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들어가는 아파트에 니들이 들어갈래?"
아버님의 참 감사한 말씀이셨다.
하지만!!! 같이 들어가자는 말씀이시다.
오래된 집은 재개발이 됐고, 알만한 건설사가 들어와 완공을 기다릴 때쯤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니네가 나랑 살래?"
아버님은 자식 넷에게 다 물어봤다.
누가 나랑 살래?
"전 됐어요. 아버님 편하신 데로 하세요."
아버님의 던지듯 하신 말씀을 토스하듯이 넘겨 버렸다.
이 자식 저자식한테 물어보니 다 싫다고 했나 보다.
결국 그 아파트는 전세를 주게 됐고, 전세금으로 아버님은 생활을 하셨다.
야금야금 쓰던 돈은 바닥이 났고, 그 사이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다른 친구분을 사귀느라 돈은 다 떨어졌다. 그 집을 팔고서도...
"니들이 나랑 같이 살래?"
"아버님 심심 하세요? 또 그 말씀하시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니들이 들어오면 되잖아."
"됐어요. 전 그 집 관심 없어요. 아버님 다~~ 쓰시고 남으면 이 자식 가지고, 저 자식 가지면 되니깐 아버님 살아 계실때 다~쓰세요. 자식 남겨 주려고 하지 마시고요. 누가 이 소리 들으면 아버님 건물 있는 줄 알겠네."
몇 번을 물어보던 아버님의 같이 살자는 소리는 들어갔다.
큰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바라는게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아주 해주시는 것도 없었다.
그게 걸리시는지 가끔 동서네와 비교도 하신다.
"그 애들은 결혼할 때 반짝반짝한 거 사라고 카드 줬더니 백화점 가서 사더라."
난 결혼 비용 200만원을 받고 그 돈에서 쌍가락지를 했다. 그게 내 예물이였다.
그래도 그려려니 했다. 워낙 샘이 없어서 그저 쌍가락지를 기념으로 갖고 있자고 산 것이다.
(누가 들으면 조선시대 여인도 아니고 참...)
그게 서운하거나 시샘이 난것도 아니였다.
근데 아버님은 그게 목구멍의 잔잔한 가시처럼 가끔 건드리나 보다.
세월이 흘러 그렇게 다 받은 동서보다 내가 더 잘하니 볼 때마다 가시가 흔들렸다.
"엄마, 엄마 재산 그냥 다 ~ 쓰고 간다고 생각해. 남겨서 뭐해?"
"자식들 남겨주고 가면 좋지."
"엄마 쓰고 남으면 알아서 나눠서 가져갈 거니깐 아끼지마.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거 먹고, 사고 싶은거 사."
절약이 몸에 배어 있는 엄마는 뭘 하나도 아껴서 하시는 분이셨다.
옷장의 옷도 40~50년이 넘은 옷이 아직도 걸려 있다.
가끔 옷을 사다 드리면
"언제 그걸 다 입냐. 옷 그만 사."
"엄마 옷은 소모품이야."
언젠가 은행을 갔다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엄마!! 여기가 어디야?"
"........."
"어머니한테 그렇게 얘기 하시마세요. 할머니~ 여기가 어디예요?"
휠체어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고 아들, 딸이 그 옆에서 있었다.
은행 직원은 할머니에게 지금 하고 계시는게 뭔지 아시냐고 묻고 있었다.
아들은 화가 나 있었고, 은행 직원은 확인 절차라며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듣고 있으니 얘기 인즉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같이 살고 계셨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사시다 이제는 요양원에 계시는데 할머니 명의로 카드를 개설하려고 한것이다. 본인이 와야 한다고 해서 거의 누워계셔야 할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혀서 그렇게 은행까지 오게된 것이다.
그때 지점장이 나섰다.
"손님, 카드는 왜 만들려고 하시는 겁니까?"
"아니 엄마 집이 00동인데 지금 계시는 요양원은 00동에 있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여기까지 온 건데."
"네~"
"엄마 카드를 만들어서 그 카드로 요양원값도 내야 해서 만들려고."
남자는 말이 짧았고, 존대와 반말을 섞으며 장황하게 말을 했다.
"그래서 가족관계 서류를 갖고 오셔야 해요."
"아니 본인이 왔잖아. 본인이."
은행 직원은 남자의 반말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할머니~ 여기가 어디예요? 여기 뭐 하러 모신줄 아세요?"
"돈... 돈 만드는데."
"지금 엄마한테 얘기하지 마세요. 강압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은행직원이 장소를 물어보는데도 남자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사정은 알겠으니 손님 가족관계 서류를 가져오셔야 합니다."
지점장의 말에 남자는
"니가 엄마랑 택시 타고 요양원에 가 있어. 내가 동사무소 갔다올께"
"오빠. 그럼 지금 이렇게 가야해?"
"그래!"
그들은 그렇게 화만 내다가 은행을 나갔다.
그들의 행동에 혀가 차였다.
물론 정말 필요해서 엄마 명의로 카드를 만들 수도 있다. 엄마가 원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화만 내고서 필요한 서류 하나 들고 오지 않고, 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할머니를 모시고 아들이라는 말만 있지 확실한 신분도 아닌데 자신이 그렇게 정당한것 처럼 반말에 화를 냈다.
외 사촌은 얼마전 사고를 쳤다.
남을 의식해서 인지 외제차에 해외여행에 사치를 부리더니 돈 문제가 터졌다.
누가 그에게 돈을 해 줄건가...
부모다.
이년 저년 욕을 하면서도 이모는 돈을 해 주셨다.
"니들은 이모가 불쌍하지도 않니? 이때약볕에 농사일한다고 그 새벽에 나가서 일하시는 부모님 생각은 하니? 나도 이 더운 날에 이모 밭에 나갈까봐 걱정하는데 니들 자식들은 그런 생각은 하니?"
내가 돈은 해 주지 않았지만 그들의 행위가 안타까워 한마디 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손을 벌릴수는 있다.
왜? 낳았으니깐.
내가 낳으라고 했어?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한 대씩 맞아야 정신 차릴까!
농사일이 바뻐 하루 한번 화장실 가는게 고작이고 그러다 방광염까지 생기신 이모에게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이모, 농사일 좀 줄이세요. 그러다 병나. 다리 휜것봐. 그렇게 벌어서 자식들 돈 주고 자식은 그걸 알아? 돈 나올때 되면 당연히 주는 줄 알고 손 벌리지. 그러지마요."
"그래야지. 나도 힘들다."
"그만해. 그냥 조금씩 소일거리만 하세요."
이모는 복분자, 고추, 메주, 김치, 쌀, 양배추, 마늘, 양파.... 그 많은 농사를 다 하신다.
엄마는 늘 이모가 걱정이라고... 근데 자식은 모른다.
젊을 때는 잘 몰랐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듯이 살았고, 지금은 내 나이가 드니 옆에서 나이 드시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측은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분은 어떻게 이 세월을 사셨을까...
동서네를 더 챙기시고 집이 생기니, '너 가져라' 주려고 하지 않고 본인과 같이 살아야 한다며 조건을 거셨던 아버님도 지금은 나이가 드신 모습을 보니 그런 잔잔했던 미움은 희미해졌다.
왜 부모는 얼마 없는 재산 죽기 전에 나눠 주려고 할까?
치열하게 살아온 보상인데 그것마저 자식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걸 자식은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걸까?
난 지금도 엄마한테 얘기한다.
"엄마, 엄마 재산 엄마꺼 그냥 다 ~ 쓰고 가셔. 그거 남겨서 뭐해. 쓰다 쓰다 남으면 그걸로 자식 나눠 가질꺼니깐 자식 줘야지 하며 살지마. 그냥 내꺼 다 쓰고 간다~~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