.

그리고 잊었던 기억.

우리가 처음 만났던 중미산 휴양림도 그녀가 고른 숙소였다. 그 숙소가 좋았던 이유는 그녀가 골랐기 때문이란 걸 그 날 북토크를 듣고 깨달았다. 

 




이전 19화 부자의 '그릇'과 부자의 '유언'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