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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30. 2022

네 말이 맞아. 무조건 난 네 편이야.

새벽 4시, 2시간째 갈비뼈 통증이 느껴지고 점점 그 강도가 심해졌습니다. 끝내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려 버렸습니다.

“엉엉, 아파~”

“왜? 왜 그래?”

“여보야 갈비뼈가 너무 아파, 잠을 못 자겠어.”

“너무 울어서 그렇잖아. 그래서 그래. 진통제 가져다 줄게 먹어.”

그러고 보니 어제도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아침 출근을 위해 씻으러 욕실을 들어갔습니다. 그때 문득 전날 밤 큰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엄마가 시집와서 아버지하고 분가를 하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안 된다고 졸도를 하시는 바람에 20년이나 혼자서 시골에 살았잖아. 엄마가 위암이 걸리고 나서야 분가를 했어. 엄마 정말 고생 많이 했어. 그러니 아버지한테 한이 맺힌 거지.”


엄마는 평생 아버지가 나쁘다고 서운하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저는 정말 불편했습니다. 일단 아버지는 책처럼 바른분이고 낭만적이고 이 시대 어떤 아버지들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딸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습니다. 그중 가장 사랑을 받고 자랐던 나, 그러니 저는 늘 엄마가 만족을 모르고 투덜거린다고 엄마를 나무랬습니다. 

그럼 엄마는 또 뽀로뚱 아이처럼 삐쳐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저거는 한 번도 내 편을 안 든다. 니는 왜 내 보고만 뭐라고 하는데. 왜 내 편을 안 드는데?”

“엄마가 맞는 말을 해야 편을 들어주지.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엄마 혼자서 우리 6남매를 어떻게 기를거야? 왜 아버지 감사한거는 생각 안하는데, 그 시대가 그래. 고생하는 시대였어. 엄마만큼 고생 안한 사람이 어디있어. 그래도 엄마는 아빠 덕분에 사모님 소리도 들어보고 우리가 이렇게 다 잘 자라서 부족한거 없이 해주는데 왜 매번 아버지 못한것만 이야기 하는데?”


“시끄럽다. 니하고는 말하기 싫다. 아쿠~ 김서방, 저 성질 더러운거 하고 산다고 욕본다. 내가 우리 김서방 착한 줄 알고 있다.”

매번 그렇게 끝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래도 헤어지는 시간에는 엄마를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고 엄마도 사랑한다며 다녀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떠 오르며 샤워기 물을 쏟아내던 그 순간 폭풍 눈물이 올라왔습니다. 

‘아~ 그냥 엄마가 맞다고 해 줄걸, 아빠가 엄마 너무 외롭게 해서 슬픈 시간이었겠다고 해 줄걸. 그게 뭐라고 왜 나는 그렇게 매번 엄마가 틀렸다고 부정했을까? 남들에게는 잘만 해주는 공감을 왜 나는 엄마에게는 안 해 준 것일까?’


또 엉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이리저리 뒤돌아보면 엄마에게 최선을 다한 시간이라 다른 후회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가 그렇게 또 사무쳐 옵니다. 

어릴 때부터 고집이 세고 남다르던 나는 늘 엄마와 부딪혔습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된 후 제일 엄마의 마음에 들어앉은 이도 나였습니다. 

“니는 내가 낳았지만 어디서 이런게 태어났노 싶다. 우리 딸 똑똑하데이~”

제가 사무관 승진을 하던 날 엄마에게 기분이 좋아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나 사무관 승진했어.”

“아쿠, 잘했다. 정말 좋다. 그런데 그게 뭐하는기고?”

“ㅋㅋㅋ 엄마 옛날에 공공근로 다닐 때 죽은 면장 사모님이 잘난척해서 속 뒤집어진다고 했잖아. 그 면장하고 같은 계급이야. 그 면장이 된 거야.”

“정말이가? 아이고 좋다. 내 참말로 좋다.”


생각해보면 나름 효도를 한 딸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해 보았다며 죽기 전에 외국 한번 가 보는게 소원이라는 엄마를 위해 일본 여행을 갔었고 시부모님과 4분 어른을 모시고 1박 2일로 순천박람회 여행도 다녀왔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그 공감이 문제였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같은 병실 환자들에 대해 좋지 않은 소리를 하면 또 나는 엄마가 나쁜 마음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엄마의 서러움을 메워주지 못했습니다. 

뭐 내가 그리 도덕적으로 잘 산다고 우리 엄마 마음 한번을 호응해 주지 못했을까요?

나는 남편이나 주변 사람이 나를 부정하면 세상 무너지듯 서러워 하면서 왜 그 마음을 몰랐을까요?


딸이 어린 시절 참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늘 그리 말해주었습니다. 

“ㅇㅇ아 지금 힘든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미운 오리속에 있는 백조야. 네가 너무 뛰어나서 그들이 잘 몰라봐서 그래. 그러니 힘내.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야. 어떤 순간에도 네 뒤에 있을거니까 걱정말고 살아.”

그때의 지지로 딸은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엄마가 자기를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세상없는 사랑스러운 딸로 엄마에게 매번 다가옵니다. 

그렇게 내 자식에게는 당연하다는 듯 보여준 마음이고 타인에게도 나누어준 마음인데 왜 이제야 그걸 깨닫는지 미칠 노릇입니다. 


엄마와의 시간을 뒤돌아보며 나는 앞으로 남들이 다소 욕할 수 있어도 내 사람들에게 언제나 무조건 그들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주변 하나도 못 지키면 남이 무슨 소용입니까?

“네 말이 맞아, 무조건 난 네 편이야.”

늦은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그럽니다. 

“아니 ㅇㅇ이는 왜 그런식으로 하는지 모르겠어. 이상하지 않아?”

“맞아, 당신 말이 무조건 맞아. 그 ㅇㅇ이 이상하네. 나 같아도 화 날거 같아.”

“그치?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응, 아니야. 당신이 옳아.”

아이처럼 남편은 해맑게 웃으며 좋아라 합니다. 


결국 그리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난 평생 한 사람의 마음에 응어리를 남겨서 보내버렸습니다.

그러니 이 새벽 진통제를 먹고서야 진정이 되는 갈비뼈 통증을 만나나 봅니다. 

이 정도 아픔이야 엄마가 안고 간 시간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새삼 엄마가 또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의 삶에 새로운 깨달음 하나를 던져주며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를 봅니다.

“엄마, 미안해. 내가 부족해서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진짜 미안해. 보고 싶다.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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