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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밍고 Jan 20. 2020

잘 안 쓰는 말들

영원, 진심, 불멸... 뭐 그런 것들



의도적으로 피하는 말들이 있다. 입으로 내뱉으면 오히려 의미가 퇴색되는 것들. 말이 아닌 글자로만, 혹은 개념으로만 남아있어야 아름다운 말들. 



며칠 전 나와 만나는 친구는 내가 '진심'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서 좋다, 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한 인간의 디폴트 상태는 진심인 거지. 그러니 굳이 진심을 입에 올릴 필요는 없다. 진심이 아닌 경우, 혹은 진위가 불분명한 경우에만 진심을 운운할 수 있게 된다. 재밌는 경우다.



또 어떤 말을 안 쓰는지 생각해 봤다. 그 말들 중엔 '영원'이 있다. 영원이란 개념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는 달리 이미 개념 자체로 너무 불안하고 불명확하다. 어디까지가 영원인가. 불멸하지 않고 살아있으면 그게 영원인가. 실제로 그런 차원이 존재하기는 하나? 내 육체가 내 마음이 변치 않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영원을 맹세할 수는 없다. 모두는 세계와 유기적이고 상대적으로 세계와 소통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어떻게 영원을 맹세할 수 있겠는가.



영원 비슷한 걸 맹세하며 나와 내 사랑하는 이는 차라리 물성이 있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빗대기로 했다. '황금 같은 마음'을 갖자고. 조금 투박하고 상투적이지만 나는 이 표현이 썩 맘에 든다. 지난 수세기간 변하지 않는 황금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금술사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가. 우리는 지금 그것을 마음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설령 이것이 헛된 시도라도 우리는 안다, 그 노력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연금술사의 매력은 그런 데에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어느새 구도적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들.





황금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 나를 좀먹던 우울감에서 벗어나고자 바깥으로 나가 햇볕을 쐬며 걷고, 바른 언어를 골라 쓰며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지는 것들이지만 우리가 제대로 된 연금술을 펼치기 위해선 이것들이 필수 선행 조건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해낼 때의 내가 좋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어쩌면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나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아, 써 놓고 보니 나도 참 중증이다. 이렇게 글이 다채롭질 못 하다. 그래도 좋다, 그래도. 내 글이 단조로워 봐야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그저 황금 같은 마음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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