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전 시장에 갔다 예쁜 바나나 한 묶음을 샀습니다. 어찌나 신선하던지 나만 먹는 과일임에도 한 송이를 덥석 들고 왔습니다. 매일 아침 사진 한 장을 찍어 온라인 이웃들과 공유하는 새벽기상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뭘 찍어볼까 하다 식탁 위 노란 바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찰칵~ 찍어서 긍정확언과 함께 카페에 업로드합니다. 사진을 올리고 보니 노랗고 까만 스팟이 보이는 바나나가 너무 맛나 보이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 친구들이 하나같이 바나나가 너무 맛나게 익어 먹음직스럽다, 예쁘다 하는 인사를 합니다.
누가 보아도 딱 알맞게 익은 그 모습입니다. 과일 하나도 제때를 만나면 모든 이의 눈에 참으로 예뻐 보이나 봅니다. 그러다 어디 이 과일만 그런 것이냐 하는 또 인생의 연결 짓기 신공이 나옵니다.
그렇게도 살이 안 빠지고 게으르던 딸이 갑자기 몸무게가 15킬로그램이나 빠지고 얼굴 피부도 반짝이는 걸 보면서 우리 딸이 예쁠 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밥도 적절한 열기와 뜸 들이기가 가해져야 맛있는 밥이 되고 세상의 모든 오곡도 제때 수확해야 당도와 알곡이 제대로 된 열매를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그리 생각할 겁니다.
‘나는 왜 이리되는 일이 없지? 남들은 저렇게 쉽게 하는데 나는 왜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지? 나는 할 수나 있는 것일까?
저는 정말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한편 좌절하고, 화나고, 억울하고 그러다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또 기대하고.. 그렇게 저렇게 몇 십 년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그릇이 다르고 그 속에 채워져 있는 ‘기본기’가 다르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태어나는 순간 향후 삶의 큰 방향이 일부 정해집니다. 어떤 나라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누리고 경험하고 이룰 사연들이 결정되지요. 개인적 의지가 일부 들어가기야 하겠지만 20세가 되기 전 그 시간에는 한 개인의 의지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경험하는 시간의 강도가 더 센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개인마다 축적하는 경험과 지식과 재능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러다 우리도 모르게 성인이라는 시간을 만납니다. 그때부터 또 개인의 사고와 경험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희망을 줍니다. 적어도 제 개인적인 경우는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 동그랗게 뜨고 잠 안 자고 뭔가를 고민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되기는 되는 듯 합니다. 다만 그 결과에 도달하는 시간과 과정이 개인마다 다르다는 걸 몰랐습니다. 왜? 당연히 가지고 있는 자산이 다르니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다만 초중고, 학사, 석사 중 어느 자격증을 선행으로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차이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과 단계가 달라집니다.
석사를 가진 사람은 바로 박사과정으로 입문하면 되지만 초등학교 졸업생의 경우는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한 후 학사, 석사를 해야 합니다.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초가 약하니 만나는 지식들이 몇 배나 또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시간도 많이 들고 돈도 더 투여되는데 결과는 느린 인내의 세월을 만나는 겁니다.
이렇게 형식으로 뚜렷한 과정을 설명하면 다들 이해되고 당연하다 생각 들지만 인생의 어떤 과정으로 대입하면 이게 그리 쉬운 감정으로 접근이 안 됩니다. 나의 기초체력에 대한 진단 없이 성공한 누군가의 벤치마킹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성공한 그들만큼 최소한의 노력을 투여하지도 않지만 그들과 동일한 준비선상에 서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시골 소시민의 가정에 태어나서 정말 평화롭고 전원적인 경험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받아 보았으니 누구보다 부모로서의 감정은 뛰어납니다. 그러나 예술적 문화, 초월적 지식, 경제적 지능, 도전적 용기 같은 것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성인의 삶에서 달리기 시작했을 때 제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모두가 어려움인데 다들 잘도 달려 나가는 겁니다. 지치지도 않고 아니 무슨 초인간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나도 노력하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좌절도 그런 좌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르면서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 나에게 그 실력이 쌓일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은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걸어가는 제가 보이는 겁니다.
임계점이 끓는점이나 눈사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개인의 능력에도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사칙연산이 안 되는 아이에게 미적분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다소 나의 선택과 상관없는 임계점에 억울함이 있기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건 한낱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영적인 한 영역이니 일단은 수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한 걸음이라도 더 열심히 걸어가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때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달하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그러니 믿습니다.
“일단 멈추지 말고 꾸준히 가자. 다 때가 있다. 조만가 그때는 온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