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코로나로 인해 인생이 꼬였다며 한참을 우울해 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술도 더 마시고 더 많이 놀 걸 그랬다며 후회를 합니다. 중국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작년 여름방학을 오롯이 바쳐 획득한 HSK 중국어학 성적표가 소용없어졌다며 슬퍼합니다.
투덜거리는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측은하기도 하고 제 마음도 함께 답답합니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에 하루가 가던 어느 날 딸이 불쑥 말합니다.
“엄마, 나 아르바이트 하기로 했어. 파****인데 오전 8시에서 3시까지 토, 일 주말만 할 거야.”
“엥 네가 무슨 아르바이트야 ㅎ 태어나 공부 외에는 해본 것 없는 네가 잘 할 수 있겠어?” 사실 딸 아이 뿐만 아니라 남편과 저도 과외를 제외하고는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는지라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마치 취업을 한 것 마냥 우리 가족은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무료하던 딸아이의 생활에 긴장감이 찾아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말 늦잠을 양보하고 시간이 되면 빵가게로 출근하는 딸아이가 너무 대견했습니다.
첫 월급을 받았다며 가족들에게 맛난 스테이크도 사주고 엄마인 저에게 예쁜 꽃무늬 원피스도 한 벌 사주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아이의 얼굴에 피곤함이 스치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왜 그래? 무슨 걱정 있어? 일이 너무 힘들어?”
“응, 엄마 그게 같이 근무하는 기사님이 자꾸 가르쳐주지 않은 일을 가르쳐줬다고 하면서 제대로 못한다고 화를 내셔. 그리고 내가 일을 빨리 못한다고 답답해하시고. 내가 손이 느린 건 인정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진짜 얘기 안 하신 건데 했다고 화를 내시니 너무 속상해”
드디어 우리 딸이 돈벌이의 매운맛을 보는구나 싶으니 기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딸 원래 그런 거야, 어딜 가나 그런 인간관계가 있고 그런 걸 이겨내야 해”
사실 딸아이는 태어나 지금까지 해온 일중 제일 잘하는 것이 공부와 그림그리기입니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 평가에서 전국 상위 1%의 성적을 받은 실력으로 공부 외에는 다른 것을 경험 해 볼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빵가게의 아침 오픈시간에 재빠른 손이 필요하다면 분명 조금은 답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후 사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ㅇㅇ아, 기사님하고 의논했는데 네가 손은 좀 느리지만 손님응대는 참 잘한다고 하더라. 손님응대도 중요하니까 네가 오후로 일하는 시간대를 옮기고 오후에 친구가 오전으로 바꾸면 안 될까?”
딸아이는 사실 오후에는 다른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절하기가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그러니 영락없이 짤리게 생긴 거지요. 사장님은 그럼 사람을 다시 뽑겠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불편하게 되었으니 원하면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아이는 그건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자신이 정리해서 그만두겠다고 또렷이 말하는 겁니다. 이제 제법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딸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일을 못해서 잘렸다며 너무 서러워하는 겁니다.
저와 남편은 반은 슬프고 반은 너무도 웃긴 그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사실 딸아이는 과외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어 돈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은 상황이 못내 자존심이 상했나 봅니다.
한마디로 해고당한 거죠. 한참 울면서 저녁밥도 제대로 안 먹는 딸아이 앞에서 우리 가족은 난리가 났습니다.
“그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네. 아르바이트생이 일을 잘하면 얼마나 잘한다고. 또 좀 곱게 가르쳐 주면 안 되나, 인격이 이상하네. 우리 딸이 어디 대충할 사람이야. 진짜 열심히 했을 건데 그런 건 생각하지도 않고. 너 잘 됐다. 진짜 잘됐어. 그만하면 경험할 만큼 했어. 이제 좀 쉬면서 운동도 하고 그래. 그 가게 복덩이를 내 친 거야.”
한참을 눈물로 글썽이던 딸이 갑자기 해맑게 웃으며 저를 안아줍니다.
“엄마, 사랑해. 진짜 다행이야. 내가 너무 형편이 안 좋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 안 되는데 이렇게 짤리면 정말 비참할거 같아.
그런데 나는 기분 나쁜 거 빼곤 하나도 아쉬울 게 없어. 사실은 그동안 일하는 게 좀 힘 들었는데 한편 홀가분하기도 해. 이게 다 엄마, 아빠 덕분이야. 고마워. 진짜 사랑해~~~”
어쩌다 만난 사건으로 딸아이가 제법 기특한 말을 합니다. 순간 제 마음에도 작은 뭉클함이 솟아납니다.
‘그래 내가 열심히 울타리를 만든 보람이 있구나. 열심히 살아낸 결과가 있구나. 저 어린것이 너무 매몰차게 내 몰리지 않고 자기 인생을 찾아 갈수 있구나. 다행이다.’
그날 우리 가족은 구조조정을 당한 딸아이를 위해 위로 파티를 열었습니다. 시원한 김치냉장고에서 꺼낸 캔 맥주와 맛난 안주가 몸과 영혼의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가끔은 넘어져야 새살을 만납니다. 인생의 첫 걸음마에서 넘어져 울음을 터트린 딸아이도 그렇게 빨갛고 뽀얀 인생의 새살을 보았을 겁니다.
“딸, 축하한다. 너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ㅎ 그런데 앞으로도 많이 넘어질 거야. 그럴 때마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나아가렴. 항상 네 뒤에 엄마, 아빠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는 거 잊지 말고. 우리 예쁜 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