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잡념이 자꾸 날 따라다닐 때
이런 날도 있다. 잡념이 한두 번 스쳐 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눌러 앉아 버리는 날.
‘아, 또 딴생각했네. 괜찮아.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자.’ 이 루틴이 한두 번은 먹힌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장면이 마치 넷플릭스 자동재생처럼 반복되는 날이다. 출근길에 했던 쓸데없는 대화, 아직 안 끝난 메일, 누군가의 미묘한 표정, 어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왜 굳이 거기서 그 대사를 했는지에 대한 불만까지. 하나 보내면 또 하나 올라오고, 또 보내면 군집을 이뤄 몰려든다.
이쯤 되면 나는 명상하는 게 아니라 잡념 양떼몰이 중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된다.
“와, 나 진짜 집중력 바닥이구나. 명상도 못 하는 사람인가 봐.”
솔직히 말해 몇 번은 그냥 도중에 멈췄다. 눈 감았다 뜨고는 ‘오늘은 망했다’ 하고 털고 나왔다. 예전엔 그게 실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실패가 아니라 필요한 퇴장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명상을 한다는 건, 눈 쌓인 산에서 스키를 타는 것과 같다. 평소엔 그저 눈길을 따라서 미끄러지듯 내려가면 된다. 잡념이 나무처럼 서 있어도 자연히 피하면서 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나무가 너무 빽빽해서 길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 상태로 ‘난 할 수 있어!’ 하고 돌진하다간? 결과는 영화 ‘겨울왕국’에서 올라프가 눈덩이로 굴러 커지는 장면처럼 된다. 나도, 명상도, 산산조각. 게다가 지금까지 잘 타고 내려왔던 스키 날이 부서지는 건 덤이다.
그럴 땐 차라리 멈추는 게 낫다. 스키를 벗고, 부츠 발로 눈길을 저벅저벅 걸어 나오는 것. 사실 멈춘다는 건 ‘포기’가 아니라 ‘내 장비 지키기’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버티면 명상 자체가 싫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잡념이 질기게 달라붙을 때,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 오늘은 스키를 벗자. 눈길 좀 걷는 것도 낭만이잖아?”
그럼 ‘멈춤’은 구체적으로 뭐냐고?
나는 명상이 안 될 땐 책을 펼치기도 한다. 사실 책 내용을 다 읽는 건 아니고, 세 줄 읽다 보면 이미 다른 생각으로 빠져 있기도 하다. 괜찮다. 그게 오늘의 명상인 거다.
아예 소파에 드러누워 드라마를 틀어놓을 때도 있다. 집중해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BGM처럼 흘려보내면서 멍 때린다. 혹은 세탁기를 돌려놓고 ‘쿵쿵쿵’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놀랍게도 이런 단순한 리듬들이 마음을 가라앉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자리를 떠나면, 머리가 다시 열린다.
글이 안 써져서 미치겠을 때 설거지를 하다가 문장이 번쩍 떠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억지로 붙잡고 앉아 있을 땐 절대 나오지 않던 생각이, 접시 헹구는 순간 '띵!' 하고 튀어나온다. 뇌가 ‘물길 뚫렸다’는 신호를 주는 거다.
비유하자면 연인 관계랑 비슷하다. 서로 예민해져서 말만 붙여도 싸움이 날 때, 억지로 화해하려 들면 상황은 악화된다. 오히려 잠깐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 각자 진정하고 다시 만나면, 어처구니없이 웃으며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명상이나 업무도 똑같다. 잠시 떨어지는 게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오래 함께하기 위한 전략일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잡념이 몰려올 때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 잠깐 헤어져.”
잡념에게 매달리거나 싸우지 않고, 오히려 거리를 두는 거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을 인정하는 용기다. 멈춘다고 해서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그 잠깐의 멈춤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연료가 된다.
스키도 완벽하게 미끄러질 때만 스키가 아니듯, 명상도 호흡만 세야 명상이 아니다. 때로는 눈 위를 천천히 걷는 그 발걸음, 설거지하는 순간, 천장 무늬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 시간이 — 이미 충분히 명상이 될 수 있다.
불교에서도 꼭 절에 가야만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내가 마음으로 부처를 찾는 순간, 그곳이 곧 절이고 성지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멋들어지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만 명상이 아니다. 내 마음이 잠시라도 고요해진다면, 그게 이미 명상이다. 숨이 좀 거칠면 어떻고, 주변이 소란하면 어떤가.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 숲이 너무 빽빽해지는 날에는 그저 세탁기 돌아가는 ‘쿵쿵쿵’ 소리나 듣자.
쿵쿵쿵, 쿵쿵쿵. 오늘 빨래 잘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