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욕망을 들여다보기
호주에서 공부할 때, 강의 동에서 기숙사 쪽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잠깐 시간 있냐며 나를 불러 세운 건 한 심리학과 대학원생이었다. 심리학 관련 설문 좀 해달래서 호기심에 응했었다. 처음 질문은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가였다. 사실 평소에 별로 두려워하는 게 없었던 나는 잠시 멍했었다. 그리고 나온 대답은 엄마를 실망시키는 게 가장 두렵다는 대답이었다. 이런 대답을 하면서도 내 마음속 깊이 그런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생소했다. 내가 한 말이지만, 굉장히 낯선 대답이었다. 그 후로 곱씹어보았다. 정말 그랬을까? 이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 그리고 그때까지도 가장 큰 두려움으로 꼽힌 것이.
어렸을 적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 놀러 온 막내이모가 답답한 듯 물었다.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첫째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엄마의 가장 큰 자랑이어서 그랬을까?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늘 엄마가 바라는 나의 결정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대답은 무엇인지, 가장 모범적인 결정은 어떤 것인지, 집단의 선을 위한 결정은 어떤 것인지가 판단의 근거였고,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는 사실 뒷전을 넘어서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언제나 명확한 정답이 있는 시험지나 문제집을 푸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묻는 것에도 정답은 항상 나의 욕망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인정해 줄 수 있는 기대하는 바가 나의 대답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이기적이라고 비난받거나 틀린 답이라고 거절될 것인 양 나의 욕망은 늘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그러면서 남이 기대하는 바 남이 원하는 바를 읽는데 더 고도화되었던 것 같다. 웃기는 건 사회문제나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 남들이 원하는 욕망, 마케팅, 시장, 경영에 관한 문제는 늘 냉철하게 분석하고, 목소리 높여가며 당당하게 논쟁을 하지만, 정작 나 개인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주장하는 데는 늘 쭈뼛거렸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이제는 제법 나 자신이 원하는 바에 대해 더 생각하고, 망설임 없이 나의 욕망을 말할 수 있다. 망설임 없다는 게 사실 거짓말일 수도 있다. 그런 찰나를 나 자신에게도 감추는 것일 수 있다. 그래도 이제 머리로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 누구의 기대를 떠나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며, 내 욕망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내가 당당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일말의 두려음을 떨치기는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일부로라도 더 목소리를 높이고, 그리고 더 재빨리 원하는 것을 말한다. 그게 나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그리고 나를 더 잘 대하는 길임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