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라는 큰 물줄기가 흐른다.
우리는 식사를 하거나 대화할 시간에 개인적 일상과 운동, 주식과 돈, 직장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책과 관련된 이야기는 드물다. 독서가 무릇 일상화되기에는 어렵다. 독서의 일상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하나 자연스럽게 대화로 흘러가기에는 어려운 현실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어떤 책이 요즘의 트렌드일까?” “추천하고 싶은 책은?” “너의 인생책은 무엇이니?”
이런 대화쯤 한번 나오기가 어려우니 책을 읽는 사람도, 책을 읽고 싶은 사람도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기가 두려운지 모른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과 함께하는 사람은 특별하고도 희귀한 존재일까? 그것도 아니다. 책은 우리 일상에서 사유와 사고의 폭을 넓혀지는 생각하는 도구다. 책이 존재해 왔기에 현재의 우리가 이루어놓은 모든 지식과 기술은 빛나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책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 늘 책이 있는 마을도서관을 생각했었고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만화영화에서 보았던 상상의 세계가 머리로 그려졌고 꿈이 하나씩 생겼다. 책에서 보았던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고 주인공이 풀어가는 모험은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때까지는 도서관의 존재를 몰랐다. 도시의 도서관은 생활과 밀착되어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했고 품었다. 나는 그런 도서관만이 바라보며 생활의 변화를 달궜다. 책이 주는 우리의 일상변화를 느꼈던 시기에 강한 자극을 받았고 습관처럼 담겼다. 개인적 독서를 하고 나서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도 하였고 책의 서평도 넣었다.
책을 읽는 법, 즉 개인적인 독서법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나를 독서의 세계로 빠지 지게 했다. 독서의 시간과 방법들이 나의 몸에 익혀질 때 책은 언제나 나의 손에 닿았다. 익숙해질 때 몸은 기억했고 책은 일상의 순간을 사고로 채웠고 사유하게 했다. 그 모든 가능성은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너를 위한 증언’, ‘튜브’, ‘서른의 반격’.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단 한 사람’ 등책모임에서 읽는 소설은 함께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삶이 되었다. 삶이란 것이 책 속의 문장을 속속들이 파고들 때도 있었고 나 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의문의 질문을 던질 때도 있었다. 훅 들어온 문장은 오래 남았다.
개인적 독서가 때론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쌓아온 책의 무게가 대화를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한 사람의 독서가 여러 사람으로 퍼져갈 때 독서는 사회화가 되었다.
"독서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자극이다. 자극만 받고 이를 표출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자극에 무뎌진다. 이는 독서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중-
사회화의 독서는 개인과 개인의 책 읽기를 함께 공유하고 평가하여 더 나은 황금의 알을 낳았다. 함께하는 독서모임은 새로운 시너지가 열려있다. 한 권의 책이 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가 배재되어 있다. 잠재되어 있는 사유의 세계를 함께 깨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개인적 독서가 일상화 되어야 한다. 그다음은 사회적 독서가 완성되도록 개인과 개인, 사회와 개인이 서로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이 완성되면 독서문화는 저절로 뿌리내릴 것이다. 아주 먼 작은 마을의 도서관이나 책방에서도 작은 등불의 씨앗이 피어오른다.
독서는 문화다. 가장 이상적이고 버릴 수 없는 문화는 독서일 가능성이 크다. 밀양의 작은 농촌마을도 그 시작점은 개인적 독서였지만 고된 농사일에도 그들의 집념과 노력의 결과가 이제까지 마을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진주의 한 도서관에서도, 주촌의 한 마을에서도 독서가 뿌리내리는 순간 삶의 질적변화가 나타났다. 개인의 독서를 성장하는 중요한 기준은 열린 마음이다. 우리는 독서에서 답을 찾아 나설 때이다. 개인의 독서가 일상화될 때 독서는 사회화되고 한 나라의 문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