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녹듯 그렇게 상처를 녹이며~

by 해피영희

매일 아침 딸을 학교 교문 아래 빌라 주차장까지 태워주면 아이는 힘없는 뒷모습을 보이며 등교를 했습니다. 그날 아침도 차를 세우니 그러는 겁니다.

“나, 학교 안 가고 싶어. 힘들어”


마음이 또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집니다.

마침 그때 저는 막 6급 승진을 하고 모 초등학교 행정실장으로 발령을 받았었습니다.

“행복아, 그럼 엄마 학교로 전학 갈래? 그럼 매일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는데”


아주 잠시 아이가 눈을 반짝이더니 이내 그러는 겁니다.

“아니야, 그건 도망가는 거잖아. 전학 가더라도 나 이겨내고 당당해지면 갈 거야. 도망가기 싫어”

아~ 역시 딸은 정말 남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엄마, 그러지 마. 친구들이 힘들게 하는 것 보다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 하는게 제일 힘들어.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이 힘든 게 너무 싫어”

그날 이후 엄마의 눈물이 제일 힘들다는 어린 딸의 깊은 마음을 듣고 절대 아이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어린 것이 어른인 저보다 더 깊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역시 딸은 오리 속의 백조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5학년이 끝나는 봄방학 2월쯤 드디어 대형 사고가 터졌습니다.

여자아이 2명이 휴대폰 번호를 0000으로 처리하고 딸을 동물에 비유하며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장문의 폭력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못 참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10월쯤 대구의 한 중학생이 동급생의 괴롭힘으로 자살을 하며 세상에 학교폭력이라는 것이 이슈가 되었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먼저 딸이 사용하는 통신사를 방문하여 정확한 휴대폰 번호를 확인하고 학교에 정식으로 ‘학교폭력자치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참.... 그때부터 고구마 천 개 먹은 속 터짐이 시작되었습니다.

1년 동안 담임선생님과 수도 없이 상담하고 부탁했지만 선생님은 단 한 번도 아이를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딸이 위반하지도 않은 규칙 위반을 가해자 아이들이 거짓으로 주장하고 체벌을 요구하자 그 진실을 알면서도 딸에게 체벌을 내리고 제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어이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그러는 겁니다.

“행복이 어머니, 어제 ㅇㅇ와 ㅁㅁ 어머니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 단속 잘한다고 하고 가셨어요. 그럼 되겠죠?”

“선생님,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럴 수 있는 단계가 지났어요. 제가 선생님께 10번도 넘게 부탁드렸던 것 같아요. 그때는 가만히 계시다가 이제 와서 무슨 말씀이세요. 제 말을 제대로 이해 못 하신 것 같으세요.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정식으로 개최해 주세요. 전 이제 원칙대로 할 겁니다.”


학교에서 학교폭력 담당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스쿨폴리스 전화번호와 학교폭력 관련 법령을 혹시 아냐고 합니다. 하~ 참.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저는 스쿨폴리스 전화번호와 막 제정된 학교폭력 관련 법률을 법제처에서 다운 받아 메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기록해 두었던 행복이의 피해 증빙자료도 학교로 통보했습니다.


원체 치밀하게 준비했으니 더 이상 말을 못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그동안 관련된 모든 가해자들을 혼내고 싶었지만 그럼 너무 많은 상처가 남기에 본보기로 문제가 된 2명만을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고발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제가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 아이들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기록한 피해 사실들을 부모님들에게 보여드렸습니다.

“어머니, 같은 자식 키우는 입장으로 이번에는 넘어갑니다. 그런데요 다음번에 다시 한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경찰서에서 뵙게 될 거에요. 저 자식 때문에 미친 사람 맞아요. 그러니 조심시켜 주세요.

ㅇㅇ아 아줌마가 너 그동안은 좋은 말만 했는데 다음번에 만나면 좋은 모습이 아닐 거야“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진행되어야 하니 스쿨폴리스가 등장하고 가해자 아이들을 조사하고 행정절차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동안 모르쇠 하던 가해자 부모들이 뜨거운 불에 데인 것처럼 난리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사과를 하는척 하더니 단호한 제 입장에 욕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행복이 엄마, 우리 ㅇㅇ이 잘못되면 가만 안 있을거에요. 자식 키우는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지”

“ㅇㅇ이 어머니, 맞아요. 자식 키우는 사람이 그러면 안되죠. 우리 행복이가 당했을 아픔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이러시면 안 되는 거에요. 오셔서 우리 행복이 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급해진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방문했습니다. 전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도록 했습니다. 요즘이야 묘한 금전 문제로 시끄러운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정말 우리 딸의 자존감 하나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가해자 아이가 울면서 사과 편지를 건네자 이 모지리 딸은 그저 환하게 웃으며 울고 있는 가해자를 위로하더니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다정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정말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편 딸이 그리 웃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괴롭히던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받고 아이의 쓰라린 상처는 봄눈 녹듯 사라져 갔습니다.


2012.2월은 학교폭력 관련 법이 시행되는 초기라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징계 사항이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것은 선택사항이었습니다. 딸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되갚아 주는 것이 목적은 아닌지라 학교에 가해자 아이들의 징계 사항을 기록으로 남기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진심 어린 웃음꽃 하나를 피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따듯한 봄 햇살에 녹아내리는 얼어붙은 땅덩이처럼 서러움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알 깨기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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