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영화부터였다.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 책을 찾아 읽다가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서 <<계단 위의 여자>>를 읽기 시작했다.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심지어 토지문학상을 탔으며, 토지문학상은 국제상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계단'과 '여자'라면 떠오르는 예술가가 있다. 바로 변기에 뒤집어 사인을 한 것으로 '개념 미술'을 만들어 낸 '뒤샹'이고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라는 작품이 유명하다.
혹시 나만 '뒤샹'을 떠올린 건가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예술가가 그린 작품이 '계단을 내려오는 여자'인데 뒤샹을 오마쥬한 작품이라는 설명이 나와서 역시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구나 싶었다.
줄거리는 알라딘의 소개글에서 인용하자면...
여기 한 남자가 있다. 20대 초반에 사법 고시를 통과하고 탄탄한 법률회사의 시니어로 성공 가도를 걸어온 남자. 서로를 지지하되 짐은 되지 않았던 결혼생활, 잔정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그 덕분에 다들 성공해 해외에서 자리 잡은 아이들. 안정적인 반생을 마치고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회사의 대표 변호사이고 지금도 굵직한 기업합병 건으로 시드니에 출장을 와 있는 상태다. 그런 그가 평생 처음, 아니 두 번째로 일탈 행위를 하려 한다. 그 그림 때문이다. 40년간 사라졌다 바로 지금, 우연처럼 그 앞에 다시 나타난 그림.
40년 전 햇병아리 변호사였던 그는 그림과 관련된 한 소송에 휘말렸었다. 그림을 그린 남자와 그림을 주문한 남자 사이의 기이하고 끈질긴 싸움. 그리고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림 속의 여인. 남자는 그림을 본 순간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를 위해 의뢰인을 배신했고 그림을 훔쳤으며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던 자신의 성공마저 버리려 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을 그린 그림과 함께 사라져 버리기 전까지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림 속 모델이 된 여주인공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그림의 주인공이 그림의 주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남자는 그림값을 냈고 한 남자는 그림을 그렸다. 누가 그림의 주인공인가를 다투는 사이, 모델이 된 여자는 그림을 가지고 사라졌고, 40년 후에 나타난 그녀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 후반부에 나온다.
책을 읽으며 뒤샹만을 떠올렸는데 소설 끝 작가의 말에 '이 소설 속 화가는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아니다'라는 말을 강조했기에 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찾아봤다.
정말 뒤샹을 오마주한 작품으로 '엠마'라고 자기 부인을 그림 작품이 있었고 독일의 유명한 화가라는 걸 알게 되었고, 화가의 일생이 영화로 나온 것도 발견했다.
한국 제목으로는 '작가미상'으로 개봉했고,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타인의 삶>으로 유명한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였다.
영화에서 책으로 책에서 그림으로 그림에서 영화로 나의 예술적 여정이 즐거웠다.
그리고 이 여정을 통해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제목보다 <더 리더>가 맞는 제목이고 '더 리더
는'는 남자가 아니라 '여주인공'이라는 걸 깨달았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많이 아는 책이리라 생각하고 나는 <<계단 위의 여자>>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