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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Feb 23. 2020

[제멋대로 영화보기 #11] 버드맨

과거의 히어로가 자신을 찾아가기까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버드맨>은 올해 아카데미의 주역인 <기생충>보다 5년 앞선 2015년 87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그리고 촬영상까지 거머쥔 그 당시 아카데미의 주인공이었다. 제목만 보면 마치 마블과 DC에서 새로운 히어로 한 명을 탄생시킨 것 같지만 만약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보면 크게 당황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오히려 멋진 히어로보단 추락한 자의 처절한 날갯짓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과거 버드맨이란 성공한 프랜차이즈 히어로 영화의 주연배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리건은 대중들에게 잊힌다. 그는 재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준비한다. 그 과정은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영화는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편집점을 기가 막히게 잘 잡은 롱테이크 기법으로 영화 보는 내내 화면이 끊기지 않고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카메라는 리건의 대기실부터 복도, 무대, 백스테이지의 구석구석, 야외까지 가리지 않고 따라다니며 시간의 순서대로 모든 상황을 담는 것처럼 연출되었다. 더불어 주요 장면마다 깔리는 드럼 연주는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 한 몫한다. 실제로 드러머가 영화적 장치로 중간중간에 두 번 정도 스쳐 지나가기도 하는데 묘한 느낌이 든다. 이런 특이한 기법만으로도 버드맨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필요 없이 훌륭하다. 리건과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스타 연극배우 '마이크'를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은 필자가 좋아하는 배우 중에 한 명이다. 유명한 배우일수록 대표작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캐릭터가 다른 영화의 연기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때가 있는데 에드워드 노튼은 연기하는 캐릭터마다 진짜 그 캐릭터가 된 듯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주인공을 연기한 마이클 키튼은 연기력도 좋고 실제 캐릭터와 싱크로율도 높다. 마이클 키튼도 1980년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으로 주목을 받은 후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는 배우였는데, 영화 속 리건도 버드맨 이후 잊힌 배우라는 점에서 실로 절묘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생각했다. 

<라라 랜드> 출연 전 앳되고 더 날카로운 인상의 캐릭터를 연기한 '엠마 스톤'도 눈에 띈다.


 영화 속 여러 이야깃거리 중에서 필자는 마이크와 리건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먼저 마이크는 연극계에서 흥행이 보증된 연기파 배우이다. 리건의 연극에는 우연히 대타로 참여하게 되는데, 첫 리허설부터 리건의 마음을 사로잡고 바로 실전에 투입된다. 그런데 마이크는 고분고분한 배우가 아니었다. 실제 연극 도중에 소품이 아닌 실제 술을 마시거나 극 중 베드신 연기를 실제로 감행하려 하는 등 기행을 벌인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잘 나가는 배우의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 그는 연기를 하는 데 있어 거짓됨이 없는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배우였다. 이러한 면모 때문에 무비스타(영화판에서 놀던 스타라는 뜻으로 영화 속 연극계에선 낮잡아 보는 용어로 쓰였다)였던 리건과 연기적인 부분에서 충돌한다. 

 그리고 극사실주의 추구에서 좀 더 나아가 마이크는 마치 연극과 실제 자신의 삶이 바뀐 것처럼 보였다. 메소드 연기로서 더 완벽한 연기를 한다기보단 연극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자신에겐 중요한 삶의 한 부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 도중 리건이 마이크가 마시던 술을 소품용 술(물)로 대체하자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술을 바꿔치기했다며 깽판을 치고 베드신 연기후 발기가 되어 불쑥 튀어나온 바지를 관객들에게 내보여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비록 관객이 있지만 그게 역설적으로 마이크가 기행을 벌일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무대 위가 아닌 곳에서 마이크는 리건의 딸 '샘(엠마 스톤)'의 적극적인 유혹에도 무대가 아닌 곳에선 서지 않는다며 거절한다. 보통은 무대처럼 긴장되는 곳에서 위축되는 게 정상인데 마이크는 오히려 반대였다.  


 주인공 리건은 인기를 누리다 추락을 맛본 인물이다. 그의 버드맨 시리즈는 성공적이었지만 리건은 시리즈의 마지막 편 출연은 고사한 것으로 영화 속에서 나온다. 이는 어쩌면 소포모어 징크스와도 연결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의 흥행에 비해 부진한 후속작을 일컫는 소포모어 징크스는 영화배우뿐 아니라 감독, 음악, 미술 등 각계 예술인들이 한결같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아마 잘 나가던 버드맨 시리즈를 중도 하차한 건 후속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여하튼 리건은 대중들에게 잊혔다.

 연극을 통해 재기를 노리는 리건에게는 항상 중저음의 환청이 들린다. 그 환청은 리건을 질책하기도 하고 선동하기도 하며 교묘하게 심리를 뒤흔든다. 이 환청의 정체는 영화 말미에 분명한 환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연기했던 '버드맨'의 환영이었다.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의 곁에는 항상 버드맨이 있었고 무엇을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영화 중간중간 리건이 대중들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대중은 '리건!'이 아닌 '버드맨!'을 외친다. 그러면서 버드맨을 잘 모르는 꼬마들에겐 '이 사람이 왕년에 버드맨이라는 히어로였단다'라는 식으로 설명을 한다. 이러한 대중의 인식은 리건이 버드맨이 아닌 자신 본연의 모습을 더 보여주고자 하는 압박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에 TV 속 마블 아이언맨의 모습도 잠시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으로 볼 때 영화에서 기성 히어로 영화가 판을 치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너네 지금 잘 나가지? 버드맨처럼 시간 지나면 한때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는 필자의 억측일 수도 있다.


  

 리건을 옭아매는 버드맨의 힘은 점점 강해진다. 처음엔 가벼운 초능력을 사용하는 정도였다면 후반부엔 하늘을 날고 괴생명체와 맞서 싸우는 등 환상의 스케일이 달라진다. 이 압박감에 맞서 리건은 최후의 선택을 한다. 연극 마지막 장면에 소품 총이 아닌 실제 총을 들고 와서 자신의 코를 쏴버린 것이다. 긴장감에 빗맞힌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애초에 리건이 자살할 생각으로 실제 총을 사용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무비스타로서 자신의 한계를 규정지으려 하는 버드맨의 환영에 총을 겨눈 것으로 보았다. 영화 내내 자신과 대립하던 마이크의 극사실주의 연기에서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 한 번의 총질로 부와 명예를 다시금 거머쥐는 게 아닌 '리건'이란 사람 본연의 모습을 선보이는 연기를 선택했다.

 병상에서 리건은 자신의 전 부인에게, 버드맨 이후 자신이 힘들 때 바다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그때 해파리가 자신을 공격하는 고통 때문에 죽지 못하고 다시 나왔다고 한다. 죽음을 결심한 순간에 순간의 고통 때문에 삶을 택한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그렇게 살아난 그는 여전히 버드맨의 환영에 시달리며 연극으로 재기를 준비했고 마침내 환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영화의 마지막 리건은 병상에서 일어나 창 밖으로 몸을 던진다. 뒤이어 병실에 들어온 딸 샘은 리건의 흔적을 좇다 창 밖을 바라본다. 여기서 만약 샘이 창 밑을 바라보고 머리를 감싸 쥐며 절망했다면 앞서 총을 쏠 때 리건이 실수한 게 맞고 그는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암울한 결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샘은 창 밑에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샘은 마치 놀라운 것을 본 듯 환하게 웃는다. 그의 앞엔 버드맨의 환영에서 벗어나 그 자체가 버드맨이 되어 힘찬 날갯짓을 선보이는 리건의 모습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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