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verly지아 Oct 02. 2024

#5 진지아_1

연재소설 <그녀들의 맛있는 키스>

5. 진지아


오래간만에 만난 <맛키> 모임에 지아는 별로 말이 없었다. 친구들이 눈치채지 않을 만큼 적당히 웃고, 대답하고 작은 리액션은 했지만, 몸은 이곳에 있는데 정신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든 어른이든 사람 세명이상 모이면 이야기가 항상 풍성하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각자 살아가는 삶에 생기는 드라마는 언제나 TV 드라마보다 더 다채롭다.


대화하는 모습도 다양하다.

누가 봐도 감정이 다 읽히는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왁자지껄 대화하는 십대들.

연세 많으신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지아가 우연히 얻어 타고 간 교회 노인 버스에서 일요일 아침, 할머니 네 명이 나눴던 이야기는 김박사라는 할아버지와의 데이트 이야기였다. 그 데이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질투 어린 삼각관계로 넘어갔다. 지아는 상상도 못했던 주제로 안듣는 척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른 할머니들도 그 삼각관계에 대해 한 마디씩 보탰다.  


결국 '60대 후반 70대 초 할머니들이 교회 가는 버스 안'이라는 나이와 장소등의 요소를 걷어내고 스토리만 듣는다면, 앞서 떡볶이집에서 떠들던 십대 소녀들의 사랑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어떤 모임이든 그 다채로움 속에 자세히 귀 기울여 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다. 사랑, 친구, 직장, 학교, 미디어 그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관계가 보인다.  그 관계가 좋으면 평화로운 해피엔딩이고, 그 반대라면 당연히 수많은 갈등을 자아내며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지겹다.


지아는 지루해져 가고 있었다.

약 40, 정확히는 36년 동안 들어온 그 관계 이야기가 점점 지루해졌다.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 반응하는 그녀의 농담과 웃음이 거짓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더 과장되게 웃고 친구들의 말에 맞장구치려고 노력했다. 즐겁던 이야기가 뻔하게 들리고 그것에 지루해하는 자신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한다면 이 뻔한 주부의 삶에 지루해하고, 지쳐가는 본인의 마음을 친구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항상 즐거웠다. 사회적 위신과 체면, 연륜있는 여성 네 명이지만 그녀들의 대화는 언제나 유쾌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문득문득 지아는 이 시간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과 상관없는 직장 생활 이야기, 유부녀인 본인은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사랑 연애 이야기, 더 나아가 숨소리도 듣기 싫은데 그런 남편과의 달콤한 키스를 상상하는 건 시간 낭비 같았다.


그렇다고 학교 엄마들과 나누는 아이들 관련 소문이나 학교 문제, 티브이 드라마 이야기 등 관계 겉핥기 수준의 대화를 위해 자신의 귀한 시간을 내놓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아이들 사이가 소원해지면 만나지 않을 사이. 원수가 안되면 다행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 혼자 있으면 더 우울해졌다.


분명 눈앞에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리고 원래 친구들의 이야기에 깔깔대며 듣던 지아였는데 기분이 왜 이러지. 이런 마음이 드는 자신이 의아했다.

본인이 할 수 없음에 대해 친구들에게 질투나 부러움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들이 땅을 산다면 배가 아프기는커녕 부동산 투자 잘했다며, 친정 자매처럼 무지개 떡을 지어가 그 동네에 나눠 줄 지아였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재미있어야 할 자리가 재미없고,  최근에 드는 허무함과 지루함 같은 공허한 마음이 지아는 신경 쓰였다.

 

그때 갑자기 마음이 초조해졌다.


띠디디딕 띠디디딕


알람이 울렸다. 벌써 한시였다. 이젠 알람시계보다 몸이 먼저 알아서 아이들 픽업 타임 몇 분 전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지아의 신체 알람이 울렸나 보다

토요일이었지만 지아는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했다.


”어머 난 가야겠어. 오늘은 한시델라야. 벌써 알람 울리네. 무슨 시간이 이리 잘 가니 아쉽게. “

"그러게. 주중엔 세시에 아이들 데리러 가느라 세시델라인데, 우리 신데렐라 주부님 오늘도 고생하세요."

” 우리 지아 안부 못 들어서 어떡해! 조만간 다시 모이자. “

” 그래. 나 먼저 갈게 미안. 하던 이야기 마저 하고 가. “

” 아니야 우리도 곧 계산하고 갈 거야. “

”나중에 자동이체 할 테니 가격 문자로 알려줘.“


지아는 알람 울리는 휴대폰을 끄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된 차로 다급히 걸어갔다.  

토요일 오전시간 동안 지아의 남편 태식이 자녀 셋을 보고 있었고, 이제 지아가 그 바통터치 할 시간이었다.  

첫째 아이는 지금쯤  태권도 학원 버스가 도착해 있을 테고, 둘째와 셋째 아이는 병원 예약이 있었다. 막내가 어젯밤부터 목이 아프다고 하니 감기 걸린 듯했다.  


친구들과 수다를 한 날은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그동안 쌓인 육아 스트레스가 다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맛키> 모임의 멤버들은 항상 내 편이 되어주었고, 만난 후 친정언니들에게 사랑받고 오는 기분이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모임에서 육아 이야기는 지아밖에 하지 않았다. 혜연언니도 아들이 있었지만, 그녀의 커리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들 이야기 할 시간이 없었다.

육아를 해 본 적 없는 <맛키> 모임 친구들이지만 지아는 가끔 육아 고민을 나눴다. 차라리 친구들에게 불만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더 편했다. 가르치려 드는 교육자스러운 혹은 기싸움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니고, <맛키> 친구들과는 인간 대 인간으로 고민을 나누고 조언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육아맘이나 학부모 지인들과 사람 관련 대화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대화를 듣는 이와 이야기 속 인물과 무슨 관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친한 사이일 수 있지만, 대부분 모호한 관계일 때가 많았다.  

대화중 한 아이에 대한 칭찬이든 욕이든 입 밖을 나선 말 한마디는 한 바퀴 돌아 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만약 그런 대화 주제가 나온다면 한 단어 한 단어 신중하게 골라 입을 떼야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오해를 사기도 하고, 화자가 말 한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해석된 채 이상한 소문이 되어 퍼질 수 있었다. 그 소문으로 엄마들간에 갈등이 생겼던 경우를 지아는 이미 몇 번 지켜본 적 있었다. 한번은 엄마들 모닝커피 모임 자리에서 지아는 남의 험담을 듣기만 하고 그에 대해 대꾸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엄마들 입방아 도마에 오른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학부모 지인들이 나누는 비밀이야기를 들어도 속이 편치 않았다.  육아맘들이나 학부모들 자리에서는 어른이든 아이든 사람 관련 이야기를 최대한 피하는 지아였다.  비밀이야기라면 듣고 자리를 떠나면서 잊어버리려 애썼다. 그런 '말 만드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은 지아에게 피곤할 수 밖에 없기에 되도록 학부모 지인 모임은 피했다.  

 

하지만 <맛키> 멤버들은 적어도 아이엄마 지아가 아닌 사람 ‘진지아’를 알고 있었으므로, 이 친구들은 아이 문제를 포함해 어떤 문제건 맞춤형 특제 처방을 해 주었다. 특히 여자 아이들 간의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이모들이 더 극성이었다. 누가 따 시킨다고? 누가 때린다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당장이라도 학교로 달려가 모든 골치를 해결해 줄 것만 같은 지아의 듬직한 아군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잘 나가는 커리어나 연애 이야기처럼 지아와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듣다 나오면 마음이 갑갑했다. 지금 커피숍을 허둥지둥 나와 집으로 향하는 지아의 발걸음도 무거웠다. 녹은 아스팔트 위를 걷는 듯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진득거리며 마치 땅이 지아를 잡아매는 듯했다.

혼자만이 어둠 속으로 들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어둠은 어여쁜 아이들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삶은 무척 행복했다. 지나간 12년의 시간 속에 담근 본인 희생에 대한 후회는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녀는 그동안의 고생과 눈물을 희생이라 여겨본 적도 없었다. 모든 노고가 지아의 선택이었고, 그 모든 것이 행복했었다. 그렇게 힘들게, 즐겁게 24시간 고통과 행복을 저울질하며 살아왔기에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었고, 막내도 초등학교를 입학해 어느덧 3학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지아의 마음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해 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 그림자는 가끔 지아의 발아래까지 스며들어 지아를 어두운 지하로 끌어내리려 했다.


지아도 한때 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타이틀은 초중학생 세 명을 둔 결혼 14년 차 풀타임 주부이자 경단녀다. 24시간 밤잠 못 자고 열심히 노동을 한 것 같은데 개인계좌에 들어와 있는 월급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그렇다. 할머니들은 그런 것을 당연시 여겼다. 그런데 현시대 여성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에서 직접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노동에 대한 응당 받아야 할 보상을 받아오던 커리어 우먼들이었기에 그런 빈곤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지아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따지고 계산해서가 아니다. 그냥 인간으로서 자아에 대한 상실감일 뿐.

지아는 아이를 키우며 화려한 커리어를 진행하고 있는 혜연언니를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같은 주부인데 지아 스스로 모자라 보였다. 물론 언니는 아이가 외동이라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위로해 보았다.


막내를 학교에 보낸 후 시간이 많아져서 허무한 마음도 드나 보다 싶어 지아는 인스타그램 요리채널을 보며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보고, 아이들을 위한 예쁜 옷도 쇼핑하고 집안 청소도 더욱 꼼꼼히 했다. 학교 봉사활동도 자원해 다른 어머니들과 좋은 일을 도왔다. 이 모든 노력이 뜻깊을 줄 알았으나 지아의 솔직한 마음은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증상의 시작은 언제인지 모르나 지아 스스로 이상함을 감지한 건 팬더믹 이후부터였다.

2년여 시간을 집중적으로 온전히 집안에서 가사와 육아에 찌들었던 시간이었다. 그 2년의 시간은 집 밖에서 코비드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뉴스와 무서운 전염병으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하는 강박감, 육아와 온라인 학교 교육에 더해 하루종일 가사 노동을 해야 했던 시간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당시는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해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가사 육아 전담 12년 차 주부.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휴식이 필요했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세상은 언컨텍트 시대니 4차 혁명이니, AI 출현이니 마구 변해가고 있었고,  팬더믹 이후 지아네 또한 태식의 사업 위기로 큰 폭풍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친정과 시댁 도움으로 어째 저째 해결하고 다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세상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선비 같은 품성을 가지고 있는 태식만 믿고 살기에는 세상이 급박하게 변하고 있었다. 더불어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었다. 친정엄마의 건강도 악화되어 지아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점이 지아에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여기저기 불안하고 좋지 않은 소식들이 주변 가정마다 터졌다. 갑자기 급사한 40대 초반 남편 이야기, 코인으로 대박 났지만 건강을 잃은 가장 이야기 등 동네 어수선한 이야기로 지아는 불안해졌다.


주치의는 그런 지아에게 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Copyright   2024. Beverly Story (BS, Agnes) All rights reserv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