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군대 어디 나왔어?"
"최 전방"
"거기서 뭐 했어?"
잠깐 뜸을 들인 남자는 말한다.
"취사병"
남편과 연애때 나눈 얘기였다.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던 남편은 같이 있으면 80%는 내가 조잘조잘하면 그저 고개는 끄덕이고, 의문이 생기면 "그게 뭔데?"정도...
어느 날은 2시간이 넘게 가야 하는 길이 있었는데 차에서 둘이 한마디도 한적 없던 일도 있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은 내가 얘기를 많이 이끌고 말을 시킨다.
그런 시간이 많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답답함 보다는 장난을 많이 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럼 남편은 픽식웃고 만다.
그렇게 말이 없던 남편이 정색을 한 사건이 있었다.
남편의 고등학교때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을때,
"00야. 너 군대 갔다 왔지? 어디 갔다 왔어?"
친구는 문득 군대를 물어봤다. 그 친구는 운동을 하고 이런 저런 일 때문에 군대를 안갔다고 했다.
"나야 갔다 왔지."
"어디?"
"군대서 취사병 했대요."
난 그 대화에 그렇게 말했고, 남편은 당황해했었다.
"취사병? 너 그런 취미 없었잖아."
"아냐."
"아니긴 뭐야. 나한테 그렇게 얘기했잖아."
남편은 뭐가 골이 났는지 입을 꽉 다물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나 취사병 아냐."
"취사병 이였다며."
"그냥 그때는 웃기려고 한거야."
"그게 웃겨? 그럼 어디 나왔는데?"
"특전사"
"웃기네."
난 남편을 놀렸고 뭐 그게 큰 일인가 싶어 그대로 넘겼다.
몇년뒤 조카들은 남편에게 물었다.
"고모부, 고모부는 군대 어디 갔다 오셨어요?"
대학 친구들이 하나, 둘씩 군대를 가니 당연히 궁금해진 조카들이 물었다.
"나?"
"취사병"
나 남편의 말을 대신해서 해 줬다.
"취사병이 뭐예요?"
"군대서 밥 해주는 군인.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남편 대신 말을 했다.
"아~"
"아니라니깐."
"아니긴. 자기가 나한테 그랬으면서."
"특전사라고."
"증거 있어?"
남편은 또 입을 다물었다.
몇년전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혼자 계신 아버님 집 청소를 했다.
"갖고 갈 사진 있으면 다 갖고 가라. 그게 여기 있어봤자 누가 보겠냐."
낡은 앨범을 한장 한장 넘기니 남편의 어린시절부터 여러장의 커가는 과정의 사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군대 사진이 떡~~~ 하니 나왔다.
근데, 그 군대 사진에서 난 충격을 받았다.
남편은 '특전사 스키부대'출신 이였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흰 우비 같은걸 입고 눈 덮인 산에서 스키도 타고 동기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웃음이 나서 박장대소를 했다.
"당신 정말이네."
"정말 이라니깐!"
"근데 왜 취사병이라고 한거야?"
남편은 나를 놀리고자 취사병 얘길 했고 난 그 말을 믿고 <남편의 군대= 취사병>이 되어 있었다.
가끔 남편이 찌개를 끓이고 싶어 할 때가 있다.
그럼 끓여보라고 자리를 내주곤
"뭐야. 맛이 왜 이래."
"어때서?"
"김치 찌개의 본연의 신 맛이 덜하잖아. 취사병이였다면서 뭘로 요리 한거야? 군대서도 이렇게 했어?"
어느날은 남편이 반찬 투정을 한적이 있었다.
"감자볶음이 이상해."
"뭐가 이상해. 맛만 있구만."
"감칠맛이 없어."
"감자볶음에 감칠맛을 찾아? 그럼 취사병이 만드는 감자볶음은 어떤 감칠맛이 나는지 한번 해봐."
그렇게 놀렸어도 남편은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 사진을 보기 전까지 난 믿지 않았으니...
원래 남편은 말이 없는 편이지만, 한번 독설을 내뱉으면 사람 감정이 상하게 말을 하는 편이였다.
고치라 해도 고치지 않아 신혼 때 그걸로 많이 싸웠었다. 그게 미워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얘길 한건데 시댁에서 사진을 보고는 미안하면서도 웃으면서 사진을 봤다.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칭찬 아니면 다 듣기 싫은 말이겠지만,
했던 얘기 또 하고,
지적하고,
핀자주고,
내리까는 그런 얘길 들으면 듣기 싫은 말 정도가 아니라 기분이 나쁠 때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까?
얼마 전 조카한테 잔소리를 했다.
집에서 쉬는 동안 살이 많이 쪄버린 조카에게 살을 빼라고 잔소리를 했다.
처음엔 좋은 소리로
"살이 찐거 같은데? 얼나 나가? 빼야지. 뭘 입어도 이쁜 나이에 이쁜 옷도 입으려면 관리좀해..."
"네"
"운동해야지."
"할꺼예요."
좋은 소리로 기분 나쁘지 않게 얘기했고, 조카도 알았다며 조절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조카는 먹는걸 포기 안했고, 친구들하고 여행 가서 더 쪄서 돌아왔다.
"너 출근 일주일 남았지? 일주일 동안 3kg 빼!"
"네"
강압적으로 얘기했다.
그러곤
"얼굴 왜 그래?"
"부어서 그래요. 부었어요."
그리고 며칠뒤
"너 얼굴 왜 그래?"
"부어서 그래요. 지금 운동 하려구요."
강압적으로 얘기한지 5일 뒤
"너 얼마나 빠졌어?"
"0.8요"
"뭐? 5일 동안 0.8? 빼라고 했잖아. 내일 식구들 오이도 가기로 했는데 가면 또 먹게 되잖아. 그럼 너 노력한 거에 다시 찔 텐데 큰일이네."
그 말에 조카는 '노력하는데 고모는 왜 그렇게 얘기하세요.' 라며 울었다.
사람에게는 좋은 얘기만 할수 없다.
좋은 얘기를 하면 나아질수 없기에 쓴소리를 했다.
내 말에 조카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겠지만, 그런 쓴소리에 자극을 받아서라도 살을 뺐으면 하는 생각이였다.
세상에 이쁜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이쁜 말을 듣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 입에서 나간 말이 황금이 돼서 되돌아올지, 화살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남편은 나를 놀리려고 취사병이라며 아재개그를 했고, 그 뱉은 말이 화살이 되어 두고두고 내 놀릴 거리가 됐다.
내가 한 말이 바로 올 수도 있고,
훗날 1년, 2년이 돼서 돌아올 수도 있다.
말 많은 사람은 실수가 많듯이 실수가 많은 사람은 차라리 입을 꾹 다물고 사는게 복을 짓는 일이 되지 않겠나.
지금 살 빼라고 핀잔을 조카한테 주고 조카는 눈물을 흘렸지만 한달뒤에 더 이쁜 아이가 된다면 그 쓴소리도 꿀이 되어 돌아왔다면 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행복이 됐다.
가끔 남편은 반찬투정을 한다.
"가지볶음 먹어봐."
"짜."
"생가지 먹을래?"
"좀 맛있게 해봐."
"그럼 취사병이 하세요."
"취사병 아닌거 봤잖아."
"내가 알아? 특전사에서 취사병이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