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어머니, 준이 담임입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선생님”
“준이가 오늘 학교에서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평소에 착한 아이인데~ 오늘 친구를 때려서 코피가 났어요. 제가 화해는 시키고 친구 어머니에게 전화는 드렸어요. 요즘 준이가 부쩍 예민한 거 같은데 특별히 집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아니, 아무 문제없어요. 그놈이 그럴 성향이 못 되는데... 어쩌다가.... 일단 너무 죄송해요. 상대친구 부모님 전화번호 주세요. 제가 사과 전화 다시 드려야겠어요. 진짜 죄송합니다. 선생님”
중학교 1학년 가을의 어디쯤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몸이 너무 나약하여 3살 때는 1년 중 200일 이상을 병원에 방문했더니 건강관리공단에서 허위는 아닌지 확인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강하게 재채기를 하면 코피가 터져 멀쩡한 이불이 없었고, 초등학교 4학년때 몸무게가 겨우 28킬로를 넘어가 누군가 보면 엄마인 제가 아이를 학대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기억하겠지만 상의 티셔츠 사이즈도 6학년이 되어서야 150호를 넘기는 힘겨운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탄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3.8킬로 우량아로 태어난 아들은 남아선호 사상의 지존 중 지존인 할머니의 양육 속에 더할 수 없는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자란 놈입니다. 제 자식이지만 장점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20개월을 넘기며 말문이 트이더니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비롯해 지나가는 타인들까지 구사하는 언어에 다들 감탄사를 쏟아놓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부모의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남자아이 답지 않게 사람을 설레게 하는 눈웃음으로 존재하던 그놈이 어느 날부터 입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자기기준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벽으로 주먹을 치고 야생동물의 포효하는 소리를 뱉어내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무한한 사랑을 준 아이였고 남편과 제가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러는 것일까?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첫째를 키우며 만난 인생의 큰 파도를 넘기며 저는 심리상담교육 대학원을 졸업하고 청소년상담사 자격증을 공부했는데 그때 배운 몇 가지가 뚜렷이 생각났습니다.
‘일단 공감해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쟤는 지금 정상적인 감정상태가 아니다.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다. 내가 좀 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수많은 결심들을 되 뇌였습니다. 저야 그렇지만 이런 상황을 이해할 리 없는 남편이었습니다.
“이 새끼, 너 이리 와봐.. 어디서 건방지게... 너 그딴 식으로 할 거면 공부도 하지마라. 말이면 다하는 줄 알아?”
항상 남편을 진정시키고 아들 편을 들어 주었습니다. 아니 편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입니다. 옳고 그름으로 보면 편 들 일이 거의 없었으니 말입니다.
아들은 한 마리 야생 동물이었으니까요.
그러던 놈이 드디어 학교에서 사고를 친 것입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저녁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문을 열고 오는 아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목소리는 ‘솔’톤 이었습니다.
“준아~ 안녕~”
“근데 준아, 너 오늘 힘들었겠다. 억울한 거 없었어? 선생님이 전화주셨더라. 우리아들 잘못했다는 사람만 있고 편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 상한 거 아니야? 엄마가 걱정이네”
이놈,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이 툭 내 뱉습니다.
“괜찮아. 그래도 담임 샘이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억울한 거 없어”
들어보니 그 폭력사건의 발단은 아들이 아니고 코피가 터진 아이였습니다.
지나가는 아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었고 짜증나는 말로 놀림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논리적 사고가 마비된 아들은 당연히 ‘욱~’주먹이 먼저 나간 거고 운 좋게(?) 정통으로 맞은 아이의 코피가 터진 겁니다.
“그래, 그래, 됐어. 그놈은 왜 괜히 우리 아들을 놀려가지고~ 이리와 엄마가 안아줄게~ 저녁 맛 난거 먹자”
그리고 또 몇 달 후 2학년이 된 어느 날 이번에는 다른 반 친구의 배를 발로 차서 그 아이의 어머니가 강하게 항의를 했다는 겁니다. 잘못하다간 학교폭력으로 번질 분위기였습니다. 다행히 아들의 순수성을 믿고 있던 담임선생님의 적극적인 변론으로 사건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들은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기록부 기록이 중요했습니다. 그 사실을 늘 인지하고 왠만하면 스스로도 다툼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날의 사건도 시작은 상대아이가 문제였습니다. 쉬는 시간 엎드려 자고 있는 아들을 다른 반 친구가 자꾸만 귀찮게 깨우고 장난을 친 겁니다. 하지 말라는 경고를 여러 번 했음에도 친구의 장난은 계속되었고 폭발한 아들은 벌떡 일어나 배를 걷어차 버린 겁니다.
‘아쿠~ 무서운 놈. 어디서 그런 폭력성이~’
담임선생님은 일단 사건발단이 아들이 아니고 상대아이였다는 점을 적극 어필해 주셨고 그렇게 어렵사리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날도 저는 따듯한 밥을 짓고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들을 준비했습니다.
그저 말없이 저녁을 먹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만히 안아 주었습니다.
누나인 딸이 난리가 났습니다.
“엄마, 대개 이상하다. 왜 준이한테는 그렇게 너그러운 거야? 그러니까 준이가 저렇게 행동하고 다니지. 혼내야지. 폭력을 행사하면 어떡해? 엄마 지금 잘못하는 거야. 나한테는 엄격했잖아.”
“맞아 엄격했지. 그런데 왠지 엄마는 준이 마음이 이해가 간다. 얼마나 짜증났겠어. 지도 그래놓고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겠어. 오늘 많이 힘들 텐데 엄마까지 덩달아 혼내면 준이 너무 외로울 거 같아”
“엄마가 너한테는 엄격했는데 준이는 이상하게 이해가 되네. 둘째라서 그런가?. 너 키우면서 엄마도 많이 성숙했나 보다. 말하다 보니 우리 딸한테 괜히 미안해지네. 너한테는 여유를 못 보내줘서 미안!”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아들이 한마디 합니다. “미안해, 엄마”
“괜찮아. 그런데 준아, 네가 아무리 억울해도 폭력을 행사하면 네 정당성은 다 사라져. 그러니 더 억울한 상황이 되는 거잖아. 어렵지만 조금은 이성적으로 노력해 보자”
“알았어.”
그렇게 아들의 사춘기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들과 통화 할 때면 늘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생님, 전 우리 아들 믿어요. 제가 꼭 아이가 변하도록 할 거에요. 다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이도 생각할 시간은 줘야 하잖아요. 우리 아들 정말 멋진 놈이거든요”
딸아이 말처럼 참 이상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원칙을 벗어나면 가차 없는 모진 엄마였습니다. 그러니 중학교 2학년 때 자기 스스로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2G폰을 개설하면서도 1도 불평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내가 내 자식을 안 믿으면 누가 믿어주나~
그리고 그 여유는 진짜 첫째 때 백신을 맞고 맞이하는 둘째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아들이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중에 있습니다. 인생의 큰 경험을 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저는 여전히 흐뭇하고 귀엽고 감사합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마음이 어려운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누군가 나를 탓하지 않고 이해해 준다면 참 감사할 것 같습니다.
성장의 과정 중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그 시절, 부모의 이해와 배려는 평생의 자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아들이 먼 훗날 문득 만나는 시간에
‘아~ 그때 우리엄마가 나를 마음으로 안아줬구나... 나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구나... 나 그렇게 엄마에게 사랑받는 아들이었구나..’라고
마음 한 구석이 따듯해진다면 그것으로 나는 좋은 엄마였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된장찌개가 맛있다는 아들의 말이 부쩍 도드라지는 시간입니다. 퇴근길 바지락 한줌을 준비하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야겠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상에 한 점 풀꽃 같은 행복이 쏟아지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