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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Feb 19. 2020

[제멋대로 영화보기 #9] 조조 래빗

세 살 신념 여든까지 가기 전에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인상적인 OST 선곡과 매끄러운 편집, 미친듯한 연출력으로 이름을 날린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조조 래빗>으로 찾아왔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유의 깊게 본 독자라면 그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카메라에 몇 번 잡히기도 했고 <조조 래빗>으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뛰어난 선곡, 편집, 연출력은 여전히 돋보인다. 더불어 타이카 와이티티는 '상상 친구 히틀러' 역할로 조연을 맡기도 했다. 참으로 다재다능한 감독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히틀러를 찬양하는 나치 추종자이다. 꿈의 그리던 독일 소년단에 들어갔지만 심성이 약한 그는 두려워하고 움찔하는 모습을 금방 선배들에게 들키게 된다. 이에 맨 손으로 토끼를 죽여 자질을 증명하라는 미션을 받은 후 실패하고만 조조는 '토끼 같이 겁쟁이다'라는 놀림으로 조조 래빗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상상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와 어떻게 하면 자신이 겁쟁이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조조는 무리한 시도 끝에 결국 온몸에 큰 상처를 입고 집에만 있는 처지가 되고 만다. 집에 있던 조조는 이상한 소리에 집을 수색하게 되고 마침내 수상한 공간 하나를 발견한다. 그 안엔 조조 기준으로 집에 있어선 안될 괴물 같은 유대인 엘사(토마신 맥켄지)가 숨어 있었고 엘사는 자신을 여기 있게 해준건 조조의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라고 말한다.


 소재를 조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정말 많은 영화들이 나왔었다. 아직까지도 몇몇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오는 <피아니스트>부터 수용소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사울의 아들> 등 여러 편의 영화가 있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나치의 잔혹함을 보여주거나 고통받는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위기가 가라앉고 무거운 영화들이 많다.

 반면 홀로코스트 시대 영화 중 제일 유명하다고 평가해도 될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도 있다. 슬프고 어두운 현실이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를 따라가는 영화의 시선은 희망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조 래빗>은 굳이 분류하자면 <인생은 아름다워> 쪽에 더 가깝다. 잔혹한 나치나 고통받는 유대인의 모습을 진지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아직 어려서 맹목적으로 나치를 추종하는 조조의 시선을 통해, 과거사를 풍자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밝은 편이고 상상 친구로 나오는 히틀러는 권위와 위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개그 캐릭터다.  


 영화를 보면 교육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다. 어른들은 독일 소년단에 들어온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아리안족이 가장 우월한 혈통이라 가르치고 유대인은 머리에 뿔이 달린 괴물처럼 가르친다. 아예 사람처럼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더욱 죄책감 없이 같은 사람을 그렇게 끔찍하게 죽음으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 

 나치에 깊게 빠진 조조는 반 유대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유대인 소녀 엘사를 만나고 나선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엘사가 머리에 뿔도 없고 악마 같은 모습이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고 또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10살의 조조여서 다행인 부분이다. 만약 조조보다 나이가 많고 뼛속까지 나치의 사상으로 뒤덮인 사람이었다면 없는 뿔도 만들어 내 그 즉시 엘사를 처리했을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태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조조가 아직 어렸기 때문이고 이러한 점 때문에 감독은 어린 조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른의 시선보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사건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순수함과 바보 같음은 한 끗 차이여서 때론 고초를 겪고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상황의 본질을 꿰뚫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유대인은 독일인과 다를 게 없다. 우생학을 신봉하며 아리안족 순수혈통을 강조하는 어른들은 이 단순한 진실을 목도해도 외면해버린다. 정말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진실인데, 이 진실에 먼저 도달하는 건 순수한 아이의 시점이다.


 물론 순수한 아이의 시점이 아니더라도 본질을 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조조의 엄마와 독일 소년단의 대장(샘 록웰)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은 체제에 순응해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기 때문에 대대적인 액션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음지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인다. 

 조조의 엄마 로지는 엘사를 집으로 데려와 숨겨준 장본인이기도 하고 영화에서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조국의 신념에 반하는 운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얌전히만 있어도 중간은 갔을 시대에 음지에서라도 행동에 나선다는 건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다. 결국 이 리스크는 공개 교수형이라는 끔찍한 결말로 이어진다. 모든 사람이 지나다니는 거리에 공개적으로 교수형 당한 사람들을 방치해 놓는 건 상당히 야만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을 건드려 무조건적인 추종을 이끌어내는 끔찍한 일이다. 조조의 엄마는 이런 공개 교수형들을 봐왔지만 공포에 잠식되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대장은 비록 국가에 강하게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게 아니라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엘사가 가장 큰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가 유대인임을 알고도 도와주었고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모든 게 끝장 난 상황에서도 조조의 목숨을 구해준다. 이런 어른들이 있었기에 나치를 맹목적으로 따르던 조조가 자신의 신념을 바꿀 수 있었다. 만약 조조의 주변 모두가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명예로운 죽음만을 맞이했다면 나치를 향한 조조의 신념은 더욱 두터워졌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조조에게 남은 사람은 벽장에 숨어있는 엘사와 상상 친구 히틀러뿐이다. 상상 친구 히틀러는 조조에게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며 원래 가지고 있던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키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이미 엄마와 대장의 죽음을 통해 본질을 본 조조는 상상 친구 히틀러를 시원하게 발로 차 창문 밖으로 던져버린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는 엘사다. 자신의 변한 신념과 관계없이 자유를 얻은 엘사는 어딘가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조조에게 있다. 그러나 내적 갈등 끝에 조조는 엘사에게 변화한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둘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재기 발랄한 춤으로 표현한다. 엘사가 조조를 떠날 것인지 아니면 함께 변화된 세상 속을 살아갈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영화가 끝까지 희망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고 기분 좋게 끝난 것을 보면 두 사람의 해피엔딩을 조심스럽게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재다능한 와이티티 감독은 여전히 빛났다. 영화의 텐션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화면 전환을 시켜주는 편집도 좋았고 음악도 좋았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는 마지막 전투신에 나온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이 기막힌 선곡이었다. <조조 래빗>에서는 오프닝에 나온 비틀스의 'I Want To Hold Your Hand'를 꼽고 싶다. 조조가 얼마나 히틀러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히틀러가 당시에 국민들에게 얼마나 지지를 받았는지 비틀스의 노래로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연예인을 방불케 하는 히틀러의 인기에 히틀러가 화답하며 국민들 손을 잡아주는 찰나에 들리는 후렴구 'i want to hold your hand'는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절묘함이었다. 배우로서의 와이티티도 좋았다. 상상 친구 히틀러라는 말만 들어도 어려울 것 같은 역할을 제대로 선보여준다. 영화가 루즈해질 타이밍마다 등장해 텐션을 올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현대 세계사를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인 만큼,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처럼 신선한 관점에서 거침없이 퍼붓는 영화 말고는 괜찮은 홀로코스트 영화를 보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끔찍한 사건을 유쾌한 그림으로 보여주면서도 불쾌감이 안 들게 하는 <조조 래빗>을 보고 역시 미래는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속담 중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버릇 대신에 신념이라는 단어로 바꿔 써 보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게 된 잘못되고 위험한 신념을 계속 유지하고 어른이 되어 확증편향까지 더해져 강한 신념이 되면 그때부턴 돌이킬 수 없다. 인류 역사의 수많은 실수들, 바보 같은 선택의 이면에도 세 살 신념이 여든까지 가다가 생긴 비하인드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오늘 필자의 신념부터 한번 점검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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