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조금은 쓸모 있는 이야기
요즘 따라 ‘변화’라는 말이 유난히 낯설고도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사실 변화는 처음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이메일이 업무의 중심이 되었을 때, 회의 방식이 비대면으로 바뀌었을 때도 세상은 늘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변화는 어쩐지 다르게 느껴집니다. 아니, 어쩌면 바뀐 건 세상이 아니라, 그 변화와 마주 선 ‘저 자신’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변화가 자극이었습니다. 새롭고 신기한 무언가를 접하는 일은 즐거웠고, 남들보다 먼저 익히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흔을 넘기고 나니, 변화는 점점 낯선 일이 되어 갑니다. 예전만큼 빠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새로운 도구를 익히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젊은 동료들과의 속도 차이도 은근히 부담스럽습니다. 또한 가끔은 스스로가 구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은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겁니다. 변화는 반복되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위치는 해마다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 문득 철학이 떠오릅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 어문학을 전공했고 경영학을 부전공했습니다. 그런데 전공과 취업에 상관없는 철학 수업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인 2000년 대만 하더라도 캠퍼스의 낭만이 있었는데, 철학 수업은 더더욱 낭만적이었습니다. (수업도 빡빡하지 않고, 학점을 잘 쳐줬다는 얘기입니다) 그때 철학 수업에서 글쓰기도 배웠습니다. 돌이켜보니 쓸데없는 걱정은 있어도, 쓸모없는 경험은 없더군요.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문장이 떠오릅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입니다. 처음 들었을 땐 그냥 멋진 비유 정도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똑같은 변화처럼 보여도, 그 안에 있는 나 자신은 매번 달라져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예전에는 AI가 뭔지 몰라도 “일단 한번 써보자”는 마음이 앞섰지만, 지금은 “과연 내가 이걸 익힐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이 먼저 떠오릅니다. 변화는 그대로일지 몰라도, 그것을 마주하는 제 태도는 분명 달라져 있었습니다.
철학이 주는 위안은 이런 데 있습니다. 변화는 거부하라고 말하지도 않고, 무작정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그 변화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 자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라고 말합니다. ‘나는 왜 불안할까?’ ‘무엇이 두려운 걸까?’ 철학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건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변화는 조금 덜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어떤 철학자는 인간을 ‘던져진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계획 없이 이 세계에 내던져졌고, 그래서 삶은 원래 예측불허이며 불안정하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조직도와 연봉표, 직급 체계 안에서 살지만, 사실 매일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새로운 툴이 쏟아지고, 우리를 평가하는 방식도 끊임없이 바뀝니다. 우리는 변화가 예고 없이 닥쳐올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흔들리고, 또다시 중심을 잡아갑니다. 불안은 당연한 감정입니다. 오히려 그 불안을 느낀다는 건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삶이 그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똑같은 회의, 비슷한 보고서, 반복되는 야근과 일상들. 철학자 니체는 그런 반복 속에서도 “그 삶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반복될지라도, 그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변화란 결국 새로운 삶을 뜻하는 게 아니라, 똑같은 일상을 다르게 마주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저는 예전처럼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 하기보다, 변화 속에서 어떻게 나만의 리듬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ChatGPT나 다양한 자동화 도구들이 등장하지만, 그걸 ‘어떻게 잘 쓰느냐’보다 ‘내가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일할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기술의 문제를 넘어서, 존재의 방식에 관한 질문으로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참 어중간합니다.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지금까지 해온 걸 버리기엔 아깝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변화는 늘 반복되고,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그 변화 앞에서 ‘지금의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변화는 반복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서 있는 나는, 매번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낯설고 버거운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게 됩니다. 철학은 바로 그 과정에 함께해 주는 조용한 동반자 같습니다. 방향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는 친구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는 또 시작되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또 하나의 나를 만나고, 또 하나의 마음을 알아가겠지요. 그러니 오늘도 묵묵히, 흔들리면서도 스스로를 다잡아가야겠습니다.
p.s. 이제부터 <꼰대 소생술>을 통해, 대학 때 쓸데없이 배운 초짜 철학을 적용하여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에 대해 써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