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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친절한 직원이 그만둔다.

by 구봉선





종합병원에 들어서면 여자가 일어선다.


"할아버지 오셨어요?"


그 여자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진료방 앞으로 간다.

"앉아 계세요."


여자는 할아버지가 할 접수를 대신하며 순서를 확인하고

"할아버지 제가 접수해 드렸으니 간호사 선생님이 부르시면 들어가시면 돼요."

그리곤 자주 해 왔던 일인 양 여자는 간호사 선생님께 할아버지 얘기를 하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할아버지는 가족이 없는 '참전용사'다.


폐가 안 좋아 간이 호수를 코에 꽂고 숨쉬기 힘들면 병원을 찾아오신다.

그런 사정을 들은 병원직원은 할아버지가 오실 때마다 접수를 직접 해주고, 응급으로 오실 적에는 응급실에 직접 가 할아버지를 선생님들께 부탁하고 나온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고마움에 병원에 올 때마다 과일이며, 떡이며 갖고 오신다.


여자가 그렇게 하니 옆에 있던 다른 여자 직원도 그 할아버지를 보면 같이 안내를 한다.


자식도 없는 할아버지는 그렇게 병원과 친해져 치료를 받지 않아도 로비에 앉아 있다 그렇게 집으로 가시곤 하셨다.



"할아버지 오늘은 어떠세요?"

"오늘은 괜찮아."

"그건 뭐야? 또 뭐 사 오셨어? 할아버지 약값에 쓰시라니깐."


손녀처럼 여자는 할아버지께 친근하게 농담도 걸고 다른 아픈 곳이 없는지 살피곤 한다.


며칠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면 어디가 아프신 건 아닐까 걱정이 되곤 했다.



그러다 그 직원 여자분이 직장을 옮기기로 했다.

제일 걱정되는 건 그 할아버지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쉽사리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할아버지 저 이번에 병원 그만둬요."

"........"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로비 밖으로 나가셨다.

조심스럽게 따라가 보니 로비 밖 층계에 주저앉아 울고 계셨다.

그렇게까지 우실 줄 몰랐던 여자는,


"할아버지 왜 우세요? 할아버지"

"놔! 다 미워."

"할아버지 제가 다른 선생님께 말해 놨어요. 병원 다니시는데 지금하고 다를 게 없을 거예요."

"됐어. 다 끝이야. 됐어."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거리며 우셨다.

어쩔 줄 몰라 옆에 서 있던 여자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우실 정도로 많이 서운 하셨나.' 싶어 더 죄스러웠다.


"할아버지"


그 한마디에 할아버지는 눈물을 훔치며 집으로 돌아가셨다.


며칠째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그만두는 날짜가 다가오자 마음이 더 아팠다.

자꾸 병원 입구 쪽을 보게 되지만, 할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퇴사하는 날까지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으셨고, 그렇게 그 병원을 그만뒀다.


지인의 이야기다.




항상 병원에 코에 호수를 끼고 오신 할아버지에겐 아무도 없이 혼자 그렇게 방문하셔서 눈길이 갔고,

알고 보니 혼자 사셨던 할아버지께 작은 친절을 보여드렸더니 더 큰 관심을 주셨다고.





언젠가 엄마의 정기검사를 하려 대학병원에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때 기사분은 앞자리에 앉은 나를 바라봤다.


"딸이에요?"


택시를 타면서

"엄마, 엄마 여기 타."

문을 열어주고 엄마가 탈 때 손을 잡아주고 문을 닫은 다음 앞자리에 앉은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기사분은 그렇게 물었다.


"네."

"딸이구나. 세상에."

"왜요?"

"요즘은 자식이 부모병원에 같이 안 와요. 요양보호사랑 같이 오지. 자식이 안 와."

"네?"

"강아지, 고양이나 안고 다니지. 부모병원에 같이 안 와. 그런 세상이 됐어요."



병원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때 그 기사분 말씀이 생각나 환자분들 동행인들을 보게 되었다.

말씀처럼 요양보호사님들이 같이 오신 분도 계시고, 남편과 아내가 같이 오신 분도 계시고, 자식, 손자, 손녀가 모시고 온 분들도 계셨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한분 한 분을 관찰하게 됐다.

어린 자식들은 부모가 같이 왔고,

나이 많으신 어르신은 요양보호사 분들이 많았다.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분들은 반려자와 같이 오셨고,

가끔 자식이 모시고 온 경우가 있다.


대학병원은 절차가 좀 복잡하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접수를 하고 또 그 선택과에 가서 환자가 왔다는 걸 쓰고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예약은 기계에 환자 도착을 찍어야 순서가 된다.

또 무슨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야 하고 날짜를 받고, 검사에 필요한 안내사항을 받아야 한다.

그런 걸 하나 하나 하려면 초행길에서는 젊은 사람도 헷갈리기 마련이다.

그럼 나이 드신 분들은 오죽할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물어보고 또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 설명해 주시는 분이 짜증 비슷한 걸 내시면 주눅 들게 마련이다.

몰라서 모른다는 건데,

그분의 한숨이나, "모르시겠어요? 다시 설명해 드려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나 자신이 이해력이 딸리는 사람이 된다.

물론 하루에도 몇십 명을 상대하고 같은 얘기를 하루 종일 하게 된다면 힘드실 건 안다.


하지만,

그분은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그중 내게 설명하는 것이지만,

난 그분에게 처음으로 물어보고 처음으로 설명을 듣는 것이다.


병원에서 접수를 하거나,

검사를 하거나,

치료를 하거나 하면 뭔가 내가 약자가 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기분 나빠 쓴소리라도 할라 치면 내가 아파서 온 병원이니 그냥 약자다.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얘기해요?"

라고 할 수가 없다. 그저 잠깐의 기분 나쁜 얘기를 들어도 참을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그 참전 용사 할아버지는 혼자 병원을 찾아 기다리며 누가 나를 무시하진 않을까 일부러 큰소리도 치고 밉상을 자처했지만, 여자의 작은 친절에 고마워했고, 병원이 두려움이 대상이 아니라 나를 챙겨주고 나를 지켜주는 손녀 같은 여자분이 있으므로 병원으로 가는 길에 과일 하나, 떡 하나를 더 사게 됐던 것이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층계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고 계셨던 모습에 자신도 눈물이 났다는 지인은 아직도 그 할아버지를 잊지 못한다.



코에 호수를 끼고 나타나선 툭 하고 던지던 과일이며, 떡이며

"밥 먹었어?"

"할아버지 오늘은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어요?"

"그냥 운동하다 들렸어."

(집에서 병원은 버스로 3 정거장 정도 된다고 한다.)

"무슨 운동을 하셔서 병원까지 오셨어요."

"이제 집에 가야지."


그렇게 말씀하시곤 씩 웃고 다시 병원을 나가시던 할아버지.

그럼 여자는 따라나서서 문을 열어준다.


"할아버지 조심히 가세요."





큰 의미 없이 남에게 베푼 친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은인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작은 한마디가

누군가에는 삶을 지킬 수 있는 끈 역할이 될 수 있다.


작은 행동은 친절을 말하고,

공손한 말은 상대를 안심시킨다.





지인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사람은 쉽다.'라고 생각했다.

돈을 준 것도, 금을 준 것도 아닌데... 그 작은 행동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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