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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Oct 29. 2022

천원의 행복, 정서적 부자

1997년 12월 21일 5년 연예끝에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참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결코 빠질 수 없는 IMF가 선언된 시점이었습니다. 

1997.12.3. ~ 2001.8.23.까지 우리나라는 IMF 경제체제 하에서 뼈를 깍는 고통으로 노력하던 시기입니다. 달러가 없어 맞이한 외환위기이니 민간인의 해외여행은 금지되었고 우리는 신혼여행도 소박하게 제주도로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남편은 1997,7월경 경찰공무원에 합격하여 결혼당시는 경찰학교에서  교육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1998년 4월, 6개월간의 경찰학교 교육훈련을 마치고 순경으로 첫 발령을 받았구요. 

당시 남편의 월급은 한달 98만원 ~ 110만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돈으로 한달 30만원 적금도 넣고 집안 대소사도 챙기며 신용카드도 마이너스 통장도 없이 잘 버티었습니다. 

어느 달인가 정근수당과 명절휴가비가 지급되어  남편의 월급이 150만원을 받아왔더랬습니다. 진짜 저는 그날 너무 기쁘고 마음이 든든해서 매달 이만큼씩만 받아다 주면 금방 부자가 될것 같다는 순진한 생각도 했었구요. ㅎ 


적은 월급에 적금넣고 각종공과금 내고 이렇게 저렇게 챙기다 보면 늘 두사람의 생활비는 채 15만원 전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 남편은 늘 말했습니다. 

"다음에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면 내가 걔들 과자는 마음놓고 사줄수 있어야 할텐데..."

그러다 정말 2000.1.7.  딸이 태어났고 동시에 적금 30만원이 불가능해졌습니다. 한마디로 생활고가 시작된 겁니다. 나 혼자 몸이야 안먹고 안쓰고 버틸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그것이 안되었습니다. 그러니 답은 돈을 더 벌어야 했습니다. 


저는 신기하게 한번도 돈 잘버는 남자에게 시집가서 편하게 살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냥 돈은 제가 어떻게든 같이 벌어서 힘을 보태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당찬 생각과 달리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때까지 백수였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긴 합니다. 

친정엄마가 놀고 있는 나를 늘 걱정했습니다. 그럼 제가 그랬지요. 

"엄마 걱정하지마. 돈은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벌어. 나 떡볶이 잘 만드는데 떡볶이 장사하면 돈 많이 벌것 같아."

그때 우리 엄마는 진짜 화를 내며 경상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지요

"야이~ 년아, 내가 니 떡볶이 장사 시킬라고 안먹고 안쓰고 아껴서 대학공부 시킸는줄 아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지금 생각하면 제가 들어도 복장 뒤집어지는 소리를 한것 같습니다. ㅋㅋㅋ

여하튼 저는 이 악물고 공부해서 2000.5.9일경 치루어진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2000.10.5일 첫발령을 받았구요. 

아직도 기억합니다. 첫월급 67만원. 

저는 그돈을 딸아이의 친환경 교구사는데 홀라당 써버린 기억이 납니다. 그동안 돈이 없어 못 사고 있던 그 한풀이를 했던 거죠. 


진짜 이제는 제가 부자가 금방 될것 같았습니다. 맞벌이를 하는데 뭐가 두려워겠어요.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물건을 사는데 제법 당당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생각하면 그게 좀 그시기 합니다. 

매번 5천원짜리 수박을 먹다 1만원짜리 수박을 사고 1천원짜리 고등어를 사다 너무도 목에 힘주고 3천원짜리 고등어를 주문하는 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유난히도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해 겨울철 난방을 따듯하게 할수 있고 볼이 터져 나가도록 맛나게 먹는 딸아이에게 최상품의 딸기를 사줄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를 저는 "천원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정말 물건을 사며 몇천원 더 좋은것을 고민하지 않고 살수 있다는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시간이었거든요. 그렇게 작고 소소한 것들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세월이 벌써 22년이나 흘렀습니다. 그런데 정말 알수없는것은 아직도 나는 여전히 돈이 많다는 소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월급이 재벌수준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생각하는 만큼의 부자가 아니라는 것이 의문입니다. 


다만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크게 써보지는 못했지만 진짜 남편은 아이들에게 마음놓고 과자도 사 주었고 장난감도 사 주었고 놀이동산도 데리고 갈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교육기회들을 제공할 수 있었고 그 아이들 마음속에 돈으로 서러운 시간은 한번도 주지 않았구요

부모님들에게는 자식노릇을 크게 한것은 없지만 그래도 부담은 드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말 그자체로 둘이 열심히 벌어 집사고 새끼들 키우고 가끔 용돈드리고 그렇게 너무도 평범하게 살아내는 효도는 한 것이지요.


원래 돈은 중요한 것이지만 최근들어 온 세상이 모두 돈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10대까지 주식에 코인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새삼 놀라울 따름이구요. 

저도 해 봤지만 돈에 있어 제일 무서운 것이 타인과의 비교입니다. 그 비교의 늪에 빠지는 순간 결코 만족이나 행복은 만날수 없고 그저 불안하고 우울한 자아만이 있습니다.


경제이야기를 나누는 단톡방 제가 아끼는 후배들에게 말했습니다.  

" 절대 비교하시면 안됩니다

삶의 조건이 다르고 운이 닿는 시기가 다르고 가치가 다르다는걸 잊지마세요

개인의 사정따라 다 결국 갑니다."


여전히 나의 부자되기 프로젝트는 진행형입니다. 

다만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삶에 챙겨야할 것은 결코 돈만 있는것은 아니라는것을요..

뒤돌아보니 정서적 부자 내가 보입니다. 이럼 되지요. 이렇게 한발 한발 가면 반드시 그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할 테니까요. 

하늘을 봅니다. 그리고 씩~ 웃습니다. 

나의 20년전 과거보다 한발 더 발전해 있는 내게 감사합니다. 나는 세상의 절친 해피영희입니다. 

무조건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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