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by 해피영희


“내년 9월 남동쪽으로 가면 최가 성을 가진 귀인이 나타나 큰 도움을 줄 운세입니다”

가끔 인터넷으로 보는 운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린 알 수 없는 희망으로 진짜 나를 도와줄 귀한 사람을 만난다고 믿게 됩니다. 사실 없다고 해도 믿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보통 귀인이라고 하면 귀하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과거에는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의 경험을 통해 조금 생각을 바꿨습니다.


저에게 곱고 예쁜 도움을 주면 참 감사한 귀인이지만 그 과정이 다소 상처가 되더라도 결과적으로 좋은 시간을 가져 다 준다면 그 사람의 존재도 제게는 귀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게는 2명의 귀인이 있습니다.

한분은 저희 시어머니이고 한분은 과거 수영장을 같이 다녔던 아주머니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제가 공무원 시험을 치룬 것은 첫째 아이를 낳고 만 4개월 뒤였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결혼하고 집에서 남편의 보호를 받고 있는 여리하고 눈물 많은 아줌마였습니다.


첫째 딸아이를 낳고 시 어머니가 몸조리를 해 주러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지금이야 다들 조리원을 가지만 2000.1.7. 태어난 우리 딸 시절에는 나이든 엄마들이 집에 같이 거주하며 미역국도 끓여주고 청소도 해주고 밥도 해 주셨습니다. 산청시골에 계시는 어머니는 큰 며느리가 출산을 하자 각종 재료를 준비해서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는 마음이 마냥 즐겁지 만은 않으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초 울트라 아들 지상주의입니다.

남자 손자를 원했는데 딸 손녀가 태어나자 마음이 서운하셨나 봅니다. 괜히 혼내지 않아도 될 일을 혼내시고 생활 중간 중간 뾰족한 말과 행동을 저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인 말로 제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내는 직장 다니는 며느리를 볼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는게 아니대.”

“아, 오빠도 제가 직장 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저도 지금은 좀 쉬고 싶어서요”

“너그가 사는 게 아직 덜 급해서 그렇다. 사는 게 괜찮는가배”

순간 온 몸에 피가 확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무능한 며느리라고 구박받는 모습이라 생각하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예정보다 1주일을 먼저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21일이 채 안된 아이와 나는 집안에 외롭게 남았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지요. “나, 공무원 시험 칠래. 책 좀 사주라.” “애 놓고 무슨 공부를 해”

“그건 내가 책임질 일이니 일단 책 사줘.”

그렇게 아이를 놓고 1달 뒤부터 수험생이 되었습니다. 이를 악 물었습니다.

보이지도 않게 버려진 제 자존심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렇게 2000.5.7. 전 9급 공무원 시험을 치루고 합격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 어머니가 그때“아고, 야야, 괴안타. 살림 잘살고 건강하모 됐제.”

이런 말씀을 했으면 마음은 행복했겠지만 지금 저는 다른 모습일 겁니다. 우리 시어머니 귀인 맞죠?


그리고 두 번째 귀인이요? 사실 좀 재수 없습니다. 2012년~2014년까지 남편과 아이 둘과 새벽 6시 수영레슨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수영을 정말 잘하고 몸매도 예쁘고 얼굴도 예쁜 아줌마 한명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어린데 남편이 대기업을 다니고 시댁재산도 좀 있어 새벽에 수영, 아침에 에어로빅, 오후에 헬스를 하는 팔자 좋은 분입니다.

얼굴도 뽀얗고 몸매도 되니 헬스를 하면서도 탑 탱크를 입고 운동하고 수영복도 브랜드로 패션쇼를 하는 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장 멤버끼리 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술이 한잔씩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은 운동에 이어 술도 엄청 잘 마시는 겁니다. 주변의 남자 분들과 하하, 호호, 즐거운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 즐거운 분 중 한명이 우리 남편입니다. 우리 남편은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수영도 잘 하는 겁니다. 저와 아이들은 저 뒤쪽 편에 버려두고 자신은 뛰어난 멤버들과 평소 운동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니 사람이 참.......


“오빠, 운동 잘하대. 진짜 깜짝 놀랬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 오빠라니 누구보고 함부로 오빠래. 개뿔’

그러니 우리 남편이 한술 더 뜹니다.

“니는 몸매가 참 뛰어나대. 뒤에서 보니 허벅지 근육이 장난이 아니더라.”

헐~ 글을 쓰는 지금 갑자기 열이 나네요. ㅎ


근데 결정적인 것은 다른 곳에서 일어납니다.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수영코치가 저를 보며 그럽니다.

“그러니까 형수, 형수도 몸매관리를 해요.”이런 십원 아드메다 같으니라구~~~

그 당시 제가 뭐 뛰어난 몸매는 아니어도 그렇다고 누구에게 관리해라 마라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 이 사람들이 진짜’ 그날 이후 남편은 다시는 수영장 회식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뭐든 제대로 하는 ‘최씨’이니까요. ㅎ


그날부터 전 다이어트와 운동을 했습니다.

‘몸매? 그까짓 것 내가 만들어준다. 외적인 건 가질 수 있어도 내적인 건 안 된다. 난 네가 가진 몸매는 가지지만 넌 내가 가진 지식과 내면은 못 가진다. 내가 그거 반드시 한다.’

독을 품었습니다. 새벽 수영하고 점심 산책하고 저녁 근력운동하고~ 그렇게 3개월을 보내니 그 아줌마 몸무게가 되었습니다. 51.4킬로.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후로 49킬로까지 감량을 하고 그만두었습니다.

다행히 운동으로 만든 몸이니 제가 봐도 나쁘지 않은 몸매였습니다.

그런데요 그런 시간을 거치고 나니 몸매가 문제가 아니라 제 자신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충만한 겁니다. 무슨 일을 해도 할 수 있겠더라구요.


또 지나고 보니 그 아줌마가 귀인입니다. 그분이 제 마음에 그런 불을 지르지 않았다면 전 평생 동그랗게 예쁜 몸으로 살아갔을 겁니다. ㅋ

가끔 지난 일을 생각합니다. 그럼 꼭 생각나는 두 사람. 처음엔 화가 나고 마지막엔 항상 감사합니다.

그래서 전 그 두 분을 제 인생의 귀인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진정 이런 분들이 귀인 맞는 거 아닌가요?


살면서 찾아오는 지랄 맞은 상황, 우리 스스로 행운으로 만들어 봅시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우리입니다. 귀인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니 새삼 그분들이 생각납니다. 수영을 같이하던 분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오늘은 우리 시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

"어머니~ 잘 계시죠? ~~~ 블라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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