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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29. 2022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문이 열린다


“엄마, 내가 아는 언니는 요즘 스트레스가 엄청 심해서 탈모가 생겼대. 그 언니가 3수를 했는데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졸업 후에는 아무런 도움을 안 준다고 했나봐. 그래서 취업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야. 나도 불안한데 그 언니를 보고 있으면 진짜 연약한 유리잔 같아.”


“어휴, 공부하기도 힘든데 벼랑 끝으로 몰리면 얼마나 마음이 불안할까.”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감사해. 당연히 한 번에 붙을 거고 붙어야 하지만 만에 하나 천에 하나 내가 실패해도 엄마가 나 밥은 먹여 줄 거잖아. 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거잖아. 맞지?”


딸도 불안한가 봅니다. 그렇게 엄마의 긍정적 답을 유도하는 모습에 울컥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저도 그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약 5년의 시간들,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치고 좌절하고....

그때부터였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참 어렵구나~~~


 제 삶은 대학 졸업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나누어지는 느낌입니다. 

기억의 조작인지는 몰라도 저의 20대 초반 삶에는 실패도 슬픔도 아픔도 거의 없습니다.

늘 부족해도 넘치는 사랑으로 안아주던 부모님과 실패해본 적 없는 성과물들 그리고 일상적인 행복들.

그런데 그때까지 누리고 이루던 성벽이 하루아침에 유리파편처럼 깨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취업시험에서 떨어지던 날 저의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힘들었지요. 다만 그 힘들다는 감정이 어떤 색깔이었는지 조차 모를만큼 큰 충격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시작이었습니다. 결혼, 출산, 취업, 직장생활, 돈, 인간관계 등으로 연결되는 나의 30대와 40대의 사연들은 줄줄이 비엔나처럼 가슴을 후벼파는 시간으로 나열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하는 사연마다 ‘아, 이런게 힘든 시간은 처음이야. 살면서 만난 일 중에 가장 힘든 것 같아.’를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즉 나날이 인생의 난이도가 우상향 직선 그래프를 그리는 마법을 만난 것이지요. ㅎ

뭐 여하튼 저는 울면서 길거리를 걸어가는 아이처럼 너무도 불쌍하게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까무룩~ 졸도하여 병원 응급실을 몇 번이나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이 엿 같다고 몇 병의 쓴 소주를 마시고 토악질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중에도 세상은 나의 사연 따위는 안중에 없이 제 갈 길을 갔고 나이가 들고 아이들도 자라고 또 나는 사회의 어느 자리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가 성숙한 것인지 원래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저절로 철이 드는 것인지 신기하게 세상이 좀 많이 달리 보이는 시간입니다.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게 뭐라고 그리 힘들어 했을까?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왜 그때는 그리 나를 괴롭혔을까?’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꼭 출근하는 아침이면 그럽니다.

“엄마, 오늘 준비물 ㅇㅇ이 가져 가야해”

“아니,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거야. 진짜 엄마 못 살겠다. 그거 하나도 못 챙기고 너 바보야?”

지금 생각하면 참 제가 바보 같은 엄마입니다. 물론 아이가 미리 미리 잘 챙기면 좋았겠지만 막말로 아이니까 그럴수도 있는거 아닙니까? 

그게 뭐라고 아이를 그리 닦달하고 혼내고 결국 눈물을 보고야 마는 무식하고도 무식한 엄마였습니다.


후회라는 것은 이럴 때 하는게 맞을 겁니다.

세상사는 대부분 일이, 처음 맞이한 불편하고 힘든 감정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언젠가 참치 캔을 따다 실수로 엄지와 검지 사이의 손등 홈의 살을 잘라버렸습니다. 

캔 뚜껑을 따려고 단단하게 힘을 주며 팽창한 덕분에 정말 잘려도 제대로 잘렸습니다. 


살점이 너덜거리고 피가 물처럼 솟구쳐 흘렀습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서 무얼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급하게 남편을 부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응급실로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차분하게 마취를 하고 바늘로 살을 꿰메어 주셨습니다.

여기저기 힘없이 너덜거리던 살들이 꿰맨 실 덕분에 잘 오므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바라본 의사선생님이 한마디 하십니다. 

“다행히 신경은 손상이 안 되어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며칠 동안 물만 넣지 마세요. 다만 제가 보니 손보다 환자분이 너무 놀라서 쓰러지실까 걱정됩니다. ㅎㅎㅎ ”

갑자기 호들갑을 잔뜩 뜬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그 순간에는 무서웠단 말이지요. ㅎ


 그렇습니다. 살아보니 그때는 분명 큰일이지만 지나고 보면 흘러가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수없이 울며 소주잔을 기울였었는데 이제는 무엇이 그리 아프고 힘들었는지 기억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애써 기억하려고 해도 실제 기억도 나지 않구요. 

인간의 망각에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실제 그 일들이 중요하지 않았던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가지는 압니다. 

인생에 힘든 일을 만나면 죽을 것 같지만 절대 죽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모든 일은 다 지나고 나면 별일이 아닙니다. 정말 쉬운 일도 있고 반대로 힘든일도 있지만 분명 다른 해결책을 만납니다.


 27년 전 나의 모습으로 고민하는 어린 딸들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너무 걱정하지 마. 세상은 말이지 정말 신비한 힘이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 다 지난 일이 된단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렴~”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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