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사무실 직원이 직접 담가서 나눠 준 열무김치가 너무 맛있어 폭풍 인사를 하고 블로그에 글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인정 많은 분이 주말이 되면 자신의 농장에 놀러 오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아직도 싱싱한 열무와 어린 무가 밭에서 초록초록 자라고 있으니 쑥쑥 뽑아 열무김치를 담그면 된답니다.
귀찮아서 안 된다고 사양을 하였으나 큰 언니 같은 우리 직원은 별거 아니니 부담은 1도 가지지 말고 마음 행복 하나 들고 오면 된다고 합니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하필이면 중요한 행사가 있어 갈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메시지로 보내고 커피 쿠폰 하나로 정을 대신했습니다.
그런데 주말을 보내고 출근한 아침~ 대박~
밭에서 실려 온 어린 무와 열무 줄기가 주인의 재빠른 손을 거쳐 얌전하게 다듬어져 사무실 바닥에 방긋 웃고 있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적당함을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어마하게 많은 양입니다.
“과장님, 왜 이랬어요? 이거 다듬으려면 얼마나 힘든데. 미친다. 이러지 말 라고 했는데~”
“아니에요. 뭐 어려워요. 더 많이 가져오려고 했는데 옆집 언니가 보고 너무 탐내는 바람에 나눠주고 양이 얼마 안 돼요.”
헐~ 반을 나눠주고도 이 양이라니 속으로 얼굴도 모르는 옆집 언니가 감사해지려고 합니다. ㅋ
“참, 실장님 원래 열무보다 이렇게 어린 무순이 김치 담그면 맛이 더 좋아요. 그래서 열무랑 어린 무를 섞어서 가져왔어요. 그리 알고 김치 담그면 돼요.”
그러면서 제게 열무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레시피를 쭉~ 읊조리기 시작합니다.
머리에서는 약간의 혼란과 함께 입에서는 네네~ 하는 대답이 엇박자를 냅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저 어린 무순을 데리고 집으로 가 김치를 담아야 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저는 한 번도 열무김치를 담가 본적이 없습니다. 배추김치는 1년 음식이라 3년 전부터 부모님에게 독립하고 스스로 담그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정말 특별한 경우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개인적인 일이 정말 공사다망합니다.
1일 90분 운동, 독서,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 1일 1행 프로젝트, 상담사 자격증 수련 활동, 무쓰무행 프로젝트 리딩, 대학생 상담 주 2회 그리고 본업인 직장생활
일단 여기까지가 제가 매일 실행하고 있는 스케줄입니다.
최근에는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심리적으로 좀 힘들어지며 몸에 알 수 없는 근육통이 친구처럼 찾아와 에너지가 딸리는 시점입니다.
하루 24시간이 너무 바쁘고 잠자는 시간도 아까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태어나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열무김치를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최근 시작한 몇 가지만 아니면 제 성격에 충분히 시도했을 겁니다.
그런데 코로나 백신 2차 이후로 회복되지 않는 근육통이 전과 달리 깊은 피로감을 가져오고 최근에는 하혈도 하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습니다.
여하튼 주신 분의 성의는 너무 감동입니다.
“아쿠, 과장님 너무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커다란 김장 봉투에 포장된 초록이를 차 안에 얼른 실었습니다.
그때부터 머리 회로가 빠른 속도로 부팅되기 시작합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합니다.
일단 제 주변에서 저 재료를 완제품으로 변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아~ 우리 막내동서의 친정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보험설계사를 하시는데 마음도 고우시고 음식솜씨도 여간 좋으신 분이 아닙니다.
저와 막내동서랑 사이가 좋고 저희 자동차 보험 담당자이시니 정기적으로 얼굴도 뵙고 늘 선물도 한 아름 주시는 참 고마운 분입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점점 힘을 잃어가는 재료를 보니 마음이 안타까워 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위해 재료를 정성껏 다듬어 주신 분의 성의를 생각하면 어떻게 하든 해결해야 합니다.
“동서야, 우리 직원분이 열무김치 재료를 한가득 주셨어. 내 주변에 저 재료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사돈 어르신밖에 없어. 어떻게 하냐? ㅋㅋㅋ”
“헐, ㅋ 일단 저한테 주세요. 제가 해결해 올게요.”
그렇게 다음날 저녁 동서가 집 앞에 김치 통을 두고 간다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하필 제가 밖에 있을 때 다녀가 얼굴을 못 보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늦은 저녁을 먹는 남편이 무김치를 맛나게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보, 당신 과장님이 열무김치 준 것 아니야? 사돈어르신이 보낸 건 무 만 있고 잎은 없어.”
“엥?”
얼른 김치 통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 어린 무 조각만 잔뜩 있습니다. 왜?
“아~, 그래, 지금 어린 무순이 열무보다 부드럽고 식감이 좋다고 일부러 열무랑 섞어 줬어. 그런데 어르신은 그걸 모르니까 다 버리고 뿌리만 가지고 무김치를 담았나 보다.”
헐~~~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생각하지 못한 열무 재료도 당황했지만, 열무가 무김치로 변해 온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다 필요 없습니다. 일단 무김치가 너무 맛납니다.
아침에 동서에게 커피 쿠폰을 보냈습니다.
“동서야, 무김치가 너무 맛있어. 사돈 어르신하고 꼭 맛난 커피 마셔라. 괜히 일을 드려 너무 죄송하다. 그래도 도저히 직원 성의가 있어 버릴 수 없었어. 너무 고마워”
“맛있다니 다행이에요. 덕분에 저도 먹고 좋아요. 제가 최애하는 티라미슈까지 형님 짱이에요.”
아침으로 고구마와 무김치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연을 품은 김치라 그런지 유난히 맛납니다.
저의 부족함과 주변의 사랑이 열무김치를 무김치로 만드는 신기함을 만들었습니다.
빨간머리 앤의 말이 떠오릅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사돈어르신! 죄송해요. 제가 그거 열무김치 담그는 거라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래 그 많은 열무 잎을 버리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