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해부>
이 영화의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살인의 해부>를 떠올렸다.
<살인의 해부>는 John Donaldson Voelker라는 작가가 Robert Traver라는 필명으로 출간해 인기를 끌고 영화화된 작품이다.
1959년의 영화지만 지금도 OTT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은 2024년, 65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는 두 작품이었다.
살인의 해부는 용의자가 '남자'이고 추락의 해부는 '여자'다.
나는 <추락의 해부>를 보며 아내가 남편을 죽였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며 보았는데 과거라면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것보다는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일이 더 상상하는데 보편적이었을 것 같다.
여자가 남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추락의 해부>에서 남자는 여자 때문에 이사도 왔고 글도 못쓴다고 짜증을 낸다.
나는 이 장면에서 무언가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여자가 남편이나 집안일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것처럼.
<살인의 해부>나 <추락의 해부>에서 둘 다 중요한 '범행 장면'은 생략한다.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상상과 추리의 즐거움을 준다.
<추락의 해부>는 쥐스턴 트리에라는 여자 감독이 만들었고 각본에 같이 이름을 올린 아르트르 아라리는 남편이다.
남자가 감독이고 여자가 각본을 쓰던 것이 일반적이던 시절이 지나갔음을 알리는 것 같다.
그래서 찾아본 감독의 전작 <시빌>은 여자 감독과 남편으로 배우가 등장하는데 자전적 이야기 같아 흥미로웠다.
소설 <<살인의 해부>>가 65년의 세월을 지나 <추락의 해부>로 탄생하는 시대의 변화를 느끼는 동시에 <추락의 해부> 감독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