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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May 13. 2024

부자의 '그릇'과 부자의 '유언'사이

http://aladin.kr/p/AqfaS

당신은 언제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나요?


철없는 결혼이었다.

마음만 맞으면, 서로 사랑한다면 세상의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파도를 넘어 망망대해로 나가듯 그의 손을 잡았다.


T시에 시어머니가 사 준 집이 있어서 집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정기적 수입이 없이는 살림을 꾸려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침 IMF가 터졌지만, IMF와 거리가 먼 가난이었다. 애초부터 수입이 없었으니까.


결혼하기 전, 내 통장에는 늘 몇 백만 원은 들어 있었다. 직장을 다니지 않아서 정기적으로 적금을 들어 큰 돈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프리랜서로 꾸준히 일한 덕에 통장에는 내가 쓸 돈은 넉넉히 있었다. 그렇게 통장 잔고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집에 살아서였다는 것도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 통장도 화수분은 아니었지만 그의 통장은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장래가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그 장래가 현실에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았다.

한 달에 원고료 10만 원짜리 연재가 전부였고, 나는 마침 이모가 유치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를 가르치라는 조건으로 30만 원을 받았다.

그 외에 우리에게 들어오는 돈은 하나도 없었다.


통장은 결국 0을 찍었다.

(지금이야 마이너스 통장이 있어서 두려울 게 없지만, 삼십 년 전에 마이너스 통장은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카드 현금 서비스도 쓸 생각을 못했다.)


그때의 충격이란!


나는 당장 짐을 쌌다. 남편에게 선언했다.

"서울로 올라가서 돈을 벌겠다"라고.


그렇게 나는 서울로 올라왔고, 아르바이트를 거쳐 한참 붐이 일던 IT회사에 취업했다.

결혼 전에 회사를 다니다 결혼 후에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결혼 전에 다니지 않던 회사를 결혼 후에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IT회사가 그랬듯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밤샘 근무를 했고 그렇게 내 연봉을 올려가며 일을 했다. 그 후로 나는 내 통장에 0을 만들지 않았다. 아니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월 수입이 0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수입이 없는 달을 만들지 않고 있다.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풍족하지 않아도 안정적인 수입의 가정에서 보내던 내가 불안정한 직업의 남편을 만나 나름 상상할 수 없었던 밑바닥을 찍고 얻은 깨달음이었다.


아마도 그 영향이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짬짬이 경제서적을 읽었다. 어려워도 그냥 읽었고,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는지 관찰했다. 포탈 회사에서는 주 수입원이 광고이기에 어떻게든 페이지뷰를 올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서비스를 기획해야 했다. 게임 회사로 옮기니 게임 아이템으로 버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나는 어떻게든 돈벌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0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남들이 읽는 재테크 서적도 읽었다.


그중에 최근에 읽은 <<부자의 그릇>>은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인 줄 알았는데 도입 부분을 읽다 보니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원제가 <<부자의 유언>>이라는 것도.


<<부자의 그릇>>과 <<부자의 유언>>은 책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어울리는 제목이 다른 것 같다.

<<부자의 그릇>>이라고 하면 확실히 자기 계발서 느낌이지만 <<부자의 유언>>이라고 하면 다소 비장미가 느껴지는 소설 느낌이 난다.


나는 책을 읽으며 <<부자의 그릇>>과 <<부자의 유언>> 사이를 오갔다.

어느 때는 조커라는 노인의 입을 빌려 뼈 때리는 조언을 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 때는 과연 조커의 정체는 무엇이며 결말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조커가 혹시 죽을까 하고 말이다.

(결론은 스포일러가 될까 생략한다.)


<<부자의 그릇>>이란 제목 때문에 조커의 이야기가 온통 부자가 되려면 그에 알맞은 그릇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릇이 작아서 돈을 모으지 못하고 주인공도 망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릇'에서 벗어나서 보면 주인공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사람을 배려하거나 다룰 줄을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야 하고 어떤 사람에게 비즈니스 파트너로 대해야 할지 말이다.

그 반대로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몰랐던 게 아닐까.


돈을 얻는다고 사람이 저절로 얻어지지는 않지만, 사람을 얻으면 돈은 조금 늦더라도 나에게 찾아온다.

어쩌면 '부자의 그릇'이란 돈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내가 사람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부'를 이야기하는 많은 책 중에, 흡입력 좋은 소설의 형식으로 쓴 '부자의 그릇'은 더 많은 독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또 돈에 대한 철학을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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