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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30. 2022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행복한 추억만으로도

른 새벽 경제뉴스를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인플레이션, 강달러 등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러다 기사 하나에 또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이 메여옵니다.  

오늘부터 코로나로 인한 통제는 다 사라지고 심지어 병원의 대면면회가 허용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도 기다리던 소식이었습니다. 

엄마가 2021.9월 병원에 입원하고 부터 엄마를 만날수가 없었습니다. 한달에 한번 허용되는 비대면 면회로 유리창 너머 엄마를 전화기로 애타게 부르며 매일 가슴아픈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도 애절하게 우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안타까워 미칠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체념과 우울로 체력이 약해진 엄마는 끝내 코로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엄마가 돌아가시자 마자 거리두기가 사라지고 병원면회가 허용이 된다고 합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이 딱 맞는 말입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참 지랄이다. 모든것이 타이밍이구나. 아무리 좋은것도 내가 필요한 그 순간 가질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구나. 그저 이순간 내가 통제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일만이 진정한 행복이고 축복이다.'

문득 잘살아보겠다며 오늘을 인내하고 희생하는 시간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옵니다. 


엄마의 죽음을 맞이한 지 16일째, 옅어지는 듯 깊어지고 괜찮은 듯 괴로운 감정에 아직도 나는 또렷한 기준을 못 찾고 있는 중입니다. 어느 순간은 미안하고 괴로운 생각에 숨이 막히고 어떤 순간은 멍한 백치처럼 정상적인 판단이 안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다 오늘은 한줄기 추억이 떠 올라 미소를 한번 지었습니다. 

엄마가 건강하게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날 제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내다. 니 병원에 통닭 몇 마리만 배달시키라. 다른사람들은 다 피자에 통닭에 간식으로 한턱씩 다 쐈는데 내만 안 샀다. 그라니까 좀 보내라.”


엄마는 통닭도 피자도 먹지를 못합니다. 

44년전 위암 수술을 한 엄마는 제한된 음식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분명 간식으로 온 그 음식들을 먹지는 않았을것입니다. 

그렇지만 남들에게 기죽기 싫어하던 엄마는 내가 그 정도 능력은 된다 하는 보여주기가 하고 싶었던 겁니다. 

엄마가 요구한 배달 시간은 오후 3시 30분! 

야식으로만 먹던 치킨을 낮시간에 주문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줄 처음 알았습니다. 

일단 그 시간에 가게 문을 열지 않으니 전화 주문을 할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곳에서나 이름 없는 싼마이 치킨을 주문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법 괜찮은 브랜드 중에 선택을 하려니 이것도 하나의 일거리가 충분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끙끙거리며 네이버 지도를 펼쳐두고 병원 인근 치킨 가게를 샅샅이 검색에 들어갑니다. 

그러다 구원의 빛처럼 부지런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한 가게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사장님 3시 30분까지 ㅇㅇ병원 ㅇㅇ호로 치킨 4마리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보내주세요. 저희 엄마가 입원해 계시는데 간식으로 먹을거에요. 직접 올라가지는 못하실거니 엄마 간병인 여사님 핸드폰 번호 알려드릴게요. 돈은 계좌번호 알려주시구요.”

“아, 네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 맛있게 해 주세요. 우리 엄마 기분좋도록~”

“염려마세요”


그렇게 저는 엄마의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통닭 잘 먹었다. 고맙다. 수고했다. 우리딸.”

“응, 다행이다. 또 먹고싶은거 있으면 전화해.”

보통 삶을 사는 엄마는 남들에게 보이는 체면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기적으로 병원 물리치료사, 간호사, 의사 선생님께 간식을 보냈습니다. 


봄이면 쑥떡도 보내고 과일, 호두과자 등 메뉴도 다양하게 세팅했습니다. 

병원에서 엄마의 생일을 맞이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온 병실과 의료진에게 생일 턱을 거하게 내며 부탁을 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생일이라 음식을 좀 준비했어요. 엄마 기분 좋도록 얼굴 보면 축하한다는 말씀 한마디만 해주세요.”


그날 정말 엄마는 의료진의 많은 축하와 주변인들의 부러움에 어깨가 으쓱하며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했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울타리는 아이의 힘이 되듯 그렇게 성인이 된 자식으로 엄마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은 나였지만 역시나 형제들의 시간과 돈이 함께 했었구요. 

오늘 그 시간들이 생각난 것입니다. 아프고 힘든 시간이지만 사랑하는 자식의 지지와 응원이 그래도 엄마에게는 힘이 되는 것을 분명히 목격했습니다. 사람이 상황은 어쩌지 못하지만 그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어떠한것인지에 따라 충분히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오늘 새벽 또다시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보내고 싶은 것일까?

 

‘이왕이면 너무 즐거운 파티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이의 마음이면 좋겠다. 아프고 슬픈 기억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더 많으면 좋겠다.’

남편, 딸, 아들과 더불어~ 

 그렇게 생각하니 사소한 감정들로 다투고 상처주고 아파할 시간이 없습니다.

토요일 남편과 정말 하찮은 일로 감정을 상했습니다. 그런데 숲속 길을 걸으며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그 작은 일이 뭐라고 우리가 이러고 있나 싶은겁니다. 남편에게 가만히 다가가 꼬~옥~ 안겨 봅니다. 

남편도 따듯하게 꼬~옥~ 안아줍니다. 

그러니 더 이상은 말이 필요없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녹아내립니다.


주말이라고 집에 온 온 딸을 다시 부산에 있는 대학 기숙사로 데려다 주는 길, 유명한 밀면 맛집을 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고급진 카페에서 달콤한 아포카토와 플레인스콘도 먹고...

너무도 편안한 마음과 너무도 사랑스러운 사람들....

마지막 그 어느 날도 이런 장면이면 좋겠습니다. 

정말 평화로운 시간, 맛난 음식과 따듯한 이야기로 흐르는 물처럼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그렇게~

그러니 오늘 나는 이미나 죽기 전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저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행복한 추억만으로도~~~


유난히 따듯한 날씨에 파릇한 나뭇잎이 초록으로 변해갑니다. 하늘을 보니 그리도 맑고 푸릅니다.

“엄마, 따듯한 곳에 갔어? 나 이렇게 따듯한 추억으로 엄마 그리워해도 되는 거지? 나 그래도 엄마에게 좋은 시간도 만들어 준거지? 사랑해,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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