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사진이 이것밖에 없어서요. 이것으로 괜찮을까요?"
26년 전 올케가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영정 사진이 필요한단 말에 집을 뒤져도 쓸만한 것을 못 찾았다. 그 흔한 증명사진도 없고, 앨범을 펼쳐봐도 단독으로 쓸 사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당황해 거실에서 잠깐 앉아 있는데, 장식장 옆에 뭔가 꽂아져 있는 것을 보니 오빠네 가족사진이었다.
둘째가 1살 되던 얼마 전 돌 사진을 찍으면서 가족사진을 같이 찍었었나 보다.
하지만, 그 사진에 언니는 웃고 있었다.
그래도 사진을 걸어놔야 해서 그거라도 들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가족사진을 내밀며 관계자에게 언니만 빼서 만들수 있는지 물어봤다.
"죄송한데 사진이 이것밖에 없어서요. 이것으로 괜찮을까요?"
난처해하는 관계자는 사진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 부분만 사용해서 할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근데 웃는 사진이라... 보통 영정사진은 웃는 걸 걸지 않잖아요."
"보통은 그렇죠."
"사진이 이것밖에 없어서 사람들에게 욕먹지는 않겠죠?"
"저도 웃는 사진은 처음인데. 어쩔수 없죠. 사진이 없는데..."
그렇게 언니의 웃는 얼굴의 사진은 영정사진으로 만들어졌다.
"세상에 저렇게 웃는 사진을 영정사진이 되니... 아직도 살아 있는거 같아."
"저렇게 이쁘게 웃는 사람이었네."
사람들은 처음엔 어리둥절 말을 하지 못하더니,
차차 그 사진으로 언니를 기억했다.
발인까지 그 사진을 수 없이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됐다.
언니와는 그렇게 살갑게 살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일원으로 때가 되면 마주 했다.
시금치가 금지어가 된다며 시댁이 있는지도 모르게 살아야 한다며 가족에게 상기를 시켜서
1년에 두어번 보는 사이였지만 오빠와 잘 살기를 바랬고, 행복하게 잘 살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언니를 갑자스럽게 보내면서 느낀건
이렇게도 잘 웃는 사람이었다.
사진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언제 봤던가...
저렇게 웃는 사람을 이제 볼 수 없다는게 슬펐다.
증명사진처럼 무표정의 사진을 올렸다면 그저 언니 본 사람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언니가 저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얼마나 하고 살았을까...
2005년 2월 연기자 이은주씨는 자택에서 죽은채로 발견 됐다.
매스컴에서는 특필했고 장례식장이 나왔다.
그곳에서 이은주씨의 영정 사진은 웃고 있었다.
좋아하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뭔가를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난 올케언니의 장례식에 걸렸던 웃던 얼굴을 기억했다.
그리고 이은주씨의 가족이 왜 그 사진을 골랐는지 알게 됐다.
웃는 사진이 왜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는 걸까?
저렇게 이쁘게 웃는 사람을 우리는 다시 볼수 없게 되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저렇게 이쁘게 환하게 웃을수 있는지 그 사진을 보고 알았기 때문이다.
올케언니의 장례식 사진 이후 수 없이 장례식장을 가봤지만 다 나이 든 모습. 증명사진처럼 표정이 없는 모습이었다. 지인의 부모님의 장례식을 가도 처음 뵙는 분의 모습은 무표정이었다.
"아.. 저번에 찍은 사진으로 영정사진하면 딱 좋은데, 눈이 너무 올라갔어."
"그러게 왜 그렇게 눈을 높이 떴어."
"사진기사가 눈을 크게 떠야 한다고 계속 '눈 크게 하세요.' 하니깐 그랬지."
몇년 전 증명사진을 찍은 엄마는 그 사진이 잘 나왔서 영정사진으로 쓸려고 했는데 눈을 너무 높이 떠서 이상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 다시 찍어."
"안돼. 지금은 늙어서.. 아.. 그 사진이 딱 좋은데.."
아쉬워 하시는 엄마한테 난
"근데 엄마 그거 알아?"
"뭘?"
"엄마 영정 사진을 어떤걸 쓸지는 엄마의 결정권이 없다는 거. 그거 자식이 결정하는 거야."
엄마는 생각하는듯 하시기에 나는 다시 말했다.
"아니. 죽었는데 영정 사진을 어떤 걸 썼는지 그걸 어떻게 알아. 자식이 어떤 사진을 쓸지 결정하는데."
"그럼 어떤 걸 하려고?"
"난 엄마 저 사진으로 하려고 하는데!"
엄마는 아빠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젊어서는 인기도 많았다며 앨범에서 사진 두 장을 꺼내서 보여주셨다.
흑백 사진으로 엄마의 19살 사진이 있었다.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으로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사진이지만, 엄마는 그 사진을 보며 젊은 날을 회상하셨다.
그래서 그 사진을 들고 사진관에 가서 보정을 해 달라 했고 크기도 크게 뽑아 액자에 걸어 놨었다.
"난 저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쓸려고 하는데!"
"미쳤냐."
"미치긴. 얘기했잖아. 엄마가 아무리 다른 사진으로 쓰라고 해도 난 저 사진이 맘에 들어."
"야. 미쳤냐. 누가 영정 사진을 젊은 사진으로 하냐."
"엄마 지인이고 동생들이 와서 저 사진을 보면 뭐라 하겠어. '와~~ 우리 누나 저렇게 이뻤는데...' 하며 옛날 생각을 할거 아냐. 지인들도 나이 들어 쭈글한 모습보다는 '저렇게 젊은 시절이 있었지.'할꺼 아냐."
"아냐. 아냐 하지마."
"내 맘이야."
엄마와 그렇게 실랑이를 가끔 한다.
난 진심이다.
엄마의 저 젊은 사진은 아깝고 야속하다.
저렇게 곱고 이뻤던 엄마는 지금 나이 들어 쭈글쭈글 해졌지만, 그 세월에 자식이 있어 그 힘든 나날을 보냈을 엄마를 생각하면 아프다.
그래서 그 사진은 소중하다.
세월이 흐르면 나이가 들게 마련이지만, 누구에게나 젊고 찬란했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내 마지막 가는 사진은
내 찬란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그때의 사진 한장 남기고 가는것이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