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살 평생 가난한 농부로 살아온 시아버님의 소원이 죽기 전에 자식들과 해외여행 한번 가보는 거랍니다. 그저 하얀 백지에 까만 점하나 바라보는 것처럼 남편만 바라보며 결혼한 나는 맏며느리라는 직책을 부여받았습니다. 아버님이 사용한 ‘죽기 전에~’ 라는 그 단에 꽂혀 해외 가족여행을 기획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형제는 5남매이고 조카들, 부모님까지 모아보니 여행에 참여하는 인원이 약 18명이 됩니다. 여행사에 우리 가족만을 위한 패키지 상품을 요청했습니다. 장소는 여러 진통 끝에 캄보디아 앙코르왓트 사원으로 정해졌습니다. 여행경비는 각자 부담하고 부모님은 가족 곗돈으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큰 시누이께서 부득불 내신다는 바람에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여행사도 섭외하고 일정도 맞추고 여러 험난한 산을 넘어 드디어 출발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여행을 안 가신다고 하는 겁니다. 이유는 자녀들 중 누구는 삼재라 조심해야 하는데 비행기를 타는 건 너무 위험하고 혹여나 가족 모두가 여행을 가다 사고를 당하면 그 뒤처리는 어쩌냐는 겁니다.
헉~ 참 당황스럽러웠지만 설득에 설득을 했습니다.
”어머니 그래도 자식들이 효도여행 한번 가겠다고 이리 준비했는데 같이 가세요. 언제 딸, 아들, 며느리, 사위 데리고 여행을 가겠어요.”
그렇게 크고 작은 불평과 어려움을 다독이고 녹여 우리는 드디어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나름 준비할 게 많았습니다. 캄보디아에 도착하면 밤 12시 전후가 되는데 빠른 입국 수속을 위해서는 약간의 급행료를 준비해야 된다는 팁을 받고 1달러 지폐도 여러 장 준비하고 가족이지만 방별 인원도 짜고 안전교육도 철저히 시켰습니다.
그렇게 여행이 진행되었습니다. 역시 제 역할은 가이드 아닌 가이드였지요. 일정 중 부모님 마음에 안 드는 곳이 있으면 조정하고, 가이드 부수입을 위해 방문하는 선물 샵 대신 수고료를 더 드리고, 왜 매일 돌덩이만 보냐고 말씀하시는 시아버님의 기분도 풀어드려야 하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시어머니와 큰누이의 다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심정이 엄청 상하셨고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딸과 엄마의 싸움과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어머니가 걱정되어 저는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그러니까 내가 여행 안 간다고 했는데 네가 우겨서 이렇게 된 거잖아. 너희만 부모한테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른 집 자식들도 다 효도하고 살더라. 그리고 여행을 가자고 했으면 네가 여행비를 냈어야지 네 시누이가 돈을 내는 바람에 삐져서 저 난리를 피우는 거잖아.”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쯤 되면 저의 감정은 남편에게로 이동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와~ 인간 ㅇㅇㅇ이랑 같이 사는 대가 세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감정을 한참이나 식히고 나름 차분하게 정리했지만 그래도 말은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최대한 우아한 목소리로 그랬지요.
”당신, 나한테 잘하고 살아야겠다. 당신하고 사는 대가가 좀 세네. 오늘 어머니가~ 블라블라~“
아~ 그런데 이 남자~
”아, 몰라. 내가 어쩌겠어. 나한테 이런 얘기 하지마라. 듣고 싶지 않아“
시어머니의 충격이 채 다 가시지 않았는데 남편의 펀치는 더 핵폭탄입니다.
살다 날벼락이라는 게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제가 뭘 그리 잘못했다구요? 가자고 애원해도 안가는 며느리도 많은데 이 반 푼수는 여행도 기획하고 가이드도 하고 몸 고생 마음고생 돈 고생하며 효도하고 왔더니~
남편에게 퇴근 후 집 앞 호프집에서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도저히 그렇게는 넘어갈 수 없는 일인데 괜히 어설프게 말싸움을 했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듯 했습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술집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남편과의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야무지게 말해야지. 내가 이런 대접 받으려고 결혼한 건 아니지’
머릿속에 할 말을 몇 번이나 쓰고 지우고 정리를 끝내고 나니 적당히 연기도 필요하다 싶은 겁니다.
술을 미리 좀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시키고 안주도 하나 시켰습니다.
일단 남편이 등장하기 전에 약간의 취기가 필요하고 술 냄새도 필요합니다.
소맥을 제조하고 벌컥벌컥 한잔을 마셨습니다.
너무 말짱합니다. 한잔을 더 마셨습니다.
시원한 음료처럼 잘도 넘어갑니다. 그래도 어쩐지 말짱합니다.
‘그래 3잔 정도야, 뭐~’
또 한잔을 더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제법 몽롱한 느낌이 옵니다.
그때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긴장하고 있던 탓인지 살짝 반가움이 올라옵니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구~
”혼자서 술을 마시면 어쩌냐? 낮에는 미안해, 나도 짜증이 나서 그랬어. 엄마가 그러면 안 되지.”
”맞아, 당신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우리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데~ 내가 이런 대접 받으려고 결혼한 건 아니지“
조금씩 머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술을 너무 급하게 마신 탓인가 싶습니다.
”나 오늘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 다 할 거야. 그러니까 기분 나빠도 다 들어.
나 지금 술 취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나는 술 취해도 절대 표시가 나지 않잖아~ 술주정 아니라고~ “
머리가 너무 무겁습니다. 꽈당~ 테이블 위로 넘어졌습니다.
”여보야, 여보야, 아쿠~, 집에 가자“
남편이 저를 업고 집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이리 술을 먹이면 어쩌냐고 난리입니다.
세상이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렇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되니 남편이 막 놀리기 시작합니다.
‘아~ 진짜~’
그렇게 싸워보지도 못한 채 나의 억울함은 부끄러움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 그때는 진짜 화가 많이 났었는데 지금은 그랬었다 하는 순간입니다.
부모 자식의 천륜을 제가 잘라낼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럼에도 남편은 제가 좋다고 하니 어쩝니까?
게다가 딸, 아들이라는 너무도 강력한 이자가 발생했습니다. ㅋ
그렇게 저렇게 어느새 24년을 살았습니다. 21살 만남 이후 28년이 지났구요.
좋기만 한 부부가 세상 어디 있을까요?
긴 세월 함께 해온 깊은 의리와 설명 불가능한 공감이 부부를 정의하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 손에 물 안 묻히고 행복하게 해 준다고 했잖아~ 그거 다 뻥 아니지? 아직은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