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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내가 죽는 다면 뭘 할까?

by 구봉선





내일 죽는다면 누구는 한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난?

난 한달 아니 내일 죽는다고 하면 지금부터 뭘 해야 할까?



우선 주위를 돌아봤다.

집에 앉아 이렇게 자판을 치고 있으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책상 위에 있는 메모지, 필기도구, 블루투스, 자료를 모아놓은 노트들, 아까 수박 먹다 놓은 빈 접시...


방 밖으로 나가니 짐은 더 늘어난다.

사는 사람은 두 사람인데 뭔 짐이 저리도 많은지...

그저 한숨이 나온다.


이사 가는 걸 싫어해 지금 사는 곳에서 15년을 넘게 살고 있다.

눌러앉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살다 보니 인테리어도 들어왔을 때 그대로이고 가구 배치도 두어 번 바꾸면서 그 자리에 배치해 있고,

버리지 못해 꾸역꾸역 갖고 있는 자잘한 소모품들이 한가득이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니 뭘 하나 정리하고 싶어도 그 짐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미루고 미루고 그렇게 밀리고 밀리고, 짐을 머리에 이고 산다는 말처럼 포화 상태가 되는거 같다.



30~40대에는 나 자신을 꾸미는 것에 흥미를 느껴 이것저것 멋을 내면서 사들인 옷가지, 패물이 한가득...

40대를 넘어가니 글 쓰는 것에 흥미를 느껴 사랑하는 볼펜, 펜, 포스트잇, 노트들이 한가득...

50대를 넘어가니 다이어트에 흥미를 느껴 듣는 귀 팔랑대며 산 다이어트약이 한가득...



"난 이제부터 물욕을 버리겠어."

가족에게 이 말을 반복하며 스스로 도인이 된 것처럼 몸에 장신구를 다 빼고 인터넷 쇼핑을 금지하기로 했다.

눈만 뜨면 '특가'에 끌려 필요하지도 않은데 눌러 구매했던 내 손가락을 탓하며 '욕심을 내지 말자.'를 외치고 며칠을 살았다.

괜히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책장에서 꺼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기도 하고 커피대신 차 한잔을 하며 향을 음미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이게 무슨 의미 일까 싶었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삶과 죽음.

인간이라면 아니 지구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이라면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나는 태어났다. 고로 존재한다. 존재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왕 태어났으니 살고 있는 것이다.

존재의 이유를 알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한해 한해를 보내면서 나름 철학적인 생각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왕 죽는다면 해보고 싶은 건 다해보고 죽어야지...

처음엔 이 생각이 들었다.

죽어서 후회하느니 해보고 싶은건 다 해보는게 좋겠지.

사고 싶은거 사고, 먹고 싶 거 먹고, 하고 싶은거 해보고...


하지만, 나이가 드니 그것 또한 달라진다.

'내가 죽은다면 남은 사람들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였다.


나이 든 엄마가 나를 잃고 잘 계실 수 있을까?

손 발이 되어 말 한마디면 다 사다 주고 모시고 가고 오고를 했는데, 내가 아니면 누가 할까...

항상 남편위주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먹고 싶은 밥 상 차려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던 남편인데, 집에 오면 손가락 까딱만 했던 사람인데, 설거지며 청소며 분리수거를 어떻게 할까...

하나밖에 없는 동생에게 나이 들면 근처에서 같이 살자고 말하고 했던 언니는...

나 죽으면 뼈가루를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차고 다니며 무슨 일이 생기면 무전처럼 목걸이에게

'고모 이거 어떻게 할까요?'를 외친다고 했던 조카들은 어떻게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머리만 복잡해졌다.


우선 집에 있는 묵은 짐을 정리하는 게 우선인거 같다. 내 짐을 하나하나씩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하는게 먼저 인듯 싶었다.

아빠를 보내고서 든 생각이었다.

남은 이가 정리하지만, 그래도 내 비밀도 있을 것이고 내가 버리는게 맞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내 청춘일기 같은 것도 남편에게 비밀인데 남편이 펼쳐보다 나를 생각해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라 일기장을 찢어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언제 죽을지 알면 신이지 사람이겠나.

오늘 살고 내일 죽을지 모르는게 사람의 삶이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 곁으로 간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저승으로 가서 심판을 받고 그 죗값을 받는다고 한다. 잘 살았으면 잘 되고, 나쁜짓을 많이 했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맥락은 똑같다.

좋은일하고 살았으면 좋은 곳으로 가고, 나쁜 일을 했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


어느 스님은 이런 얘길 했다.

사람은 살면 살수록 죄를 짓게 된다고.

말로 죄를 짓고, 행동으로 죄를 짓고, 생각으로 죄를 짓는다고...

도인이 아니고서야 살면 살수록 죄가 된다고 하니 입 닫고, 눈감고, 귀 닫고 살아야 하나...

귀가 있으니 누군가에게 기분 나쁜 소릴 들으면 당연히 입으로 좋은 소리가 나가지 않는다.

눈이 있으니 누군가가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면 나 또한 손가락이 나간다.


성경 구절에 '오른쪽 빰을 치거든 왼쪽빰을 내 주어라.'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라...


이 세상에 누군가 와서 내 오른쪽 빰을 치는데 허허 웃으며 왼쪽빰을 내어줄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바로 응징을 해 버리지...


아는 동생이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 자신의 엉덩이를 스물스물 건드리더란다. 대뜸 그 손을 잡고

"어딜 만져!!"라며 그 남자를 끌고 다음 역에서 내려 경찰을 불렀다. 동생은 남자를 잡는 과정에서 몇 대 치는 행동이 나왔고 경찰은 둘을 경찰서에 데리고 갔는데 남자가 자신은 그런 적이 없고 오히려 여자한테 맞았다며 동생을 폭행죄로 고소를 했다고 했다.

결과는.... cctv가 없어 엉덩이에 손이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동생이 남자를 몇 대 때리는 과정도 확실치 않아 둘 다 무혐의로 종결 났다고 한다.


동생은 확실하다고 하고, 남자는 아니라고 하고... 누가 옳은지는 본인들만 알것이다. 그렇다고 동생이 일부러 그 바쁜 출근시간에 레이더를 돌려 남자를 골탕 먹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남자 또한 밀리고 밀려 손이 갈 곳을 잃어 동생의 엉덩이 언저리에 자리를 했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둘은 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남자가 원래 손 갈 곳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크게 혼났을 것이고, 동생도 출근해야 하는데 참지 못하고 경찰까지 불러 일을 크게 키웠으니 서로 느끼는 시간은 있었을 것이다.



사랑과 자비는 중요하다.

내가 내일 죽는다는 걸 안다면, 손이 엉덩이 언저리에 다가온다고 멱살을 잡고 경찰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를 바라보며 '불쌍한 것...'이라고 하며 자비를 베풀었지.




아빠는 가족과 이별의 시간도 없이 돌아가셨다.

갑자기 그렇게 돌아가실 줄도 모르고 모진 말에, 투정도 부렸던 시간을 탓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아빠의 짐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내가 알았던 물건과 내가 알지 못했던 물건들이 나왔다.

아빠는 그렇게 갑자기 자신이 돌아가실지 몰랐기 때문에 감춰두고 싶었던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셨다.

아빠의 물건을 보다며 울다가도


"엄마!~~ 이거 봐. 아빠 이런 것도 샀었어. 이건 뭐야?"

"이 양반이 돈만 주면 이런 걸 샀네. 이게 무슨 소용 있다고 나이 먹고 선.."


그건 반짝반짝하는 액세서리에 , 반지, 선글라스, 걸어 다니며 노래를 들으셨던 무선 라디오 등...

아빠 또한 멋 부리기를 아주 아주 좋아하셨던 분이셨다.

엄마는 그런 자질구레한걸 구매한 아빠를 탓하며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장롱 한쪽박스에 넣어 놓고 계신다.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온다고 생각하며 산다.

오늘 하지 못한걸 내일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산다.

나에게 내일의 시간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 시간에 난 얼마나 많은 걸 놓치고 살았을까...

쌓여있는 짐을 보며 한숨만 쉬고 '아~~~내일 해야지.'로 미루고 미루고...그렇게 내 시간은 나에게 자비를 보내고 있던 것이다.


자(慈):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쁨을 주는 것

비(悲):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고통을 덜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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