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그녀들의 맛있는 키스>
테이블에 새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리필되었다.
그녀들은 이곳, < 맛키 ; 맛있는 키스>를 아지트로 정한 후 지난 3년 동안 커피숍 사장님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맛키> 사장님은 단골들을 꿰뚫고 있는 듯 가끔 매니저를 시켜 단골이 오면 무료로 커피 리필 해줬다. 그것도 하우스커피가 아닌 고객이 주문해서 마시고 있던 커피 종류로 말이다.
“사장님께서 특별 단골분들에게 드리는 서비스입니다. 더 드시고 싶은 음료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이건 저희가 새로 개발 중인 점심시간 메뉴예요. 새우 파스타와 아보카도 햄 샌드위치인데 한번 드셔보시고 맛 평가 부탁드릴게요.”
“어머 매번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아닙니다. 항상 정확한 피드백 주셔서 저희도 맛난 메뉴 만들 수 있어서 좋습니다. 말씀 계속 나누세요.”
20대 후반 훤칠한 키와 하얀 얼굴, 단정하게 올려 묶은 머리. 모델 같은 외모를 가진 매니저는 친절함까지 갖춰 완벽하다. 그래서인지 이 <맛키>에는 사실 여성 손님들이 훨씬 더 많다.
그 30대 젊은 매니저가 사장이라는 소문도 돌았던 적이 있었지만 풍문으로 밝혀졌었다. 그녀들이 아는 정보는 그가 사장 조카라는 것일 뿐.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마음은 정했어?”
매니저가 돌아가자 수민이 세희에게 물었다.
“아직... 고민이야.”
세희는 잠시 본인의 감정을 이입시켜 욱 했음이 민망했고, 즐겁게 생각을 나누던 친구들의 대화를 망친 스스로에게 더 짜증 났다. 사실 고민은 거의 끝났다. 마음은 정해졌지만 공식적으로 내뱉기가 두려울 뿐이었다.
“.......”
할 말은 몹시 많지만 수민은 입을 다물고 물을 벌컥였다. 본인보다 세희의 마음이 더 어수선할 것을 알기에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그때 세희가 분위기를 되돌리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맛있는 키스에 ㅅㅅ도 포함인 거야?”
“아니지이~ 이 대낮 공공장소에서 19금을 떠드는 아줌마로 늙지 말자 우리. 하하”
쓸데없는 웃음으로 분위기를 돌리는 혜연.
"대부분 여자들은 ㅅㅅ보다 심장을 찌릿하게 저리는 맛있는 키스를 더 좋아하지 않나?"
지아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면서 오늘의 화두 <맛있는 키스> 이야기는 다시 수민의 대화로 시작되었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한 명 하고만 적어도 70년을 키스해야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니? 그것도 서른 살에 결혼한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20살에 결혼해서 이혼을 안 하고 살았다면, 그들은 80년을 한 사람하고만 키스를 해야 한다는 거지.”
세희의 눈동자가 잠시 왔다 갔다 주저했다. 길긴 길구나.
“좀 긴 시간인 거 같긴 하다만, 사람들이 100세 수명을 채우는 것도 아니고. 그래, 백년가약. 결혼할 때 서약했던 게 그런 내용 아니니?”
“내가 돌싱이라 다행이구나. 적어도 설렘 장착한 달콤한 키스를 할 기회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난 키스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 평생 한 명 하고만 키스하고 산다는 건 인생이 너무 가엾지 않니.섹스하란 것도 아니고."
수민이 이야기하자 그들을 지켜보던 혜연이 한마디 했다.
“췟, 유부녀들을 앞에 두고 두 싱글녀가 왜 불이 붙었니. 근데 나도 수민이에게 동의해. 뭐 ㅅㅅ를 하는 것도 아니고 뽀뽀 정도는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니니. 결혼 10년 차 넘어가니 가끔 일부일처제가 가혹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어. 결혼생활 중 딱 한번 이성교제 해도 된다고 법적으로 정해줬으면 좋겠어. 그럼 불륜, 이혼확률이 줄어들려나.”
" 결혼 10년을 넘기지 못한 돌싱이라 가혹까진 이해를 못 하겠지만, 사회 질서와 안녕, 평화, 평등을 위해서는 일부일처제가 맞는 거 같사옵니다. 그런데 언니 요즘 형부랑 괜찮아? 우리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 형부랑 괜찮아. 아무 문제가 없어서 문제지. 그래 내 마음이 문제다. 가을이 오려나......"
“ 언니 혹시 벌써 딴 사람이랑 키스한 거 아니지?”
“ 얘는, 갑자기 웬 진실게임? 너네가 알다시피 나 자유로운 영혼. 너네한테는 거짓말 안 할게. 만약 앞으로 하게 되면 꼭 공개하마. 얼마나 맛있고 달달했는지.”
장난끼 가득 서린 말투로 혜연은 입술을 내밀어 키스하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쳤다.
“하하하 못살아 정말! 그래서 수민이는 창민씨랑 잘 지내? 우리 민민커플?”
지아가 혜연의 더 나아갈 폭주를 말리듯 주제를 돌렸다.
“우리 민민은 너어~무 잘 지내지잉~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알지? 찰떡궁합인 거 같아.”
가끔 AI로 착각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냉철하던 여자 수민이가 최근 들어 애교가 생겼다. 나머지 세명은 아직 적응 중이지만, 세상은 오래 살고 볼일이란 게 이런 건가 보다.
“그럼 다시 재혼 계획 있는 거야?”
“ 없어. 그냥 걱정 없이 사랑만 할래. 둘이 상황이 비슷하네”
여섯개의 눈이 일제히 수민에게 향했다.
“ 알고 보니 창민씨도 나와 비슷하더라고. 20대 초반에 첫사랑이랑 결혼했다가 일 년 반 만에 헤어졌데. 나처럼 세상모르고 어릴 때 불같이 좋아서 결혼했다가 박 터지게 싸우고 헤어진 거 같아. 그런 면에선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어 좋은 거 같아.”
“그럼 다른 면이 있어?”
“음... 다른 면은 둘 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살았다는 거.....”
"그게 무슨 문제야?"
혼자 살아본 적 없는 지아가 궁금해했다.
" 혼밥에 혼술, 혼자만의 패턴으로 살아온 지가 벌써 10여 년이 넘었어. 거기다가 난 서른 중반인데, 이미 혼자만의 삶이 정립된 거지. 하다못해 한 침대에 다른 사람이랑 잠 자기도 힘들어. 그 사람은 사랑하지만, 곁에 누가 있으니 숙면도 못하겠고, 혼자 아무 말 않고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고 싶은데 그 사람이 있으면 신경 쓰여.
그런데 가끔 그이도 나와 비슷한 거 같아.
그가 익숙한 행동을 할 때 내가 곁에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있어. 내 걸 챙겨주지 않고 본인 것만 챙겨서 가버릴 때도 있고. 그럴 때 이해는 하지만 마음이 서운해. 그런데 분명 나도 그에게 그런 행동을 하고 있을 거라 여겨져.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익숙해져 버린 혼자만의 생활 때문이랄까."
수민은 대답을 하면서도 씁쓸했다. 수민은 익숙한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면서, 그는 수민을 잘 배려하고 챙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게 아닌가. 가끔은 그 배려도 필요치 않다. 자신부터 이미 이기적이고 본인위주의 삶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모순이었다. 이런 자신이 어떻게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상대방도 수민과 같은 생각을 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 혹은 헤어지던가.
“Hi, I'm SooMin Chae. Nice to meet you and welcome to Korea.”
“Hey, David Min. Good to see you. we finally meet each other! You can call me Chang Min, it’s my Korean name.”
비즈니스 만남이지만 수민과 창민은 짧고 편하게 인사 나누며 악수했다. 오프라인에서 눈을 마주치며 처음 만나는 사이라 예의상 통성명했지만, 사실 둘은 온라인상으로 지난 6주간 함께 일을 해 오던 참이었다.
수민은 글로벌 IT 기업 H사의 아시안 마케팅 총 매니저다.
뉴욕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보스턴 컬리지, 법학대학원 Law school에서 법을 공부했다. 로스쿨 입학 후 그녀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캠퍼스 커플로 두 사람은 연애를 하다 졸업 직전에 결혼했다. 수민은 국제변호사가 꿈이었으나, 결혼과 함께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실리콘 밸리가 있는 산호세, 캘리포니아로 이사했기 때문이었다.
실리콘 밸리다 보니 수민도 IT 기업 H사에 기획전략 및 법률 분석가로 취직했다. 두 사람은 달콤한 신혼을 즐길 겨를도 없이 각자 바빴다. 수민은 하루 24시간을 30시간으로 산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일에 매달렸다. 주어진 일도 많았거니와 일을 사랑했던 탓에 그녀는 점점 워커홀릭이 되어갔고, 서로에게 점점 소홀해지던 두 사람 사이는 멀어졌다.
결국 수민은 2년여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항상 그녀의 곁에서 응원해 줄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먼저 이혼하자고 청하던 남편에게 반문할 수 없었다. 수민이 돌아봐도 본인 위주로 살며 그에게 소홀했던 점, 이기적이었던 본인 모습만 떠올랐을 뿐이었다.
이혼 후 혼자 우울증과 향수병에 젖어 방황하던 중 결국 수민은 가족이 있는 한국을 떠올렸다. 본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국지사로 자원했다. 살기 위해. 그렇게 한국에 귀국한 지가 벌써 10여 년 전.
“ 창민이란 한국이름이 있는지 몰랐어요. 이왕 한국에 왔으니 한국이름으로 불러드릴게요. 비행은 괜찮았어요?”
수민은 예의를 차려 창민에게 물었다.
“컨설팅일로 해외 출장이 잦아서 장기간 비행도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대신 한국 오는 길은 항상 들뜨죠.”
“ 한국에 좋은 기억이 있나 봐요? ”
“ 그럼요.”
창민은 잠시 옛 추억을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사무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 추억이야기는 다음에 말씀드리고, 지금은 우리 파일부터 볼까요?”
사무적이지만 물론 미국인 특유의 친근한 말투로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날 이후 창민, 함께 온 그의 부하직원 필립스, 수민과 그녀의 오른팔이자 후배동료인 동진은 몇 날을 회의실에서 혹은 오피스 대용 호텔방에서 밤새 일했다. 침실 2개, 큰 식탁이 있는 거실 딸린 스위트룸을 창민과 필립스의 숙소이자 팀 오피스로 사용했다.
가끔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감정적이지 않고 결국 더 나은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데이비드 민, 한국이름 민창민. 그는 뉴욕에서 자라 온 한국계 미국인이다. 유펜 와튼 스쿨을 졸업한 수재로 뉴욕에 위치한 유명 전략 컨설팅 회사 B 컴퍼니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수민이 근무하는 H사는 전 세계 50개국으로 퍼져가며 급성장기를 맞고 있었고, 이에 크고 작은 일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각 국 현지에 있는 작은 계열 회사들 인수 합병과 전체 시스템 구축에 관련된 컨설팅을 B사에 의뢰했다. 그렇게 H사와 B사는 큰 프로젝트를 계약했는데, 당시 국제 산업법에도 빠삭한 창민과 그의 부서에 업무가 주어졌고, 그렇게 창민은 수민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창민이 한국에 입국한 날부터 일주일 동안 꼬박 일만 했던 네 사람은 처음으로 호텔 밖에서 저녁을 먹었다. 일행은 두툼한 삼겹살에 소주 한두 잔으로 입가심하고, 오피스 대용으로 사용 중인 호텔로 걸어 돌아가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서 바람이 솔솔 불고 그 바람에 벚꽃이 나풀나풀 날려 떨어졌다. 필립스와 동진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수민과 창민이 나란히 걷게 되었다. 지난 며칠 호텔 오피스와 회사 사무실에 거의 갇혀 지내다 보니 수민은 봄 밤공기가 좋았다. 그래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
“수민씨는 참 좋은 분 같아요.”
“네?”
“ 감정적이지 않고, 똑 부러지게 본인 할 일 하고, 필요할 때 의견도 밀어붙일 줄 알고. 우리 의견차 났던 그날 저 놀랐잖아요. 그렇게 카리스마 있는 줄 몰랐네요.”
“지금 저 까는 거예요?”
“ 아 그런 뜻 아닌데. 하하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요. 함께 일하기 좋았다는 뜻이에요.”
이번주 수민과 함께 하는 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그는 싱가포르 H지사로 떠나야 했다. 일만 하는 창민에게 수민, 본인 모습이 보여 연민이 생겼다.
“곧 여기 일은 끝날 텐데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나 먹고 싶은 음식 있으면 미리 이야기하세요. 제가 거하게 살게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는데.”
“음,, 진짜죠? 싱가포르 가기 전에 하루 정도 개인 시간 가질 수 있어요.”
“ 뭐 하고 싶은거 있으세요?”
“네.”
" 언제 어디서 뭘 드시고 싶은지 알려주시면 제가 예약해 둘게요."
모든 일에 주도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임하는 수민의 기질이 저도 모르게 나왔다.
" 감사하지만, 그냥 이번주 토요일, 홍대앞 근처에서 뵙죠. 안 그래도 혼자 가기 적적했는데 동행해 주시는 것만도 감사할 뿐입니다."
그 주말, 수민과 창민은 홍대앞을 거닐고 있었다. 수민도 오랜만에 그곳에 들렀다. 여전히 사람도 많고 복잡했다.
“ 대학 시절 연세어학당을 다녔던 적이 있어요. 다니던 대학을 한 학기 휴학하고 한국 와서 어학당 다니며 여행 다니고, 당시 파트타임으로 한국 기업에서 인턴도 했었지요. 어학당 기숙사 생활 참 재미있었어요.”
" 아 그래서 한국어를 잘 알아 들으시나 봐요."
“ 알긴요, 그냥 한국 친구들과 놀았죠. 수민씨가 영어를 잘하니 이렇게 우리 대화도 잘 통하고. 미국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은 한국식 예의를 강요하셨어요. 항상 모범생으로 생활해야만 했지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 오히려 더 자유롭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도 마시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비디오 게임도 하고 낭만적이었어요. 친구들과 홍대클럽을 가서 여자 꼬시기도 했어요. 하하하. 그때 매일이 즐거웠지요.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한국 온 김에 추억 삼아 이곳에 오고 싶었어요. 함께 와줘서 고마워요.”
항상 와이셔츠와 슈트 바지에 정장 구두, 단정하게 머리를 매만진 비즈니스 복장의 창민만 보다가 오늘 흘러내린 앞머리에 스웨터, 살짝 여유 있게 흘러내리는 청바지, 그리고 파란색 가젤 스니커즈를 신은 그의 모습을 보니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좀 더 사람 느낌이 들어 친근감이 생긴다 해야 하나.
어깨 나란히 걷다 보니 지나가는 몇몇 여대생들이 흘끗흘끗 그를 쳐다봤다. 키가 커서 그런지 창민의 스타일이 나쁘지 않다고 수민은 생각했다.
두 사람은 대학생이 된 마냥 호프집에 들러 생맥주를 들이켰다. 뉴욕에서 자란 창민, 마침 뉴욕에서 유학했던 수민인지라 공통분모가 있어 둘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호프집을 나와 노래방을 가고, 출출함에 떡볶이와 어묵을 먹기 위해 길거리에 서서 야식을 먹었다.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는, 소위 요즘 잘 나가는 홍대클럽 앞을 지나며 창민이 기웃거렸지만 수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나이는 들어갈 수 없어.’
라는 눈빛을 창민에게 보내며 말이다. 창민은 아쉬운 듯 클럽을 지나쳐 그녀를 따라갔다. 그 모습이 귀여워 수민은 깔깔 웃었다. 술기운인지 홍대 앞 분위기 탓인지 수민은 계속 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날 좋은 홍대를 즐기기 위해 좀 더 걸었다.
“ 수민씨 우리 어디 가서 한 잔 더해요. 오늘 날이 너무 좋아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요.”
사실 수민도 마찬가지였다. 날이 좋아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 아까운 날씨였다. 가슴속에 설렘을 불어넣는 봄기운에 취해 한 잔 술 더 기울이고, 안주로 봄내음을 더 맡고 싶었다.
두 사람은 걷다가 한쪽 벽이 통유리 문으로 만들어져 훤히 열려있는 술집에 들어갔다. 바에 앉아 샷 몇 잔을 들이키고 하이볼을 시켜 마셨다. 시원한 봄바람이 열린 통창문 쪽에서 밤공기를 데리고 그들이 앉아있는 안쪽 바까지 들어왔다. 시원했다.
직장 생활을 비롯해 많은 대화를 하며 그날 밤 두 사람은 점점 친해졌다. 수민은 많이 마신 듯했지만 봄기운이 좋아서인지 전혀 취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지난 이주동안 열심히 일을 했고, 프로젝트를 마친 후라 쫑파티 기분도 났다.
"필립스씨와 동진이도 부를걸 그랬나 봐요."
술기운이 올라 배시시 웃던 수민은 열려있는 통유리문쪽을 바라보았다. 밖에 날리는 벚꽃이 예뻐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창민의 눈에 그녀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보였다. 그래서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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