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니체가 회의에 참석한다면

불확실성의 시대, 초인이 되려는 문과 직장인의 몽상

by 바그다드Cafe

2025년 봄, 평범한 어느 월요일 오전. 9시 정각에 주간 업무 공유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참석자 모두 말끔한 얼굴로 화면을 켰고, 진행자는 PPT를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매출 추이 보고, 프로젝트 진행 상황, 주요 일정 그리고 “기타 공유 사항”.

익숙한 흐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의가 끝날 무렵이면 늘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우리는 비싼 밥 먹고, 임대료가 비싼 사무실에서 방금 무슨 대화를 나눈 걸까?’

형식은 그럴듯했지만, 본질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아이디어보다는 관행이, 질문보다는 방어가, 의미보다는 ‘문제없음’이 우선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문득 이런 상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회의실에 니체가 들어온다면 뭐라고 말할까?’

(대학 다닐 때 쓸모없이 보였던 니체의 책이 이제야 기억나는 건 참 아이러니합니다. 역시 쓸데없는 걱정은 있어도 쓸모없는 경험은 없습니다.)

‘신은 죽었다’, 그리고 창의성도 죽었다

니체는 말했습니다.


“신은 죽었다. 그리고 신을 죽인 것은 바로 우리다.”

그의 이 말은 종교와 도덕, 기존 질서가 더 이상 인간에게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통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025년의 회의실에서는 누가, 무엇이 죽은 것일까요?

창의성, 질문, 주체성... 회의실에서 이미 사망한 주체들입니다.

모두가 안전한 말을 골라내고, 눈치 있게 판단하며, 확신 없는 의견을 조심스레 공유합니다. 슬쩍 눈치를 보며 “상무님 말이 맞습니다”라는 말이 정답처럼 통용됩니다.

말은 많지만 의미는 없고, 결론은 있지만 책임은 없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듯한 회의를 잘 마쳤다.”

그 순간, 니체가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듯한 상상이 스쳤습니다.

“그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었다. 사유하지 않고, 반복하며, 살아 있는 듯 행동하지만 이미 죽은 존재들이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초인’을 꿈꾸는 사무직

니체가 말한 초인(Übermensch)은 단순히 ‘강한 인간’이 아니라, 외부의 규범이 아닌 스스로 만든 가치와 기준으로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회의실에서 우리는 늘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상무님이 보기엔 이게 맞을까?”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니체는 묻습니다.

“그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대가 이 회의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초인은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부의 필요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내부로부터 나오는 의지, 사유, 해석. 그것이 회의실에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영혼의 근육

요즘 들어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AI는 보고서를 써주고, 회의록을 정리해 주고, 문서의 문법도 교정해 줍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점점 ‘사유’ 하지 않게 됩니다. ‘창조적 고통’ 대신, ‘자동화된 안도’ 속에서 안락한 무사유의 상태로 미끄러집니다.

니체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봤을까요?

그는 아마 이렇게 충고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대들이 회피한 고통 속에야말로 진짜 변화의 씨앗이 있다. 고통 없이 진화는 없고, 불편 없이 자아는 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요즘 다음과 같은 작은 실천을 해보고 있습니다.

회의 중 최소 한 번은 질문하거나 문제 제기하기.

하루 한 번은 ‘나는 오늘 무슨 의지로 이 일을 했는가’를 묻기.

어쩌면 이것이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의 출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의실의 초인은 누구여야 하는가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조용히 자리를 떠나는 풍경 속에서 니체를 다시 상상합니다.

“그대는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이 곧 진리가 아니며, 타인의 기준이 곧 진실은 아니다. 초인은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자기 해석의 용기로부터 탄생한다.”

'이직 84'인 제가 고민하는 건 단순한 경력 이동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미를 갱신하는 용기입니다. 니체가 회의에 들어온다면, 그는 우리의 KPI도, 조직문화도, 보고서의 문장도 모두 ‘해석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나서며 이렇게 남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직이 아니라, 가치의 재창조를 준비하라. 너의 사다리를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