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Diego, Miramar) Blue Angels Airshow
[ 이번 소재는 미국 해군 Navy에서 주관하는 에어쇼 관련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정치적 견해가 전혀 없고, 어린이들 특히 전쟁 덕후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을만한 이벤트 소개와 관련 이야기입니다. 혹 미군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신 분들께 이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블루엔젤스와의 첫 만남
시간을 거슬러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 오래전에 남편 회사 지인의 초대로 에어쇼를 갔었다.
우린 VIP로 초대를 받았고 남친 업무상 인사를 하고 와야만 했으므로 다른 일정이 있었음에도 몇 시간 다녀왔었다. 아무래도 미군 부대 내 행사고, 주류가 거의 백인이었으며 비즈니스 미팅이라 부담스러웠다.
아주 큰 행사라 많은 인파가 있었지만, 우리가 있었던 VIP 텐트에는 당시 관련자들만 모여 근사한 음식과 와인을 먹으며 미국 최고 탑건들의 에어쇼를 구경할 수 있었다.
멋있었다.
불현듯 어린 시절 어린이날, 하늘에서 컬러 연기를 그리며 쌩~ 지나가던 전투기들이 떠올랐다.
눈이 반짝거렸던 나.
와.. 멋지다! 미래에 아이를 낳으면 이곳에 꼭 데려와야지...
Blue Angels의 정식 명칭은 U.S. Navy Flight Demonstration Squadron이다.
미 해군 비행 시범대.
1946년에 시작된 시범대로 미해군과 해병대의 대표로 실력 있는 파일럿들이 수준급 에어쇼를 하면서 그 실력을 자국민들에게 보여주고, 긍지와 자부심을 북돋는 행사다.
매년 30곳에서 60회 정도의 쇼를 하고 캐나다에서 2번 한다.
블루엔젤스의 공식 로고나 비행기, 파일럿 복장 모두 파랑과 노란색으로 디자인되어 명시도도 높이고 군인으로서의 강직함도 보여준다.
우리는 샌디에이고, 미라마 Mirama에 있는 해군 부대로 갔다. 샌디에이고는 태평양을 끼고 있는 곳으로, 그곳 바닷가 쪽으로 군대가 주둔한다. 그래서 그곳에 여행을 가다 보면 거대 해군 함정이나 군용 헬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부대로 들어가 큰 주차장에 (평소엔 활주로나 비행기 주차 공간인듯한 트인 장소다) 주차를 하고 한참을 걸어 이벤트장으로 가야 한다. 멀리 흰색 거대한 텐트들이 보인다. 하늘엔 크고 작은 일반 경비행기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묘기를 부리고, 하늘에 하얀 연기자국을 만들고 있었다. 한편, 소리는 뭔가 슝- 하고 지나갔는데 둘러보면 이미 지나갔다. 전투기였음이 틀림없었다.
경비행기 묘기 미전국 1위인 한 파일럿은 온 하늘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크게 서클을 그리기도 하며 오르락내리락, 갖은 기교를 부리며 비행 묘기를 보여주었다. 사회자는 극찬하며 그에 관련된 약력과 특기등을 알려주지만 여기저기 비행엔진의 거대한 소리와 인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수송기부터 각 종류별 전투기, 정보수집용 무인 비행기, 미군차량 심벌인 허머 Hummer도 전시되어 있다.
NASA에서 따로 부스를 만들어 새로운 무인 비행기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스티커도 제공하고 갖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들이 설명해 주었다.
일반인들은 수송기에 직접 올라가 실내를 구경하고 사진 촬영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비행기 날개를 그늘 삼아 그 밑에 자리 잡고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저 멀리 허공에서 묘기 부리는 비행기나 헬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한쪽은 마스크를 낀 파일럿이 아이들과 함께 기념 사진도 찍어주었고, 직접 헬맷과 방탄조끼를 입고 허머를 타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군트럭에 올라타서 노는 아이들, 갖가지 전투기(구모델)에 승차하는 일반인들과 어린이들. 모두들 놀이터처럼 즐겁게 뛰어놀았다.
여기저기 스티커와 작은 굿즈들도 선물 받아 손에 든 비닐봉지도 두툼해졌다.
컨셉 디자인을 했던 내 눈에는 이 모든 전투기와 메커니즘, 신기술들이 자료용으로 눈길을 상당히 잡아끌었으나 사실 두 딸램과 남편은 광속으로 지나가는 전투기의 굉음이 시끄럽고, 날씨가 덥다며 표정은 멀뚱했다.
빨리 큰 텐트로 가서 시원한 음료에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가족들의 재촉함에, 탈것들을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텐트 내 뷔페식당으로 가야만 했다.
에헤이,, 엄마는 놀이터 온 마냥 신났는데... 아주 잠깐! 전쟁덕후 아들이나 조카가 하나 있었으면 더 재미있었겠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위 사진 속 카탈로그 안에는 그 해 선보이는 각종 전투기와 정보기, 헬기들의 사진과 모델명들이 나열되어 있는 책으로 각 한 권씩 받았으나 가족 중에 이런 것을 들여다보며 줄줄 꿰는 전쟁덕후는 없다.
하긴 딸들이 포켓몬을 줄줄 외는 대신 전투기 차량과 모델을 외우고 다녀도 또다른 걱정이긴 하겠다.
블루엔젤스가 상공으로 이륙하기 전, 다른 쇼들이 먼저 이어졌다.
하늘에서 여러 장병들이 낙하산을 타고 줄줄이 내려왔다.
그리고, 비행기 엔진과 고급 스포츠카들이 함께 대결하 듯 고속 운전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장갑차와 군트럭의 미니 퍼레이드도 보여주었다.
해병대들의 시범.
여기저기 폭탄이 터졌다.
시커먼 연기와 불이 타오르고, 내가 있던 장소에서는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곳에 헬기 몇 대가 정렬을 이루어 멀리서 다가왔다.
거대 헬기가 군장갑차를 운반하여 육지에 내리고, 해병대들은 다른 헬기에서 헬기레펠 Helicopter Repelling 하여 잠복하는 자세를 취한 후 우리 쪽으로 수색하 듯 다가오는 시범을 보였다. 우리 앞에서 총을 겨누고 다가오면서 우리를 발견하여 구출하는 듯한 스토리로 그렇게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을 시범하는데 마치 영화 속 장면 같았다.
사전 식을 치른 후, 드디어 블루엔젤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환호하였다.
파일럿 한명한명 전투기 시승을 하고 한 대씩 치고 나가는 엔진소리가 요란하지만 예사롭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비행기 엔진 소리와 달랐다.
그들은 여러 가지 대형으로 아슬아슬한 간격을 정확히 맞추며 함께 공중 곡예를 하였다. 바로 눈앞에서 혹은 머리 위에서 지나가며 가끔은 철렁한 장면을 선보이기도 하고, 비행기간 정확한 간격을 유지하며 비행하는 파일럿들의 실력에 놀랐다. 저 중 한 명만 삐끗해도 초대형 사고다.
드넓은 하늘 공간에 하얀 연기를 남기며 활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경의로웠다.
언제 또 이곳을 방문할 수 있을까.
너무 멋져 여기저기 분주히 영상 촬영을 하였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영화 탑건의 한 장면처럼, 저 멀리 눈앞 정면에서 다섯 대의 전투기가 나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왔다.
어라.. 점점 다가오기에 살짝 긴장하기 시작하려는 찰나, 몇 미터 바로 앞에서 머리 위로 날아 지나갔다.
옴마야... 심장박동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두근거렸다.
최고의 짜릿한 경험이었다.
귀마개를 할걸... 싶을 만큼 파란색 공연 전투기들은 굉음을 내며 아주 낮은 저공비행으로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갔다.
두근두근...
과장된 표현을 하자면, 손을 뻗으면 지나가는 비행기에 닿을 것만 같았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은 그 순간의 감격과 울림으로 가슴에 콕 새겨졌다.
(영상을 올리고 싶지만, 그전에 불필요한 영상을 마구 찍어댔던 관계로 휴대폰들 배터리는 바닥이 나버렸다. 그 하이라이트 장면과 감동은 나와 가족들의 기억 속에만 있다.)
와.. 멋지다! 미래에 아이를 낳으면 이곳에 꼭 데려와야지...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 에어쇼를 보며 중얼거렸던 그 다짐을 할 때만도 내가 두 딸의 엄마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나만의 약속대로 아이들과 함께 다시 돌아왔음에 반가웠다.
내가 처음 블루엔젤스 에어쇼를 본 그 이후에 공연 중 사고가 있었다. 그래서 에어쇼를 몇 년 중단했었고, 그 새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사고로, 그리고 팬더믹으로 잠잠하던 에어쇼가 다시 컴백했음이 반가웠고, 비즈니스 미팅이 아닌 가족 피크닉으로 방문하니 놀이동산에 간 마냥 즐거웠다.
욕조의 물이 마구 소용돌이치며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듯이, 모든 행사가 마친 후 주차장 내 모든 차량은 한 출구를 향해 몰려들었다. 덕분에 트래픽에 걸려 오고 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 물결 속에 잠시 갇혔다. 차 안에서 18살-20살 정도 되어 보이는 군인들의 교통정리 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저들이 일등병일까.
그런데 한 연인이 눈에 들어왔다.
3-4 미터 정도 거리에 한 젊은 군인이 연인을 꼭 껴안은 후, 차에 태운다.
그는 한 물꼬가 트인 구멍에 몰려드는 물살 같은 수백 대의 자동차 물살을 헤집고 연인이 홀로 탄 작은 크림색 경차를 그 물길 속에 끼워 넣어주었다.
그의 눈빛은 집까지 바래다 주지 못 하는 미안한 마음인지,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인지, 한번 더 안아보고 싶은 마음인지, 그저 촉촉하고 아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뒤차에 양해를 구하는 손길을 보내며 연인의 차를 톡톡 치며 잠시 차와 함께 걸었다.
안내하는 손길은 아쉽고 아련하기만 하다.
할리우드영화처럼 거기서 찐한 키스라도 한번 더 할 법 한데, 트래픽에 짜증 내 할 운전자들의 저주가 두려운지, 수백 개의 눈이 쑥스러운지, 부대를 방문한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인지, 미국인들의 흔한 찐한 키스는 하지 않았다.
미국 MZ 어린 연인커플. 금방이라도 연인을 차에서 끌어내릴 것만 같은 눈빛으로 마지막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떠나보낸다. 외부인을 내 보내고 곧 군은 빗장을 걸어야 하기에 절절이다.
서로의 안쓰러운 마음 잘 안다.
사랑하는 연인을 어쩔 수 없이 먼 군대로 보내야만 했던 심정을 어찌 모를까나. 난 그저 주변 차량들이 그들에게 경적을 울리며 짜증 내지 않길 바라기만 하였다. 이제 막 20살 정도의 어린 연인들에게 함께 할 시간을 1초라도 더 주고 싶었다.
하지만 차량의 물살은 그들의 사랑을 아랑곳 않고 빨리 이 외길을 안전하게 지나 고속도로로 올라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는 운전자들로 가득했는지 냉정하게 계속 그녀의 차량을 밀고 나갔다.
연인의 차와 함께 걸어 따라가던 그 군인은 결국 모퉁이 외길에서 손짓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모퉁이를 지나면 주차장 세 곳에서 한 길로 모여드는 구역. 남자도 더 이상은 위험했다.
자동차 물길에 휩쓸려 내려가는 연인의 차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았다. 다른 군인 동료들이 와서 어깨를 토닥인다. 그렇게 한동안 서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지나며 우리 차량도 물살을 헤집고 언덕 외길을 지나 겨우 고속도로로 올라 숙소로 향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쁘고, 안타깝고, 짠했다.
미국 군인은 한국과 달리 의무가 아니기에 저 청춘들은 그들이 자원 입대한 거다.
어릴 적부터 군인을 꿈으로 삼았을 수 있다.
국가를 지키고픈 애국심에 입대를 한 이도 있을 것이고, 혹은 집안 형편을 위해 입대한 이들도 있을 거다. 미국은 제대 후 많은 혜택들이 있다. 가령 어느 과목 선택을 하던 대학 학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해준다.
어떤 이유건 저 청춘들은 오늘 당장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와의 알콩달콩 데이트를 포기하고 본인과 국가를 위해 생활을 한다. 그래서 대견하고 감사하다.
그날 그곳을 방문한 어린 친구들은 군인들과 파일럿을 보며 꿈을 키울지도 모른다.
한국처럼 각 잡힌 군인들은 아니었지만, 어른인 내가 봐도 멋있다.
파일럿도, 나사 NASA 군용기 개발 엔지니어도, 일반 보초병도 제복을 입은 그들 모습이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신기하고 멋진 세계로 보일 거다.
가족 여행은 무조건 해외를 가야 하고 무조건 유명한 곳에 가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저 하나하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면 된다.
아이들만큼 모든 부모도 다르다. 각자 살아온 다른 경험치와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의사이자 연구원인 한 지인은 시체가 분해되어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연구소에 딸들을 아무렇지 않게 데리고 간다. "한번 볼래?"라며 챌린지 시키기도. 미술 전공이라면 그 부모는 자연스레 아트에 아이들을 노출시킨다. 사업을 하는 지인들은 자녀를 데리고 공장과 거래소, 가게를 보여준다. 학교 선생님들은 방과 후 자녀를 교실로 불러 함께 뒷정리를 하거나 내일 쓸 재료 준비. 가끔 학급 채점도 맡긴다.
각 부모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렇게 의사도 꿈꾸고, 아티스트도 꿈꾸며, 사업가, 선생님도 꿈꿔본다.
내가 프로로 일을 하던 시절, 미래 아이들을 낳으면 꼭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멋진 에어쇼.
인형놀이를 좋아하던 딸들은 좋아서 기어오르고 뛰어다니기보다 눈 동그랗게 뜨고 처음 보는 모든 걸 신기하게만 생각하였다. 또다른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하루였다.
무기, 전쟁, 혹은 군사덕후 자녀나 전쟁 게임을 즐기는 자녀가 있다면 이런 행사 강추해 본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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