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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Aug 25. 2021

[제멋대로 영화보기#13] 줄리에타

딸은 왜 엄마를 떠났을까?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부터 보고 싶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줄리에타>를 이제야 봤다. 영화를 틀자마자 주인공 줄리에타가 입은 드레스의 빨간색이 화면 가득 존재감을 뽐냈다. 그 뒤로도 빨간색은 벽지, 자동차 등 사물만 달라질 뿐 줄기차게 등장했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를 몇 편만이라도 본 분이라면 이런 강렬한 색채의 사용은 익숙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도 색채만큼 자극적인 게 많다는 걸 아실 것이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주로 정열적인 잘못된 사랑이나 특정한 욕망으로 인해 맞이하는 파국을 다루곤 한다. 뜨거운 사랑, 불타는 욕망이라는 점에서도 고통스러운 파국이라는 점에서도 빨간색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잘 들어맞곤 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도 강렬한 빨간색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서 비슷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는 끝까지 봐야 아는 법! 전작들과 어느 정도 유사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줄리에타>는 이 영화만의 이야기와 거기서 비롯되는 감정이 있었다.

 


 줄리에타는 왜 12년 동안 딸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걸까? 알 수 없는 의문을 남긴 채 영화의 전반부는 줄리에타의 인생을 회고한다. 그리고 어떻게 관계성이 형성되가는지 보여준다. 첫 관계성은 사랑하는 남자 '소안'과의 만남이다. 두 사람의 만남을 외관만 보면 소안은 잘생겼고 줄리에타는 이쁘고 낭만적인 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비포 선라이즈>가 떠오를 법한 느낌이다. 하지만 내관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줄리에타는 소안과 만나기 전 기분 나쁜 남자를 마주한다. 그리고 불쾌한 느낌을 받아 그와의 대화를 피해 도망치다가 소안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기분 나쁜 남자가 자살을 해버렸다. 순식간에 줄리에타의 불쾌한 감정은 죄책감으로 바뀌게 된다. '내가 그와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눠줬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괴로움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런 줄리에타 옆에 소안이 있었다. 소안과 사랑하는 감정이 싹튼다. 동시에 가득 찬 죄책감을 덜고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의존하고 싶은 감정도 싹튼다. 한편 소안은 유부남이다. 그의 아내는 몇 년 전부터 식물인간이 돼버렸고 소안도 심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열 줄리에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둘의 만남이 <비포 선라이즈>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낭만적으로 보이기보단 어딘가 삐끗한 만남으로 관계를 시작한다.

 이후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중 줄리에타는 소안으로부터 그리움이 담긴 초대 편지를 받는다. 부푼 마음에 그녀는 바로 소안을 찾아간다. 찾아간 집에 소안은 없다. 대신 가정부 '마리안'이 그녀를 맞이하며 의미심장한 말들을 던진다. 이를 통해 소안이 오랜 친구인 '아바'라는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듣게 된다. 뒤늦게 돌아온 소안은 별다른 말도 없이 사랑부터 나눈다. 그리고 소안은 줄리에타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그녀의 직업은 기억하지 못했다. 영화에서 확실하게 언급을 안 해줬지만 이런 점들로 보아 소안은 아바 말고도 많은 여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줄리에타는 소안을 떠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기도 했다. 딸 '안티아'를 낳은 줄리에타는 그대로 소안과 함께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는 멋진 집에 자리 잡는다. 삐끗한 만남으로 시작된 관계는 더 어긋난 채 지속되게 됐다. 젠가를 쌓을 때 보면 어긋나게 쌓아도 어떻게든 쌓이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런 경우는 매우 불안한 상태로 조그마한 균열만 있어도 바로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둘의 관계도 이와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줄리에타의 아버지도 소안과 비슷한 사람이다. 줄리에타의 어머니가 병마로 힘든 사이 아버지는 젊은 간병인과 새 사랑을 시작했다. 어머니를 보며 줄리에타는 참 많이 안타깝고 힘들어했다. 다만 그녀는 어머니의 상황이나 자신의 상황이 크게 다를 것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불안정한 상황이 무너지게 된 날은 줄리에타가 오래된 가정부 마리안을 해고하는 날이었다. 줄리에타는 오래도록 마리안이 자신과 소안이 만나지 못하게 악의적인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해왔고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하지만 마리안은 그저 진실만을 말했을 뿐이다. 그 진실이 아팠을 뿐. 떠나는 날까지도 마리안은 소안이 여전히 아바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아픈 진실을 알렸다. 그리고 추궁 끝에 소안은 결국 사실을 시인했다. 내내 불안하고 어긋나 있기에 언젠가는 터질 폭탄이 터졌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이 사건의 연장선 격인 간접적인 이유로 소안이 죽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완전한 파국을 맞이했다. 여기까지가 보통 알모도바르 영화하면 떠오르는 유사한 분위기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줄리에타>에서는 이 파국이 진정한 파국으로 이어지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소안의 죽음을 기점으로 영화가 후반부로 달려가면서 새로운 관계성이 중심으로 등장한다. 바로 줄리에타와 딸 안티아의 관계이다.  


 열차 속 남자의 자살로도 강한 죄책감을 느끼던 줄리에타에게 소안의 죽음은 회복하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그 여파로 줄리에타는 매사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반면 안티아는 황소처럼 강했고 친구인 '베아'와 함께 알뜰살뜰 엄마 줄리에타를 챙겼다. 이런 딸 덕에 줄리에타는 우울증도 극복하고 점점 일상생활을 살아갈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녀관계에 파국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열차 속 남자의 자살로 얻은 죄책감을 소안에게 의존해 치유한 것처럼 소안의 죽음 이후엔 안티아를 좀 과하게 의존하는 정도의 문제는 있었지만 그다지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둘 사이엔 특별한 이슈가 없었고 날 선 대화도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갈 무렵 영성수련회를 떠난다던 안티아는 줄리에타를 완전히 떠나버렸다. 그야말로 관계의 단절, 줄리에타 입장에선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12년 동안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줄리에타에겐 소안의 죽음보다 안티아의 이별이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안티아를 찾았고 간절하게 소식을 기다렸다. '로렌조'라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나서야 간신히 안티아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별한 지 12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베아를 통해 안티아의 소식을 접한 줄리에타는 예전처럼 무너지고 만다.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오래 끊어오다가 다시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것처럼 줄리에타도 걷잡을 수 없게 무너졌다.

 그렇다면 안티아는 왜 줄리에타를 떠났을까? 엄마의 과한 의존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사실 안티아는 마리안을 통해 소안의 죽게 된 이야기를 들었고 아빠의 죽음에 엄마의 책임도 있다는 걸 어릴 적부터 알았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줄리에타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낼 순 없었다. 그렇게 가슴속에 쌓아둔 이야기는 곪았고 줄리에타의 죄책감은 안티아에게로 옮았다. 엄마와 아바뿐 아니라 소안이 죽는 순간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게 논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다. 줄리에타는 죄책감의 순간 딸을 더 강하게 찾았지만 안티아는 죄책감의 순간 엄마 곁을 완전히 떠났다.

 줄리에타와 안티아가 소안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날 선 대화라도 오고 갔으면 그 순간은 힘들었겠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회복하는 단계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모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살았지만 그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



 영화의 마지막 줄리에타는 드디어 안티아의 소재지를 알게 된다. 공교롭게도 아빠인 소안의 이름을 딴 안티아의 첫째 아들 소안이 9살의 나이로 강물에 빠져 죽게 되었고 그 고통을 견딜 수 없던 안티아가 엄마를 찾은 것이다. 안티아를 만나러 가는 줄리에타의 긴장되고 설레는 감정을 뒤로한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결말은 과연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어쩌면 순간의 힘든 감정으로 12년간 단절된 관계였던 엄마에게 손을 내민 안티아가 삐끗한 관계의 시작을 여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아까 필자가 말했던 것처럼 잘못되고 불안한 관계가 쌓여 결국 다른 파국으로 나타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결말을 그렇게까지 슬프게 보고 싶진 않다. 물론 잘못된 관계가 쌓이면 터지는 건 맞지만 회복의 여지가 있다. 안티아에게 평생 말하지 않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줄리에타가 기록해나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줄리에타는 새로운 건강한 관계를 지속할 방법을 이제는 알지도 모른다. 12년의 간극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모녀가 농도 짙은 감정의 골을 걷어내고 건강한 관계로 회복하기를 멀리서나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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