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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Feb 19. 2020

[제멋대로 영화보기 #10] 작은 아씨들

결코 작지 않은 아가씨들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우로서 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레타 거윅'이 전작 <레이디 버드>에 이어 이번에도 여성 주인공을 앞세운 영화 <작은 아씨들>로 돌아왔다. <레이디 버드>를 함께 했던 '시얼샤 로넌' 뿐 아니라 '엠마 왓슨', '플로렌스 뷰', '로라 던', '메릴 스트립' 그리고 '티모시 샬라메'까지 훌륭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1860년대의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배우를 꿈꾸는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를 꿈꾸는 둘째 조(시얼샤 로넌), 피아노를 좋아하는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유명한 화가를 꿈꾸는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이렇게 4명의 자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부터 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까지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리고 또 의상은 자매들의 성격을 반영하기도 한다. 아름답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자매들 중 가장 사교적인 메그, 털털하고 솔직한 매력에 덜 여성스러운 옷을 선호하는 조, 피아노를 제외하곤 사교적인 부분에 크게 관심이 없어 옷차림을 크게 신경 안 쓰는 듯한 베스, 언니들에게 지고 싶지 않은 비교의식에 이쁜 옷을 선호하는 에이미. 이처럼 영화에서 의상은 매우 눈에 띈다.  

 모여 있으면 시종일관 밝은 네 자매를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영화 전체적인 색감도 훌륭하다. 어두운 장면에서도 촛불을 최대한 많이 켜고 조명을 끌어모아 어두운 느낌을 많이 배제시키려 한다. 


 스토리는 평범하다. '마치 가문' 4명의 아가씨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네 자매 앞에 '로리(티모시 샬라메)'라는 청년이 운명적으로 이사 오는 시점부터가 과거고 현재는 그로부터 7년 후 셋째 베스가 열병에 걸려 흩어진 자매들이 모이게 되는 시점부터이다. 이러한 교차 진행은 주인공들의 상황이 마치 베일을 벗듯이 공개되는 효과와 함께 영화의 궁금증과 흥미를 높여준다. 평범한 선형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 시점의 색감을 현재보다 더 노랗게 만들어 장면 전환 시 시점이 헷갈리지 않게 장치를 해두었다. 간혹 헷갈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 때는 배우들의 머리 상태나 전후 상황을 비교해보며 어렵지 않게 시간대를 조립해나갈 수 있었다.

 이야기는 네 자매를 둘러싼 이야기 외에 별다른 건 없다. 혹자는 1860년대 잘 알지도 못하는 문화권에 살던 4명의 아씨들 이야기가 현재 한국의 관객에게 의미 있게 와 닿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가 생각보다 더 재밌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게 마냥 지루한 건 아니다. 보통 사람은 성장하면서 꿈을 향해가고 사랑을 만나고 다양하게 느낀 것들을 사색하기 때문에 이 익숙한 듯 다른 남의 이야기가 재미없을 수가 없다. (물론 영화는 인생에서 가장 임팩트 있고 재밌는 순간들만 짜깁기한 거지만) 따라서 남북전쟁 시대의 미국과 현대 대한민국이 통하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만과 편견> 소설을 재밌게 읽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대략적인 느낌이 어딘가 <오만과 편견>이 떠올랐다. 다만 <오만과 편견>의 여주인공들은 시대상에 따라 아주 수동적인 반면 <작은 아씨들>에선 그보단 능동적인 모습이 보였다. 물론 배경 자체가 1860년대이다 보니까 한계는 명확하다. 그럼에도 <오만과 편견>보다 개성이 살아있고 당당한 <작은 아씨들>의 캐릭터들에 정이 많이 갔다.

 남성을 중심으로 돈과 가문에 많은 초점이 맞춰지던 시대에 돈보단 사람과의 돈독한 사랑을 선택하고, 자신의 꿈을 좇아 비혼을 선택하는 등 인물들은 한계 속에서 최대치를 맞춰나간다. 실제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소설 자체가 이렀는지 아니면 각색 과정에서 방향이 잡힌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세련된 1860년대의 모습이었다. 아마 이런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이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통한 지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시각적인 효과와 매력적인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호연. 이 세 가지만 해도 <작은 아씨들>을 볼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필자의 머릿속엔 딱 두 가지가 깊게 남았다. 하나는 시각적인 장면이고 하나는 의미 있었던 장면이다.

 시각적인 장면은 아픈 베스를 데리고 조가 바다를 보여주러 나갔을 때의 장면이다. 텅 빈 모래사장 가운데에 베스가 조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고 그들을 향해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베스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알아챈다. 그래서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없듯이 내 삶도 그렇게 끝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 대사를 하고 와이드 뷰로 전체적인 장면을 잡아주는데, 그때 마치 모래사장의 모래가 바람에 의해 썰물 빠지듯 밀려 내려가는 듯한 그림이 연출된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이라서 인상적이었다.

 의미 있었던 장면은 영화의 결말 부분, 마침내 자신의 소설을 팔게 된 조가 현실과 타협하는 장면이다. 원래 조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 여자가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이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는 출판사 사장의 말에 조는 소설만큼은 결혼이란 엔딩을 선택한다. 하지만 필자는 조의 실제 삶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이 확고한 조의 선택이 그녀 나름대로 해피엔딩일 것이라 믿는다. 시대의 한계가 명확했기에 소설은 많은 대중의 뜻대로 흘러갔지만 그녀의 진짜 삶은 대중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었다


 영화에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는 유년기의 추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비슷한 뉘앙스였다.) 어쩌면 사람은 추억을 먹고사는 생명체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때로는 추억에 잠겨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추억에 잠겨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단 먼 미래에 먹고 살 추억을 만들기 위해 현실에 더욱 충실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 나의 청년기(유년기는 이미 지났으니)도 <작은 아씨들>처럼 아름답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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