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직장인의 술자리 예의

유교와 현대 회사생활의 거리감에 대해

by 바그다드Cafe

오후 6시 30분, 발산역 뒷골목의 고깃집. "오늘도 고생 많았다!"라는 부장님의 구호와 함께 회식이 시작됩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앉은 채, 술잔이 돌고 고기가 익어갑니다. 누군가는 조용히 젓가락만 움직이고, 누군가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소주잔을 채웁니다. 저또한 부장님이 술잔을 따를 때, 직장인 주도(酒道)를 충실히 지킵니다.


부장님께 소주를 따를 때는, 소주병을 양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는 소주병 몸통의 상표 스티커 가리기. (지역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두 손으로 공손히 소주잔 받기.

부장님이 술을 다 따르면 조금 입술에 대기.

그리고 술 마실 때는 고기를 홱 돌리기. 등등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예의를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억지 예의를 표하는 것인가?"


이럴 때 떠오르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조선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입니다.


퇴계 선생은 예(禮)를 단순한 형식이 아닌, 인간관계를 조화롭게 하는 도덕적 장치로 보았습니다. 그는 "예는 사람의 몸을 가지런히 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화를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예는 억압이 아니라 질서였고, 위계가 아니라 배려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회사에서의 예는 종종 그 본뜻을 잃고, 위계의 수단이 되곤 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잔을 먼저 채워야 하고, 상사의 농담에는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며, 2차를 거절하는 후배에게는 눈치가 주어집니다. 우리는 '예의'라는 이름으로 감정 노동을 수행하며, 때로는 스스로를 감춥니다.


퇴계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아마도 묻지 않았을까요.


"지금 이 자리는 진정한 소통의 장인가?"

"상사와 부하가 서로를 인격으로 대하고 있는가?"


퇴계의 예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단순히 순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중요시했습니다. 예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선배가 후배의 잔을 채우고 후배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할 때, 억압이 아니라 존중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퇴계가 말한 예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다릅니다. 어떤 이는 잔을 들고도 마음은 닫혀 있고, 어떤 이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당함을 삼킵니다. 그런 자리에서의 '예'는 이미 본질을 잃은 허례(虛禮)입니다.


퇴계 선생은 인간의 내면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진정한 예란 상대를 배려하는 진심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낮추며, 학문과 인간관계 모두에 있어 '마음의 경건함(敬)'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회식은 여전히 복잡한 감정의 교차점입니다. 관계를 쌓는 기회이자, 동시에 감정노동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퇴계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술이 아니라 진심이고, 위계가 아니라 상호 존중일 것입니다.


고기가 익어가는 사이, 저는 조용히 옆자리 후배에게 말합니다.


"오늘 하루 고생 많았어. 다음엔 너 좋아하는 메뉴로 가자."


이것이야말로, 퇴계가 말한 '예'의 시작 아닐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