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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verly지아 Sep 23. 2024

#3. 채수민 _ 2

연재소설 < 그녀들의 맛있는 키스 >

위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휴대폰 진동음이 마치 모기소리마냥 잠자는 수민을 괴롭혔다. 팔을 뻗어 휴대폰을 껏다. 그런데 어째 수민의 휴대폰과 크기가 다른 느낌이다. 이불속에서 고개를 쏙 뺀 수민이 손에 들린 휴대폰을 보았다.


"음.. 누구 휴대폰이지.. 아씨 남의 휴대폰을 잘 못 가져온 모양이네......"


머리가 찌근거렸다. 순간 벌떡 일어나 앉은 수민.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침실이었다.


머리가 어째 더 찌근거렸다. 일단 수민은 곁에 옷가지를 얼른 입었다. 옷매무새를 만지고 대충 머리를 쓸어넘기고 호텔 방문을 열었는데, 수민은 더 어지러워 쓰러질뻔 했다. 눈 앞에 수민과 팀원들이 지난 2주동안 일했던 거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뿔싸......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창민이 보였다. 그가 고개 돌려 수민을 바라보았다.


“일어났어요? ”

“.......”


그는 커피를 잔에 따라 수민에게 다가왔다. 수민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었다. 창민은 천천히 다가와 수민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 커피 마시고 나랑 아침먹고 가요. 필립은 어제 동진과 캠핑가서 여기 없어요. 녀석이 한국 너튜버 영상을 보고 미국 돌아가기 전에 감성캠핑 해보고 싶다며 어제 떠났어요. ”


‘채.수.민! 너 지금 무슨 사고 친거야! 이 사람 직장 동료라고!’


그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난히 화사하게 햇살 좋은 아침이었지만, 수민은 눈 앞이 점점 깜깜해 졌다.


일단 창민의 말대로 수민은 식탁의자에 앉았다.


‘그래 일단 커피를 마시고 정신 차려보자. 우리 아무일 없었을지도 몰라. 채수민 기억해보자.’


식탁을 내려다보던 수민의 눈에 커피잔이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침 햇살이 반사된 탓인지 창민에게 빛이 났다. 흐트러진 앞머리, 흰 티셔츠에 체크무늬 파자마 바지. 뽀사시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화사하게 수민을 향해 미소짖고 있었다.


‘정신차려 채수민. 직장동료에다가 세 살 어린 연하남이라고!’


그런 수민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민은 곁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억속에 어젯밤 자신을 바라보던 그가 떠올랐다. 창민의 눈빛이 촉촉해 수민의 마음이 요동쳤다.


' 저 눈 왜 저래? 아니 웰케 가까이 앉아. 하룻밤 보냈다고 뭐 우리가 뭐..'


"우리가 뭐 ......"


순간 수민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속으로 하던 말이 왜 입 밖으로 나왔냐고! 수민은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우리가 뭐요?"

"아니, 우리 별일 없었죠.....?"

"아뇨 별일 있었쟌아요. 난 먼저 입맞춰 줘서 좋았는데. 속 아프죠? "


창민은 특유의 찡긋거리는 눈웃음을 던지고 거실 안쪽 주방으로 갔다.


'참, 이 사람 미쿡 교포였지. 그것도 동부출신. 디~게 솔직하십니다. '


마음속으로 비꼬았다. 일단 사고는 친 거 같고, 수습하자. 삼십대인데 쿨한 척 넘어가보자. 

커피 한 모금 마시며 수민은 지난밤을 기억해 내려 했지만 머리만 더 지근거릴 뿐이었다. 맥주, 소주, 위스키에 칵테일까지 다양하게 쓸어 마셨다. 머리가 안 아픈게 이상하지라며 수민은 후회 하고 있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아였다.


"수민아 어디야? 브런치 모임 잊은거 아니지? 얼른 와. 다 모였어."


'고맙다 친구야. 날 구해줘서.'


" 어머 지아야! 지금 가는 중이야! 금방 도착하니까 프렌치토스트로 주문해줘."


평소보다 유독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은 수민은 후다닥 식탁 위에 둔 핸드백을 챙겼다. 그러고 보니 그녀 앞에 타이레놀과 생수가 놓여 있었다.


'일단 털어넣자.'


그의 배려에 감사하며 약을 까서 입에 넣었다.


"앗 빈속에 먹으면 어떡해요. 이거라도 좀 먹고 약먹지."


창민이 미리 주문해 두었던 해장국을 가지고 나오던 참이었다.

수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아....... 친구 브런치 모임을 깜빡한거 있죠. 이런 어쩌죠 가봐야하는데......혼자 드시게 해서 미안해요."


수민은 그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급히 나오려 했다. 그 때 창민이 뒤에서 수민을 안았다.  키 큰 그의 품에 쏙 갇힌 느낌이었다.


두근. 수민의 심장이 뛰었다.


"이대로 가면 나 정말 슬픈데... 그럼 친구들 만난 후에 우리 밥 먹어요. 나 오늘밤 아니고 내일 출국하게 됐어요. 나한테 시간 좀 내줘요. 부탁이에요."


진심이 느껴졌다. 내일 출국이란 소식은 수민도 내심 반가웠다. 그를 하루 더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창피함과 반가움중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어느덧 일년 반 전쯤 이야기다.


결국 수민은 나중에 전날 밤 필름이 끊기기전까지의 기억을 해 냈다. 다행인건지, 그가 싱가폴행 비행기를 하루 미룬 후에야 말이다.


봄기운 만연했던 그 밤. 그녀는 문밖에 날리는 벚꽃을 보며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녀를 보던 창민은 수민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문득 그의 시선을 느낀 수민은 창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수민을 바라보는 그의 깊은 눈망울과 마주쳤다. 그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그에게 자석처럼 끌려갔다.


수민은 봄밤의 분위기에, 진한 하이볼 맛에, 오랜만에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 그리고 달콤한 키스에 푹 빠져버렸다.  그의 옅은 향수와 칵테일 향이 섞인 내음이 사랑스러웠다. 그 향수는 지난 이주동안 창민에게서 잔잔히 흘러나와 은은히 주변에 퍼지던 그의 향기였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맡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창민과의 키스가 좋았다. 짜릿하고 맛있었다.

거기까지가 수민의 기억이었다.


당시 한국식 감성캠핑을 떠났던 필립이 다리를 다쳐 하루를 지체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필립과 함께 한국 출장중이던 직장 상사가 병원 보호자로 남아야 하는건 당연한 일이라며 창민은 굳이 괜찮다는 필립의 만류에도 비행시간을 다음날로 연기했다. 한시간 여 정도 필립의 병실에 머물렀을까. 


"필립, 좀 어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지 움직일만 해요."

"그래?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어?"

"그럼요."

"그럼 나 잠시 볼일 보러 다녀올테니, 필요한거 있으면 간호사에게 말해. 저 김간호사님에게 부탁해놓을테니."


급히 나가는 창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필립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채 창민은 병실을 나오면서 수민의 번호를 눌렀다. 


그 후 남은 시간동안 창민은 수민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가 싱가폴로 떠나기 직전까지.

그와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그와의 키스는 종일 달콤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수민은 그들 미래를 상상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그녀의 마음을 끌고가는 그 곳으로 가버렸다. 나이, 계급장, 일, 사랑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끌리는 대로 그와 함께 남은 하루를 보냈다. 20대에도 그렇게 마음이 가는대로 내버려 둔 적이 한번도 없었던 수민이었다.

전형적인 극 사고형, 이성적, 논리적인 수민의 삶에 일어난 대형 사고였다. 그것도 상대는 직장 동료.

어차피 멀리 떠날 직장 동료라 어쩌면 마음의 고삐를 풀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남은 하루를 두사람만의 은밀한 시간으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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