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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으로 휘젓는 사내 정치

함께 먹는 식사가 직장 관계에 미치는 영향

by 바그다드Cafe Mar 26. 2025

오전 11시 30분. 슬슬 책상 주변에서 들리기 시작하는 소곤거림. "오늘 점심 뭐 먹을까?" 이 한 마디에 담긴 무게감은 분기별 실적 발표보다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왜냐고요? 점심시간은 단순한 '허기 채우기 타임'이 아니라, 사내 정치의 격전지이자 인맥 확장의, 그리고 때로는 승진의 분기점이 되기도 하니까요. 야생의 직장 환경에서 점심시간을 생존하는 법, 오늘은 '점심시간의 정치학'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식사 테이블은 또 다른 회의실 (그런데 여긴 커피가 없잖아요?)


회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점심 식사는 공식적인 회의실보다 때로는 더 중요한 의사결정의 장이 됩니다. 한 술 뜨는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회의실의 딱딱한 논의보다 더 솔직하고 깊은 내용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다음 프로젝트는 누가 맡지? 아, 이 불고기 정말 맛있다!" (불고기에 관심 없음, 다음 프로젝트 맡고 싶음)


"인사이동이 있다고? 그나저나 이 김치찌개 짜지 않아?" (김치찌개 짠맛 관심 없음, 인사이동 정보에 목마름)


물론 점심시간마저 '스탠딩 미팅'처럼 변해버리면 진짜 밥맛입니다. "저 지금 한 입도 못 먹었는데 계속 PPT 이야기하실 거예요?"라는 절규가 나올 법도 합니다.


누구와 먹는가의 미묘한 정치학 (혹은: 식판의 위치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회사에서 "누구와 점심을 먹느냐"는 단순한 선택이 아닌, 마치 중세 시대 귀족들의 식탁 배치도처럼 권력관계와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됩니다.


점심 그룹의 풍자적 도감:  


- 임원진 테이블: 회사의 '마지막 만찬' 테이블. 이곳에 초대받으면 "드디어 알아봐 주는구나!"라고 속으로 환호하게 됩니다. 하지만 젓가락 쥐는 법부터 긴장되니 주의하세요. 국물 튀기는 순간 경력에 오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 팀별 점심: "우리는 운명공동체입니다"를 식사로 증명하는 시간. 팀장이 "다들 편하게 먹어~"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편하게 먹지 않는 미스터리한 시간입니다. 


- 멘토-멘티 식사: "선배님,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위해 만 원짜리 한 장이 썩는 투자의 시간. 선배의 조언 절반은 "내 땐 말이야..."로 시작합니다.


- 혼밥족: "저는 제 페이스대로 먹고 싶어서요"라는 공식 답변 뒤에 숨겨진 "그냥 다 귀찮아서"의 진실. 또는 "다이어트 중"이라는 변명 뒤에 숨겨진 "사내정치 피곤해서"의 현실.


동료가 갑자기 CEO와 점심을 먹게 되면, 사무실은 전체 메신저가 꺼진 채로 "쟤 뭐지? 무슨 일 있나?"라는 텔레파시가 오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해당 직원의 SNS에는 어김없이 "오늘 대표님과 뜻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성장하는직장인 #멘토링"이라는 글이 올라오죠.


음식 선택에 담긴 미묘한 메시지 (당신의 메뉴가 당신을 말해준다)


당신의 점심 메뉴 선택은 은밀한 자기 PR입니다. 샐러드를 선택하는 사람은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어제 치킨 두 마리 먹었는데 죄책감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같은 메뉴를 먹는 사람은 '일관성 있는 보수파'로 분류되지만, 속으로는 "메뉴 고민하기 너무 귀찮아서..."라는 비밀을 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임원이 직원들과 같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우와, 소탈하시네!"라는 찬사가 쏟아지지만, 저녁에는 법카로 따로 장어 오마카세가 예약된 비밀을 아는 이는 몇 없습니다.


점심 자리에서의 대화: 숨겨진 기회와 위험 (혹은: 그냥 먹기만 할걸...)


점심시간의 대화는 숨겨진 지뢰 찾기 게임과 같습니다. "주말에 뭐 했어?"라는 무해한 질문에 시작해서, 어떻게 "사실 나 이직 생각 중인데..."라는 폭탄발언까지 가게 되는지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정보 수집'의 장으로 활용합니다. 흡사 007 요원처럼 "그래서... 그 프로젝트 진행상황이 어떻게 되나요?"라며 캐주얼한 척하며 정보를 캐내는 기술은 직장생활 5년 차쯤 되면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됩니다.


물론 가끔은 "어제 부장님이..."로 시작하는 대화가 점심 메뉴보다 더 맛있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십 타임'이 당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오늘의 가십 주인공, 내일의 가십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점심 초대의 힘: 누가 계산하는가? (혹은: 카드를 꺼내는 순간의 미묘한 긴장감)


"오늘은 제가 살게요"라는 한마디는 직장 내 계급장 떼고 싸우는 마지막 결투와도 같습니다. 상사가 "내가 살게"라고 하면 거절하는 척하면서 지갑은 절대 꺼내지 않는 미묘한 춤사위가 시작됩니다.


더치페이를 제안하는 순간의 어색함은 오직 직장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우리 그냥 각자 내요~"라는 말 한마디에 왠지 모를 서늘함이 감도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회식 후 상사의 "다음엔 OO 씨가 한번 살아요~"라는 농담 같은 진담. 그리고 그 말을 절대 잊지 않는 상사의 놀라운 기억력.


'먹지 않음'의 정치학: 점심시간을 거부하는 용감한 영혼들


점심을 거르고 일하는 직원들의 속마음: "난 정말 바빠서 먹을 시간이 없어"(번역: SNS 보다가 시간 다 갔는데 이제 와서 밥 먹으러 가기 민망해...)


혹은 "난 간헐적 단식 중이야"(번역: 사실 그냥 동료들과의 어색한 대화가 두려워...)


아니면 진짜로 업무에 너무 몰입해서 배고픔도 잊은 워커홀릭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한 조언 한 마디: 그거 절대 오래가지 않습니다.


건강한 점심 문화를 위한 짧고 가벼운 제언  


- 다양한 사람들과 밥 먹기: 항상 같은 사람들과만 먹지 말고 가끔은 모르는 동료와도 식사해 보세요. 최악의 경우, 그냥 밥만 먹으면 됩니다.


- 진짜 쉬는 시간으로 활용하기: "저 지금 밥 먹는 중인데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가끔은 혼밥의 여유도: 혼자 먹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사회생활 배터리 충전 시간'이라고 생각하세요.


결론


점심시간은 직장 생활의 작은 오아시스이자, 때로는 정글이 되기도 합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당신의 직장 생활의 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딱 한가지만 기억하세요. 어떤 회의도, 어떤 업무도, 맛있는 점심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도 맛점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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