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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치매에 걸릴줄 알아?

by 구봉선







엄마는 가끔 얘기하신다.


"제일 무서운 병은 치매 같아."



살면서 우린 많은 것을 기억하고, 많은 것을 잊어버린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기억이 존재하겠는가.

슬픈 일도 있고, 괴로운 일도 있고, 기쁜 일, 행복한 일도 있다.

그중에 우린 점점 기억저편으로 보낸 기억들도 있지만 그 상황, 사람을 생각하면 뜨문뜨문 기억이 난다.


요즘은 시대가 너무 빨라졌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생활에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전화를 하려면 적어둔 전화번호부를 꺼내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어 3분 동안 통화를 하면서 동전을 계속 넣었다. 가족 아닌 이상은 전화번호를 기억 못 해 일일이 다 적어 놔야 했다. 그 전화번호부를 잃어버리면 아주 큰일이 난다.


책을 보려면 책방을 가서 어떤 책을 읽을까 이리저리 뒤지며, 새로 나온 책도 확인하고 한 권 사려고 했던 것이 4~5권으로 늘어난다.


기억해야 존재했던 생활...

기억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생활...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게 존재한다.

수천 명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스케줄을 기억하며 알림도 알려주고, tv도 되며, 책도 되며, 신문도 된다.

그리고 결제도 된다.


편안한 만큼, 무섭기도 하다.


기억은 기억을 낳고 뇌를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어느 날은 내 핸드폰 번호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한 5초 정도를 생각하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 당황했던 때가 있었다.


거북목은 나날이 늘어가고, 손가락은 휘어가고, 허리는 꾸부정하게 굳어 버리고...

거리를 다니고 대중교통을 타게 되면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핸드폰을 보려고...



우리 동네에 치매에 걸리신 여자분이 계신다.

자식은 가끔 찾아오는 경우고 그 옆에는 남편분이 계신다.


처음엔 말도 곧잘 하시고 이상 행동을 하시면 남편분이 말리시고, 두 분이서 손을 잡고 동네를 산책하셨다.

부인이 말이 안 되는 말씀을 하셔도


"음. 그래~ 그랬어. 어~~ 거기 가면 안 돼. 이리 와."


다정스레 부인의 손을 잡고 가셨다.

처음엔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남이 보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보내니 부인의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말도 못 하고 걸을 때도 남편에 의지해 걸을 뿐...


어느 날은 남편분이 동네 한 가계 앞에서 서 계시며 누구를 기다리듯이 서성이셨다.

일을 보고 집으로 가는데 아직도 그렇게 그 자리에 서 계셨다. 그 시간이 족히 1시간도 더 되는 시간이었다.


'누굴 기다리시나?'


며칠 뒤 또 그 자리에 누굴 기다리듯이 서 계시는데 그때 봉고차 한대가 남편분 앞에 섰다.

주간 보호센터차에서 부인이 내리셨고 반갑게 남편분은 부인을 부축하며


"잘 갔다 왔어? 오늘 재미있었어?"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답이 없는 부인을 향해 남편분은 계속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어느 날은 부인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면서 노래를 하셨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 이번에는 내가 했으니까 다음엔 당신이 해야 해. 알았지. 이렇게 손뼉도 치면서"


한결같으신 남편분을 보니

'어떻게 저런 사랑이 있을 수가 있을까?'


그분들을 본 것은 3년이 넘는다.

아내분은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셨고, 남편분은 그럴수록 부인에게 말을 많이 하셨고, 어디든 손을 꼭 잡고 다니셨다. 지금도 아내가 올 시간이면 1시간 먼저 나가 먼 곳에서 차가 오는지 계속 지켜보고 계신다.


지인을 통해서 들은 얘기로는 어떻게 하다 부인이 저렇게 젊게 치매가 왔냐고 물으니


"우리 부인이 고생을 많이 했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렇다. 미안해 죽겠다."

라고 하셨단다.


한결같으신 남편분을 보고 시청에 전화를 넣어 상황을 설명하며 혹시 '효부상'처럼 '부부상'이런 상이 있는지 물어봤다. 알아보고 전화 주겠다는 시청 직원은 지금 사는 지역에서는 그런 상이 없다고 했다.

난 그렇게 해서라도 그 남자분께 기운 내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치매가 무서운 이유는 치유가 될 수 없고, 언제 죽는다는 시점도 알 수 없고, 그리고 커다란 아기를 돌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돌보는 주위 사람도 힘이 들지만, 정작 본인은 얼마나 힘들겠나.




사람은 살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저 살아지니깐 사는 거지.

그렇게 시간은 가는 거지.


삶을 돌아보면 입을 귀에 걸며 '잘 ~ 살았다'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나이는, 시간은 점점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그걸 자각했을 때는 이미 내 나이가 들어 사회에 배척당했고,

몸이 말을 안들을 때 외면하는 가족을 보면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허무할까...



기계는 기름칠을 해주고 부지런히 움직여 줘야 부드럽게 잘 나 간다.

사람도 기름칠을 해주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나이를 먹지 않는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멈춰 있는 엄마에게 선물을 드렸다.

초등학교 산수책.

간단하게 더하기, 빼기가 되어 있어 계산을 하고 답을 적는 노트다.

80이 넘의 셨지만, 속도가 제법 빠르시다.


"채점해 봐."

문제집을 내미는 엄마의 눈이 반짝반짝하다.



병이 들까 걱정보다는, 병이 오기 전에 조금씩 이리저리 움직이며 기름칠도 해주고 움직여 준다면, 찾아올 병도 조금 돌아서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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