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등산을 갔습니다. 바쁜 걸음걸이를 유지하려니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하체근육이 튼튼해야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운동을 한다고 해도 별도 근력운동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나이 40이 되기 전까지는 늘 숨쉬기가 전부인 인생이었습니다. 극도로 표현하자면 운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어느날 살기 위해 또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 하다보니 중요해지고 또 열심히 해지는 인생의 원리를 만납니다.
그러니 요즘은 숨쉬는 것 만큼 자연스럽게 운동을 합니다. 며칠전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띄워준 건강영상에서 그런말을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누워있지 마세요. 그럼 인간의 근력은 다 빠져버리고 건강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아파도 걸어 나가세요.”
그만큼 우리의 근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힘든 산길을 가다 문득 느낍니다.
발끝을 보며 걷던 눈길이 제 종아리에 머무르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 나는 참 튼튼한 다리를 가졌구나. '
결코 야위다 할 수 없는 튼튼하고 단단해 보이는 두 종아리와 허벅지가 내 몸을 잘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생각이 떠 오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유독 하체가 튼튼했습니다. 일명 하체비만이었지요. 아직도 기억납니다.
대학교 3학년때인가 남편의 시골집에를 놀러갔는데 입고 간 바지가 젖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남편의 둘째 누나의 청바지를 입으라고 내 주었는데 세상에나 디자인이 스키니 진이었습니다.
체형 중 허벅지가 가장 통통한 제가 절대로 입지 않는 디자인이 스키니 진 이었습니다.
어린마음에 얼마나 민망하고 당황스럽던지... ㅠㅠㅠ
그날 저는 결국 그 바지를 입지 못하고 체육복 바지를 얻어 입고 헐렁하게 돌아다닌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도 아주 오래 동안 늘 하체 비만형인 제 몸매가 콤플렉스였습니다.
심지어 상체와 하체가 사이즈가 다르다 보니 옷을 사는데도 불편함이 있었구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며 신기한 현상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그리 비만이 아닌 듯 한데도 관절염을 앓는 사람들이 백프로 듣는 말이 있었는데 “살을 빼세요. 몸무게를 다리가 못 이겨서 그래요. 건강을 위해서 살을 빼셔야 해요.”
그리고 허리가 아파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가만 보니 우리의 다리가 자신의 상체 무게를 안고 가는데 체형상으로 상체가 하체보다 발달하면 그 무게감에 관절염이 오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살면서 상체 무게로 다리가 힘든 경험이 없습니다.
어이없게 묘한 공평함을 맛보는 순간입니다.
어린시절의 콤플렉스가 나이 든 지금에는 최고의 건강 조건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참 영원히 좋은것도 영원히 나쁜것도 없습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가만 보면 이것만이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어린시절 교사시험을 그만두고 행정직을 했을 때 많이 아쉬웠지만 지금와서 보면 또 지금 내 모습이 좀 더 나아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때 그것이 나쁜 조건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으로 내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어찌 보면 그런 인생의 변덕스러움에 맞추며 산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지만 반대로 현재 만나는 모든 일에 마음 다치며 에너지를 쓸 이유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은 오늘 모든 정답이 정해지는 단답형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쓰고 또 쓰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다 보면 진정한 정답에 도달하는 진행의 과정 같습니다.
인생이 단 한번 기회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끔직할까요?
다행히 인생은 그 마디마다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열리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건강한 병아리를 꿈꾸며 한 알의 달걀을 품어내는 암탉처럼 희망을 바라봅니다.
세상에 절대 진리는 없습니다. 돌고 도는 원처럼 결국은 또 어딘가에서 만나 제 가치를 뽐내는 그 시간들만이 있을뿐입니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도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 나만의 빛남을 만나리라 믿습니다.
그저 몇 발짝 조금만 더 나아간 어느 곳에 기다리고 있는 그 사연들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