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엄마와 길을 가는데 어느 여자분이 엄마에게 인사를 한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네. 건강하세요?"
"그럼. 엄마는 잘 계시지?"
"네"
"그래 잘 가. 엄마한테 안부 전해주고."
"네. 들어가세요."
여자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누구야?"
"엄마 친구 딸"
"그래..."
"저의도 자식이 없어"
"음? 왜?"
"결혼했는데 자식을 안 갖겠다고 남편하고 합의 봤대"
"그럼 일부러 자식을 안 낳는다는 거야?"
"그래. 애들한테 신경 쓰고 살고 싶지 않대"
요즘은 결혼을 했는데 자식을 낳지 않는 부부를 본다.
"딩크족"
나는 자식이 없다.
일부러 낳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생기지 않아 낳지 않았을 뿐.
결혼 3년 전까지는 크게 뭔가가 잘못 됐다는 걸 몰랐다.
그저 아이가 생기면 낳겠지. 그렇게 키우면서 살겠지 했다.
2년이 넘어가고 슬슬 주위에서 아기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생기겠지 하며 3년을 넘기고 병원을 갔다.
결혼 2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불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컹했다.
'내가? 내가 불임이라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하고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니 지치기 시작했다.
남들은 그렇게 잘되는 임신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힘들까...
그날도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어느 모녀가 지나갔다.
"엄마. 나 임신이래"
"뭐? 아니 넌 임신한것도 몰랐어?"
"몰랐어."
덤덤하게 엄마에게 임신사실을 말하며 '어떻게 임신이 됐지?' 하는 여자분을 봤다.
저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임신이 되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네.
'난 왜 이렇지?'
그날 담당 선생님은 '인공수정'을 권했고, 차차 시험관에 대해서도 얘기하셨다.
"네... 집에 가서 남편과 의논해 볼게요."
그렇게 집으로 오는 길에 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집으로 와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잘못 산 사람처럼 됐고, 남들도 잘하는 걸 못하는 사람이 됐고, 그걸 부럽게 바라만 보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신랑이 왔고 난 얘기했다.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을 거야. 아이야 생기면 낳겠지만 아이 낳자고 병원을 가지은 않을 거야. 싫다면 얘기해."
신랑은 아무 말하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난 아이에 대한 미련을 말끔하게 버렸다.
병원에 가야 했던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고 살았다.
나이가 점점 드니 엄마는 불안해하셨다.
"정말 자식 없이 살 꺼니?"
"음... 그냥 내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지. 그리고 지금 낳아도 큰~ 노산이야."
"그럼 입양이라도 할래? 너 나중에 외로울까 봐 그래."
"자식 있다고 외롭지 않고, 자식 없다고 외로운 거 없어. 그냥 이렇게 살면 되지. 남 부러워하고 살면 뭐 해."
44살 늦게 결혼한 외사촌이 시험관으로 아기 준비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야. 너 시험관 한다며."
"응 언니."
"대단하다."
"그런 것도 없어."
"힘들다며, 아프지 않아?"
"그렇지 않아. 아프기는..."
"대단하네. 몇 번째야?"
"9번째."
"엥? 9번? 와... 그래서 계속할 거야?"
"좀 쉬고, 10번째까지 해 보려고"
"그래...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잘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촌은 10번째 때 임신을 했고 남편을 쏙 닮은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 아기는 쑥쑥 잘 크고 있다.
어떤 지인은 둘째 돌잔치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나중에 들어 왜 연락 안 했냐 하니 괜히 미안해서 그랬다고 한다. 뭐가 미안할까? 자신의 자식을 낳았는데 왜 나한테 미안할까?
자식이 없는 내가 부럽게 생각할까 봐. 마음에 상처가 될까 봐이다.
"000 씨."
"네?"
"사실은 선생님이 000 씨에게 더 신경 많이 쓰셨어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다니던 산부인과 간호사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사실 선생님부부도 아기가 없으신데, 검사는 다 정상인데 왜인지 임신이 안 되신다고, 000 씨 오시면 신경을 좀 쓰셨어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원래 어느 병원이나 병원을 가기 껄끄럽다. 더군다나 여자가 산부인과를 간다면 더욱 그렇다.
다니던 병원 선생님은 친절하셨고, 내 물음 하나하나에 잘 설명해 주셨으며, 걱정도 해주셨다. 그리고 눈물을 참으려고 할 때는 가만히 그 시간을 기다려 주셨었다.
아이를 가지는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고 여러 어려움이 생기면 제일 상처받는 게 여자다.
3년이 지나 아기가 생기지 않자 시댁에서는 한약을 먹으라고 알아보라고 하셨다. 지방에 있는 유명하다는 한약방을 찾아 한참을 기다려 선생님을 뵙는데 맥 한번 짚으시고는 '주소 적어 놓으면 택배로 보낼게요.' 그게 끝이었다. 며칠 만에 도착한 한약. 몸 가리며 그 한약을 다 먹으며 생각했다.
'이게 맞아?'
인왕산에 좋은 기운이 아기를 갖게 한다는 말에 그렇게 공을 드리고 다녔다. 엄마, 남편 그렇게 힘들게 언덕을 올라 기도 하고, 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을 했다.
아마... 그런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줬다.
기대반, 포기반...
그런 감정들은 시간이 갈수록 '어쩔 수 없네'가 됐다.
이효리씨가 tv에 나와 임신에 자연임신을 원하고 시험관은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가 지금 엄청 이슈가 됐다.
물론 공인으로서 이야기에 신중해야 하지만, 자신의 소신을 얘기한 걸로 욕을 먹고 있다.
또, 어느 여자 연기자분이 토크쇼에 나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결혼해서 임신이 되지 않아 시험관을 10번을 한 적이 있다. 시댁에서는 임신으로 스트레스받게 했고, 남편 또한 그렇게 시간이 가니 점점 멀어지게 되고 시댁얘기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그런 시간에 자신이 망가져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자살하려 베란다에 다리까지 떨구어 '죽을까? 죽자' 그런 생각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고... 그렇게 자신을 버리지 못해 이혼을 했고 지금은 자신은 자신을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고...
그분은 지금 아주 잘 살고 계신다.
나도 시댁에서 임신하라고 스트레스를 주면 아마 지금 남편과는 이혼했을지도 모른다.
안 되는 걸 요구하는 건 상대가 하자가 있다고 공공연히 욕을 하는 것이다.
나도 나를 닮은, 남편을 닮은 아이를 갖고 싶었다.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크면 어떤 아이로 자랄까 생각도 해 봤다.
그러다 '내가 저 자식을 낳고 미역국을 다 먹었네. 너 이리 와!'라며 자식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는 게 다행히 라며 자기만족을 나름 하면서 산다.
시험관을 해야 할 때,
선택과 포기의 기로에서 난 포기를 선택했고 지금 자의가 아닌 '딩크족'이 되었다.
그 시간을 보낸 50이 넘은 나이가 되니
후회는 없다.
'시험관을 해 볼껄...'
시험관을 해서 아기가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까지 나를 포기해야 하기에 그런 시간이 싫었다.
명절이면 올케, 시누이가 자신의 애들에 대해 둘이서만 얘기를 할 때 소외감 또한 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기에 그때의 소외감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효리씨와 그 여자 연기자분의 선택은 누가 옳고, 틀리다고 할 수 없다.
그저 사람마다, 환경마다, 생각마다, 욕심마다 다~ 그렇게 다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자신의 몫이다.
힘들게 아기를 낳아 잘 키우는 걸 사명, 삶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면 그렇게 하는게 맞고,
아기를 낳아 잘 키울 자신이 없고 오로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나이가 먹어 다른 집 자식들이 용돈을 줄 때 부러워하지 않으면 된다.
예전엔 내 나이를 보고는
"아기는 몇이에요?"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아기를 낳는 세상이었고 아이가 없다고 하면 내가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 분위기가 급격하게 혼란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그런 걸 물어보지 않는다.
"자식은?"
"없어요."
그 이상 물어보지 않는다. 왜 자식이 없냐고...
"당크족"
나름 내 방패막이되는 용어지만, 그 딩크족이란 생활을 이해시키는 세대의 시간은 오래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