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그녀들의 맛있는 키스>
어느새 쌀쌀해진 10월 아침. 차가운 공기에 뉴욕 출장 중 구입했던 신상 외투를 여미며 혜연은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굿모닝!"
어째 사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혜연씨, 이거 좀 봐야 할 거 같은데? “
큰 회의 테이블에 혼자 심각하게 모니터를 들여다 보던 이PD가 출근한 혜연을 보자 다급히 불렀다. 가서 보니 화면에는 썰리가 등장하고 있었다.
”썰리네요? 왜요? “
말없이 이PD는 화면을 재생시켰다. 그 화면에는 썰리가 한참 제품 리뷰를 하는 거처럼 보였다.
그때 화면 음성이 헤연의 귀에 들어왔다.
<얼마 전 모 유명 유튜버가 리뷰했던 뷰티 제품입니다. 그런데 당시 그녀는 모 제품 관련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거나 실제 사용치 않고 광고홍보식으로 무책임하게 팬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결국 그 브랜드 뷰티 제품에 들은 화학 물질은 특정 피부에 손상을 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면 속 썰리는 방실 웃는 여느 때와 달리 진실을 전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처럼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썰리가 속된 말로 까고 있는 그 제품은 얼마 전 혜연이 리뷰한 제품이었다. 브랜드들은 새 제품 출시와 동시에 혜연을 통해 홍보하고 싶었으므로 그 제품을 리뷰한 유명인은 바로 혜연밖에 없었다.
어질 했다. 눈 앞 천정이 흔들리며 잠시 휘청거렸다.
불안감이 혜연의 가슴속에 들이닥쳤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썰리가 왜? 뭔가 착오가 있음이 틀림없다.
혜연이 문자나 통화를 하려 하지만 썰리는 연결되지 않았다. 다음날 또 다른 제품을 내리까기 시작하면서 썰리는 전면전을 이어갔다. 방송을 보면 주 타깃은 제품이 아닌 그 제품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함부로 광고하는 유튜버, 즉 혜연을 까고 있었다.
”교묘하게 제품 중 최고급 브랜드는 빼고 중소기업 제품만 물고 늘어지네. 오늘은 아예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한 명 초대해서 쇼를 한다야. 중소기업 브랜드만 저러는거 보면 고급 브랜드에 밉보이고 싶지는 않나봐. 변호사 연락해야겠지?“
이PD가 고깝게 이야기했다.
”이PD, 우리 조금만 더 지켜봐요. “
”우리도 이미지가 있고, 광고주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 어제오늘 쟤 왜 저러니. 둘이 무슨 일 있었어? 아님 싸웠니?“
둘 사이에 무슨 일은커녕 지난 주까지도 썰리는 반갑게 통화했었다. 후속 편 녹화는 잘 되어 가고 있냐, 패션쇼장 브이로그 잘 봤다, 언니 이쁘더라는 둥 모니터링까지 해주면서 안부전화를 했었다. 올해 썰리는 뉴욕, 런던 두 곳 모두 일반인 앰버서더로 발탁되지 못했기에 패션위크 기간 동안 한국에 있었다. 혜연은 귀국 직후에는 정신없이 바빴기에, 출장 중 마련한 선물도 줄 겸 썰리와 곧 저녁 약속 잡자고 하려던 참이었다.
혜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알 수 없었다. 평소 혜연과 친한 썰리가 저런 돌출 행동을 하면 업계 파장이 클 거라는것을 썰리측이 모를리가 없었다.
다음날까지 연이어 비슷한 방송을 하자, 이PD도 혜연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은 혜연 채널뿐만 아니라 브랜드사까지 헐뜯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딱 봐도 타깃은 혜연인데, 딱히 큰 하자가 없는 제품을 물고 뜯어 그 회사에 손실을 입힌다면 그 또한 혜연의 책임이었다. 대부분 중소기업 뷰티 제품이었다. 본인이 리뷰했던 브랜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혜연도 반박 방송을 시작했다. 인체 무해 관련 자료는 충분히 많았다.
” 지금 썰리는 제품의 먼지 같은 부분을 찾아내 눈덩이처럼 부풀려 저런 방송을 만들고 있어. 왜지? 본인 이미지도 실추될 확률이 있는 게임인데. “
”....... “
"일단 최변호사에게 연락할게. 일이 더 커지기전에 방어하자. 이해하지?"
혜연도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그들은 공인이기에 보호해야 할 것은 그리해야 했다. 하지만 혜연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혜연측에서 반박 방송이 나가자 이제 썰리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방송을 올렸다.
” 이번 논란의 유튜버 H, 그녀의 숨겨진 과거와 알려지지 않은 남편의 존재.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00시 라이브에서 만나요. “
조회수가 터졌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발언을. 혜연이 불끈했다. 썰리가 혜연의 개인사를 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숨겨진 과거라니? 숨겨진 과거 없다. 그녀가 이미 다 안다. 그리고 남편의 존재? 썰리는 이런 자극적인 말투와 썸네일로 개인적인 비밀을 폭로한다며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
곧 악성댓글과 혜연 남편과 가족 관련 유언비어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악플러들에게 신선한 먹잇감을 던졌던 거다. 혜연은 썰리에게 계속 연락을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문자도 읽지 않았다. 휴대폰을 쥐고 있는 혜연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목 뒤가 뻐근해졌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왜 이러는지 따지고 부르짖고 싶었다.
악플은 집요하고 교묘하게 혜연의 심장을 날카롭게 도려내고 있었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와인을 한잔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혜연은 입술을 질끈 물고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이미 감정적으로 폭발직전까지 간 그녀는 썰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화면 위로 이PD의 번호가 뜨며 계속 울렸다. 혜연은 이PD의 연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브 방송을 했다. 이제 썰리와 라이브 공방전이 일었났다. 준비된 썰리측과 준비되지 않은 채 감정적으로 방송을 한 개인진행자중 시청자는 누구의 진실을 들어줄 지 혜연도 몰랐다. 그 때 누군가가 혜연의 휴대폰을 뺏어 꺼버렸다.
놀란 혜연은 그 쪽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남편 진철이었다. 혜연이 분노의 질주를 하자 다급한 이PD가 진철에게 연락했나보다.
”이게 그 사람이 원하는 거야. 그만해. “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혜연과 달리 진철은 차분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저 쪽은 지금 같이 흙탕물에 빠져 죽자거나 혹은 당신을 이용해 팔로우 늘릴 계략이거나. 알고 있잖아. “
” 지금 나 걱정하는 거야? “
진철은 아무말이 없었다. 혜연은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두 인플루언서 간의 논쟁은 시작되었고, 그 라이브 영상들은 두 채널에서 내렸지만 다른 패션 뷰티 인플루언서들에게 화자가 되면서 둘의 소문은 더 크게 불거졌다. 인플루언서들 뿐만 아니라 많은 유튜버들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두 사람 관계를 물고 뜯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른채 헤연은 갑자기 마녀 사냥의 표적이 되었다.
며칠이 지났나. 혜연은 어두운 방안에 혼자 웅크리고 있었다.
죽어라, 나이가 많은 년이 참아야지, 어린애랑 싸우는 인성이 의심스럽다, 가짜 화장품 판 사기꾼, 남편을 잡아먹었다며, 이혼했다며.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저주에 가까운 인신공격성 수많은 댓글을 보고 혜연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암흑 속으로 스며들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감당되지 않는 무겁고 짙은 어둠이 혜연을 점령해가는 듯 몸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혔다. 혜연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죽으라고 부르짖는 거 같았다.
사람을 좋아했지만 좋아할 기회없이 '혼자' '그냥' 자라왔다. 사람들이 그냥 있는 혜연을 좋아해줘서 그녀는 행복했고 감사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녀를 암매장 하고 있었다.
진철이 인터넷 관련 기기들을 모두 치워버려 바깥세상 아니 온라인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세희, 수민, 지아가 걱정해 혜연을 찾아왔지만 차마 만날 수도 없었다. 그 누구도 만나기 힘들었다. 혜연은 줄곧 침실 암막을 치고 살았다. 그 암막은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빛 뿐만이 아니라 세상과 혜연을 가로막아 주었다.
숨이 가빠왔다. 누군가 헤연의 두 가슴을 주먹으로 쳐서 폐가 터진 양 숨을 쉬기 힘둘었다.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한 가지 질문만 들뿐이었다. 썰리는 왜 그랬을까......
며칠이 더 지나자 그런 질문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적막 안에 혜연의 몸과 마음이 허공에 떠 있었다. 깊고 고요한 우주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숨도 쉬어졌다.
귀속에 울리던 엄청난 댓글 치는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았다.
이게 네가 원하는 거였니 썰리야......
그 시간 바깥세상은 시끄러웠다. 결국 고급 브랜드들은 두 사람과의 협업을 꺼리게 되었다. 모든 광고와 협찬을 중지했다. 이PD는 잠시 혜연관련 모든 채널을 닫고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몇 날이 지나자 처음 혜연을 몰아세우던 댓글부대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살벌하던 팔로워들 간의 싸움도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불 쑤시게로 수시 듯 화제를 꺼트리지 않고 있던 썰리측도 고급 브랜드들의 반응에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이 모든 일이 열흘 안에 일어났다.
"혜연아!"
진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허하고 어두운 우주 속 공간에 마냥 떠다니던 혜연이 눈을 떴다.
그녀의 왼팔에는 링거가 꼽혀있었다. 조금 전 들었던거 같은 목소리, 진철은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언니, 언니 괜찮아?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
” 어.. 지아야. “
혜연이 놀라 주변을 돌아보니 병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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