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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회사생활을 견디는 출근 매뉴얼

카뮈와 출근길 철학

by 바그다드Cafe

*저는 지금 9호선으로 출근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9호선을 타고 출근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서 쓴 글입니다.


아침 7시 30분, 저는 강남행 지하철 9호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안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최소화되고, 숨 쉬는 것도 눈치 보게 만드는 이 밀착된 공간 속에서, 저는 오늘도 인간 샌드위치의 한 조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문득 아주 철학적인 의문이 떠오릅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니 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앞에 서 계신 남성분도, 제 뒤에 계신 여성분도 비슷한 표정이었습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눈빛만으로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게 진짜 인생 맞나요?"


아마 알베르 카뮈가 2025년 대한민국에서 직장인 생활을 했다면, 분명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카뮈 형, 출근길 9호선 한 번 타보세요. 인생이 다 보일 거예요."


ChatGPT 생성

카뮈의 대표작 <시지프 신화>를 떠올렸습니다.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지만, 끝내 굴러 떨어지고 마는 무한 반복의 운명.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회사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우리의 모습은 시지프의 그것과 어쩌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물론 차이가 있다면, 시지프는 바위를 밀었고, 우리는 지갑을 채운다는 점 정도겠지요. (하지만 둘 다 허리에는 무리가 갑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모두 현대판 시지프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손에 든 것은 바위 대신 커피 한 잔일뿐.


출근과 퇴근이라는 끝없는 바퀴를 돌면서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이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카뮈는 바로 이런 순간을 '부조리'라고 불렀습니다. 뜻을 알 수 없는 세계, 이해할 수 없는 반복,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인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주체적인 균열을 시작하면 됩니다.


저는 그동안 출근길에 알고리즘에 의해 조종당했습니다. 유튜브가 추천하는 영상을 무심코 틀어놓고, 무한 스크롤 속에 시간과 정신을 내맡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적어도 출근길만큼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보자."


그 첫걸음은 작고 소박했습니다. 바로, 중국어 공부입니다. 사실 저는 중국어 공부를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매번 결과는 같았습니다.


"내일부터 진짜 한다" → "다음 주부터는 확실히 시작한다" → "구정 지나고 나서 해야지" → 그리고 결국 실패


집에 도착하면 피곤함이 몰려왔고, 주말이 오면 오히려 더 무기력해졌습니다. 결국 소파에 누워 고양이 영상만 보다가 하루를 흘려보내곤 했습니다. (물론 고양이들은 참 대단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러다 이번에는 접근 방식을 바꿨습니다. 완벽한 시간이나 완벽한 컨디션을 기다리는 대신, 틈새를 잡기로 했습니다. 지하철에서는 이어폰으로 중국어 팟캐스트를 듣고, 앱으로 단어를 복습하고, 잠들기 전에는 원노트에 간단한 문장을 전자필기로 따라 적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거창하지 않게, 그러나 끈질기게.


처음에는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조각조각 흩어진 공부가 정말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뜻밖에도 결과는 괜찮았습니다. 심리적 부담이 줄자, 오히려 연속성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최소 2시간 해야 한다"는 부담 대신, "지하철에서 단어 5개만 듣자"는 소박한 목표가 훨씬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끔은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해서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공부하는 날도 생겼습니다.


이 작은 변화 덕분에 출근길이 전보다 덜 부조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뀐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카뮈는 말했습니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인간의 위대함은, 부조리를 인정하고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다."


지하철 문이 다시 열립니다.


"이번 역은 역삼, 역삼역입니다."


저는 속으로 조용히 읊조립니다.


"오늘도 버텼고, 오늘도 조금 더 성장했다."


세상은 어쩌면 쉽게 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회사는 여전히 의미 없는 보고서를 요구할 것이고, 지하철은 내일도 사람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나 자신은 매일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변할 수 있으니까요. 출근길에 외운 단어 하나, 오늘 배운 작은 문장 하나가 모여 언젠가는 큰 변화를 만들겠지요.


언젠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 영화 <后来的我们(먼 훗날 우리)>를 자막 없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며, 오늘도 조용한 출근길 균열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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