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격려

by 해피영희

”여자들도 남자처럼 군대 가야 해요. 남자들이 황금 같은 시기에 얼마나 군대에서 손해를 보는지 아세요? 요즘 여자들은 애도 안 낳잖아요“

“그동안 여성 인권이 너무 없었어요. 육아는 왜 여자들만 희생해야 하는 거에요? 경단녀가 되어서 재취업 하는 것도 어려워요”


대한민국이 부쩍 젠더 갈등으로 심란한 요즘입니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저는 우물쭈물 누구 편도 들기 어렵습니다. 저는 사이좋게 딸도 있고 아들도 있거든요. ㅎ


그리고 누구보다 워킹 맘의 고달픔이 무엇인지 경험한 일인인지라 할 말이 한 보따리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2000년, 2002년생으로 약 20년 전 전쟁 같은 육아를 경험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워킹 맘의 고충을 이해하거나 육아시간 보장에 대한 개념과 시스템은 0.001도 없었습니다.


제가 2003.9월에 교육청에 근무를 시작했는데 200명 가까운 직원을 통틀어 여직원은 불과 15여명 이고 그들도 일부는 과장님이나 외부손님 접대를 위한 기능직 공무원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이 때문에 일찍 퇴근해야 하고 일하기가 어려우면 처음부터 교육청으로 전입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일선근무만 하면 승진이나 업무향상의 기회에서 거의 배제됩니다. 그러니 자아성취에 대한 욕구가 강하던 저는 어떻게 하든 버터야 했습니다.


저의 운전 실력은 조금 과장해서 카레이스 수준입니다. 그 시절 과장님이나 계장님이 퇴근하실 때 까지 자리를 지킨 후 총알같이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다 보니 몇 초를 두고 펼치는 속도 전쟁이었습니다.

엄마를 사슴처럼 목 빼고 있을 아이의 눈망울과 귀가시간 마지막까지 남겨져 알 수 없는 서러움을 느낄 아이의 정서를 생각하면 거의 피가 바짝 바짝 마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주황불은 지나가는 것, 여백의 차선은 끼어드는 것, 여유 있게 가는 차는 추월하는 것이라는 공식으로 누구보다 과감한 운전 실력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참 그때는 불합리 한 것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회식한다 하면 하는 겁니다. 남편에게 부탁해서 약속을 잡아두어도 남편이 갑자기 일이 생기면 또 저는 꼼짝없이 동동거리는 신세가 되곤 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도 양가 모두 자동차로 3시간 이상 떨어진 시골에 계시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니 잦은 실수가 발생하고 아침이면 매일 전쟁을 치루는 겁니다. 그러다 제대로 물 한모금도 못 먹고 도착한 사무실에서 업무로 스트레스라도 받을라치면 주책없는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마음이 도려 나가는 시간을 만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궁상맞았습니다. 돈 번다고 힘 들었으면 보상이라도 제대로 하고 살지 매번 변변한 물건하나도 못 사고 차도 은색 중고 마티즈를 타고 다녔습니다. 마음이 서러워 눈물이 나면 갈 때가 없으니 그 작은 마티즈 안에서 핸들을 붙들고 대성통곡 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차라도 뽀대 났으면 덜 불쌍해 보였을 텐데 하는 생각이 ㅎㅎㅎ


그렇게 남편도 저도 지쳐가며 부부싸움도 많이 하고 서로를 토닥이며 버텼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첫째가 너무 아파 삶으로부터 바닥에 잔인하게 내 패대기쳐졌을 때 시크릿 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일 노래를 했죠.

“나는 재수가 좋아, I’m happy maker! I can do it!”


뒤돌아보면 슈퍼우먼 콤플렉스라는 건 아마도 저를 두고 나온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내, 엄마, 주부, 직장인 모두 잘하고 싶었고 잘해야 된다고 믿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밤 11시에 돌아와 소풍 김밥재료 1시까지 준비 후 새벽 6시에 일어나 엄마 표 수제김밥을 싸 보내고 혼자 흐뭇해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디 마음만으로 살아가 지나요. 몸이 버티다 한계에 다다르면 졸도하고 병원에 입원하고 또 버티고~


거꾸로 매달려도 시간은 간다고 어느새 20년 세월이 훌쩍 흐르고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습니다. 올 1월에 저도 사무관 승진을 하고 조금은 여유 있는 근무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어느 저녁 딸과 맥주를 한잔 하게 되었습니다. 딸이 말합니다.


“엄마, 고마워. 진짜 고마워. 내가 생각해 봤는데 엄마 시절에는 정말 힘들었을 텐데 버텨줘서 고마워. 만약 엄마가 우리 때문에 중간에 그만뒀으면 나는 평생 너무 너무 미안했을 거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엄마만큼 성실하고 엄마만큼 대단한 사람은 없어. 엄마가 최고야!”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집니다.


“응, 빈아, 엄마 너무 힘 들었어. 그런데 너희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어. 나중에 너희 때문에 엄마가 포기했다는 핑계 대기 싫었거든. 엄마 많이 부족했는데 이렇게 건강하게 착하게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 우리 빈이 최고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해 보니 계산되지 않는 감사와 마음의 보상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니 100% 피해의식만 가지고 여성의 역할을 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그 어려움을 1도 경험하지 않고 단순논리로 여성도 군대 보내자는 그들에게도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야, 너도 해보고 말해, 이씨~”


과거의 우리가 만난 시간도 진실이고 지금의 시간도 진실입니다. 우리 딸, 아들이 모두 현명하게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오늘, 그리고 그보다 또 좀 더 좋아진 내일, 그런 세상을 꿈꾸었기에 저의 워킹 맘은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버텨줘서 고맙다’는 딸의 말 한마디에 몇 십 년 서러움이 다 사라집니다.

말랑말랑 해진 마음에 또 혼자 말을 합니다. 그리고 두 팔로 나를 꼬옥 안아줍니다.

‘나 참, 기특하다. 진짜 수고했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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