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던가...
결혼 4년 정도 됐을 때.
추석을 하루 앞두고 시댁에 다 모였다.
당연히 남자들은 술을 먹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음식 장만을 하고 열심히 술안주를 나르고 있을 때였다.
이리저리 작은 주방에서 여자 셋. 어머니, 동서, 나 이렇게 몸이 겹치지 않게 조심하며 각자 일을 하고 있었다.
"넌 어쩜 저런 남자를 만나서 사니. 그래도 니 팔자라고 생각해야지 어떻게 하니."
나를 보시곤 어머니는 안쓰럽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자기 아들이 워낙 무뚝뚝하고 성질이 더럽다고 하신 말씀이다.
"넌 행복하지? 내 아들이 아니라 00은 잘하잖니. 넌 어쩜 그런 남자를 만났니. 좋겠다."
동서를 향해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동서 얼굴을 보니... 역시나! 0씹은 얼굴.
"같은 배에서 태어났는데 어쩜 저렇게 둘이 다른지 모르겠다."
큰 아들인 남편은 시댁에서는 거의 98% 말을 아낀다.
워낙 말이 없기도 하지만 유독 시댁에 가면 말을 안 한다. 기껏해야
"물 좀"
그럼 물을 갖다 주면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신다.
좀 있으니
"00 아빠! 거기 물 좀 줘."
동서는 그렇게 일부러 그러는지 시켰다. 그 모습에 어머니는 한숨을 쉬신다.
친구는 하소연을 한다.
"시댁에 가면 어머님의 잔소리에 스트레스가 너무 받아. 자기 아들만 잘났어."
"어쩌니."
"이번에는 나를 이렇게 보고선 '그 옷 또 샀니? 넌 팔자가 좋구나 신랑 잘 만나서' 이러시는데 미춰. 미춰!"
연애결혼을 하고 결혼하니 시어머니가 달라지셨단다.
결혼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마. 몸만 와"
"요즘 시대가 달라졌잖니. 남자세상이 아니라 여자 세상이야. 너 좋은 거 다 하고 살아야지."
"애 낳으면 내가 봐줄게. 여자 집에 있으면 병신 된다."
결혼 후,
"00는 결혼하면서 시어머니 000해 줬다던데... 넌 고작 00해 주고."
"여자도 나가서 돈 벌어야지 왜 집에 있니? 남자만 벌어선 생활 못해. 나가 나가."
"내가 요즘 허리가 좋지 않아. 친정 엄마한테 애 봐달라고 해."
그렇게 시간을 넘기고 도저히 친정엄마께 애들을 맡기지 못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시작했더니 그 잔소리는 더 심해졌다.
"우리 00은 아침밥 먹고 다니지? 난 돼지고기 안했다. 소고기 했지."
"너 살쪘니? 그렇지 살쪘지? 그럼 남자들 밖으로 돈다."
"얼마나 행복할까?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이나 하고 나도 그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시어머니는 한도를 넘어섰다.
"내 아들이 버는 돈 니가 다 쓰지!!!"
친구는 나름 절약하며 잘 사는 친구였다.
친정이 나름 손 벌리지 않게 잘 살았고 결혼할 때도 두둑하게 해 갔다.
아들 둘, 딸 하나 낳고서 도저히 감당이 안돼서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시작했다.
언제가 만나면 예전의 그 멋쟁이 모습이 아니였다.
스트레스를 받고 나이가 드니 서서히 살이 쪘다. 만나도 많이 먹지 않는 애였다. 그냥 말하면 살이 아니라 부었다고 했을 정도로 점점 변해갔다. 우린 그렇게 나이가 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안쓰러워하며 다독이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저 소리에 울면서 전화가 왔다.
왜 중간이란 없을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지 않겠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보고 있어도 아까운 자식이 커서 결혼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자신들의 가정에 충실하게 사는 걸 바라만 보면 되는데 왜! 중간에서 그럴까...
친구의 남편은 그런 시어머니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자신의 아내가 썩어가고 있는데도
"엄마가 그러시는건 우리를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야."
"엄마가 그럴 리가 없는데."
"엄마가 예전부터 좀 약하셨어. 그렇다고 나쁜 분은 아니야."
엄마들은 자신의 아들이 잘 나지 않다는걸 안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아들을 받들고 살아야 하는데 무시할까 며느리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결혼 초,
처음 명절에 밤 11시까지 혼자 부침개를 부치게 했던 시댁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다음날 아침 일어나 씻고 결혼때 맞춘 한복을 입고 부엌으로 갔다.
12폭 치마 안에는 '김 세레나'씨의 한복처럼 큰 속치마를 입고 혼자 왔다 갔다 하며 부엌을 좁게 만들었더니
"너 그러다 옷에 뭐 묻겠다. 방으로 가. 방으로"
"그래도 음식준비를 해야죠."
"아냐. 아냐."
"그럼 허리도 아픈데 방에 있을께요. 부르세요. 어머니"
어머니는 아기 핑계 대며 전날은 오지도 않고 명절 아침에 9시 넘어 나타난 동서와, 하루 전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 온 시누를 시켰다. 난 방에서 아버님과 TV를 봤다.
"그 한복이 결혼식때 입은 한복이지."
"네. 그래도 명절인데 세배해야죠. 쫌 있다 이쁘게 세배할게요."
"그래 그래. 허리 아프지 않니? 쿠션 줄까?"
"네. 어제 너무 늦게까지 해서요."
나를 흘려보는 동서와 시누의 눈을 똑바로 봤다.
'누구든 한소리 하면 오늘은 전투가 시작될꺼야.'
그 뒤부터 명절에 시댁에 갈때는 츄리닝에 국민슬리퍼 000만 신고 출발 차에서부터 앞치마를 하고 갔다.
그럼 뒤에 오는 작은집 동서식구는
"형님. 언제 오셨어요. 혼자 다하고 계셨어요?" 하며 미안해한다.
물론 집에서 3박스 정도 음식 장만을 하고 가니 그런 소리는 들을만했다.
"넌 결혼 잘했다. 어디 00 같은 남자 만나서."
시어머니가 동서에게 했던 말은 '내 아들이지만 얼마나 상냥하고 잘하니 니 복이다. 잘해라 내 아들한테.'
"넌 어떻게 하다 쟤를 만났니. 니 팔자라고 생각해야지."
시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은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하자가 좀 있어. 그래도 니가 꼭!! 책임지고 살아야해.'
중간.
딱 중간이면 좋겠다.
아들이 살아주는 며느리를 요로코롬 보지 말고,
딸과 같이 살아주는 사위를 반달눈으로 보지 말고,
"힘든건 없니? 사는게 다 힘든 세상이니 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라."
라고 말해주면 안될까?
나름 시어머니께 잘했던 친구는
'아들 돈 니가 다 쓰지'라는 그 말에 충격받고 이혼을 고민했었다.
'좀 쓰면 어떻습니까 어머니. 이제껏 아껴 살았는데 그래도 그런 소릴 들으니 앞으로 좀 ~ 다 써야겠습니다.'라고 받아치지 그랬냐 했더니 울다 웃던 친구가 생각난다.
"난 절대 다른 시집살이시키는 그런 시어머니 아냐. 결혼했으면 지들이 알아서 살아야지 왜 참견을 해"
라고 누누이 말씀하신 엄마.
한창 여름에 현장에서 일을 했던 오빠가 걱정되신 엄마는
"이렇게 더운데 머리 다 타겠다. 아휴 그래도 가장이라고 지 식구들 먹여 살린다고 이 더위에 일할꺼 아냐."
"지 부인에 자식인데 당연히 해야지."
"아침은 먹고 나갔나?"
"사무실에서 아침 먹고 현장 나간다던데?"
"그럼. 걔는 아침도 안하고 남편 이 더위에 일하는거 신경도 안쓰는거 아냐!"
엄마는 눈이 요로코롬 돼 있었다.
"엄마! 그런 소리 하면 큰일나. 그냥 알아서 하겠지. 절대 언니한테 그런 내색 하지마."
"알았어. 그냥 화나서."
우리 엄마도 며느리를 요로코롬 보는 시어머니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