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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Aug 02. 2024

불운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나 컨셉외의 모든 인물과 나오는 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

















오늘부터 카페에서는 캐롤을 틀기 시작했다. 주인언니는 약간 부끄러워 하는 듯한 표정으로 머라이어 캐리의 캐롤을 틀면서 나에게 11월 1일부터는 가게에 꼭 캐롤을 튼다고 했다.  딱히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나 로망 같은 것이 있어보이는 건 아니어서 왜냐고 물었더니 지금 뭘 해야하는지 누가 명확하게 정해주는 것 같아서 좋다고 대답했다.

카페를 운영한다는 건 단순히 되게 맛있는 원두를 사서 되게 맛있게 내려주는 게 전부가 아니라, 일단은 되게 멋진 공간을 꾸며야 하고 되게 그럴싸한 테이블과 의자를 잘 배치한 뒤, 되게 사진이 잘나오는 다기와 접시까지 준비해야 하는데, 여기에 또 대체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해 주는 되게 괜찮은 배경 음악까지 틀어야 하는 되게 복합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처리해야할 많은 일들 중에 '어떤 음악을 틀어야하느냐'라는 숙제나마 줄어든 것 같아 좋다고.

그녀는 말도 마. 라며 질린 듯 손을 휘저으며 플레이리스트를 착착 추가해 나갔지만 그게 꼭 일이 줄어서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대부분의 캐롤에는 잘 들리든 잘 안들리든 쨍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나는 그 소리가 우리에게 '지금부터 크리스마스다!'라는 알람을 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캐롤을 틀든 캐롤을 들으면 우리 마음 속에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리코타 치즈를 만들 때 레몬즙을 넣어주면 우유들이 엉겨붙으며 몽글몽글한 치즈 덩어리들이 생겨나는 것 같은, 뭐 그런 것이랄까? 일년 내내 맹맹한 액체로 이리저리 주르륵 흘러다니던 마음들이 캐롤의 종소리를 들으면 우유 속 유지방들을 처럼 덩어리가 되어 떠오르는 것이다.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 같군.






동생과의 통화로 젖은 빨래처럼 무겁고 침침하던 내 마음도 높고 들뜬 듯 내지르는 머라이어 캐리의 음성에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너만 있으면 된다.

어쩜 그렇게 공주같은 소원을 빌었을까?

누군가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다고 하면 나는 무엇을 달라고 말할까? 저는 필요한 게 아주 많아요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요.


"언니! 언니! 저 타로 좀 봐주세요"


쨍알거리는 목소리로 가게로 뛰어들어오는 건 어제의 참새였다.


"언니, 아침에도 되죠? 저 어젯밤에 한 숨도 못잤어요. 여기 여는 시간만 기다렸어요."


내 맡은편 의자에 커다란 가방을 턱 내려놓으면 말했다. 어제는 대책 없이 해맑고 연약하다 생각했는데 오늘은 마치 '임전무퇴'라는 말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어딘가 모르게 결연해 보이기까지했다.


"네. 물론이죠. 어제 다 물어보지 못하셨나봐요?"


"언니. 내가 좀 그렇게 보이죠."


참새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 달라 보였다. 당황스러웠지만 당황스럽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여러가지 빛깔의 캐릭터가 들어있다는 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니까. 다만 어제 그녀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어젯밤 어떤 일로 갑작스럽게 새로운 캐릭터가 각성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보인다는 뜻이죠?"


나는 되 물었다. 여자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씩 웃더니 잠시만이라고 내게 양해를 구하더니 카운터로 가 자신의 커피를 사 들고 왔다.


"그냥 좀, 한심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내가 남친 얘기를 하면요."


다시 자리에 앉으며 그녀가 말했다.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부는 자그마한 입술이 참새의 부리처럼 귀여웠다.


"글쎄요. 저는 그냥 질문을 받고, 타로카드의 풀이를 해주는 사람일 뿐이죠. 그리고 질문을 하는 사람은 어떤 얘기든 할 수 있고요."


나는 눈을 깔았다. 거짓말이 티 날까봐의 이유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질문을 받고, 기계처럼, 혹은 자판기처럼 풀이를 내 주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최대한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기계도 아니고 자판기도 아니다. 당연히 무언가가 내 안에서 끊임없이 개입하려하고 파악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정말 기계나 자판기가 타로카드의 해석을 읽어줄 수 있을까?

내가 사용하는 올드 잉글리쉬 타로 카드는 총 78장인데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을 78개의 카드 안에서 찾아내고, 분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주려면 단순히 78개 카드의 풀이를 외우는 것으로는 안된다. 메이저라고 불리는 카드는 22장, 나머지는 마이너카드이다. 메이저 카드 만큼 강한 상징이나 캐릭터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타로리더는 질문자의 이야기를 이 카드의 어떤 이야기와 연결짓고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일부는 상상하고 일부는 참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타로리더의 경험과 성향, 고정관념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기계나 어플로 보는 타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기계는 입력된 값 만을 제공할 수 있다. 그 조합 역시 입력된 경우의 수들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인 타로리더는 수치화 할 수 없는 자신의 오감을 결과의 해석에 활용한다. 수치화 할 수도 없고, 평균을 내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섞일 수 있다는 단점은 오히려 타로카드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것이 타로카드를 특별하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정확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것을 찾는다면 굳이 타로카드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질문자를 앞에 둔 나는 최대한 그들이 나를 감정이 없고 객관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어떤 것으로 인지해 주기를 바라며 상담을 한다. 단지 지금 여기에서, 네가 던진 그 질문에 관심을 둘 뿐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거야.라는 뉘앙스를 풍기려 노력하면서.


"알아요. 다들 날 좀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거. 가끔은.....남자친구도 그렇고."


그녀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쉽게 상처 받고 쉽게 부서질 것 같지만 생각보다 강력한 참새일지도 모른다.


"어떤 게 궁금하세요?"


내가 물었다. 어제보다는 그녀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게 생겼지만 일단 나는, 타로리더로서 앉아 있는 동안은 너무 과한 개인적인 관심을 티 내고 싶지 않아 황급히 나 스스로를 단속하기 위함이었다.


"남자친구랑 헤어지면 그 사람이 저를 잡아줄까요?"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네.


"아, 아니아니, 그거 말고요. 그건 좀 그런 것 같아요. 남자친구가 저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점점 더 우스꽝스러워지고 있다. 나는 카드를 천천히 섞으며 말했다.


"그건 카드가 아니라 남자친구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하지 않을까요?"


참새는 입을 꾹 다물었다. 화가난 것인지 생각에 잠긴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질문이 정말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자주 나오는 질문의 종류 중 하나이다.


그가, 혹은 그녀가 나를 사랑 하나요?


나는 그 질문이 내가 배가 고픈걸까요?를 타인에게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너의 배고픔은 너의 위장과, 그 위장이 내는 꼬르륵 소리에 달려 있지 내 의견에 달려있지는 않다는 게 나의 답이었고.

물론 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연애사를 상담함에 있어 절대 빠질 수 없는 질문이고 타로카드를 포함하여 비슷한 분야로 분류되는 사주니, 별자리점이니, 신점이니 하는 것들에게도 단골질문이자 캐시카우 같은 것이라는 걸. 이 질문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연애 관련 상담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냐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잖아.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가 아니라 그가 나를 사랑하나요?라니.


"그렇죠. 그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죠. 하지만 그 사람이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참새는 알아 듣지 못하는 내가 무척 답답하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사람의 말은 솔직하지 않을 수 있죠. 동의해요. 하지만 말이 솔직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는 건 아니죠.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때, 혹은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한다고 할 때, 그게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지 않나요?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진심의 여부를 모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


"하지만 뭐, 그래요. 그게 참 알 수 없다고 쳐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 내가 사랑 받는 게 확실한지 조차 모를 정도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런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위안이 필요한 건가요?"


"......"


참새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올랐다. 빨갛게 핏대가 선 그녀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원망과 피로가 쌓여 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다. 어제 그녀의 질문은 답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남자친구의 반응을 보고싶어서였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밤 새, 내내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시렵고 불안했을까. 다시 한번 위로를 받기 위해 날이 밝자마자 뛰어왔는데 나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질문을 좀 바꿔서 던져 보시며 어떨까요?"


나는 어색하게 손가락으로 카드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의 마음이 아니라 '나는 그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그를 위해 나를 바꾸는 게 우리 사이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요?', 그것도 아니면 '나는 그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같은 내 마음에 대한 질문으로요."


"만약 아니라고 나오면요?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더 좋다, 더 행복하다고 나오면 어떡해요?"


"......"


나는 다시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결정은 질문자의 몫이죠. 카드는 질문자분의 행동에 물리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없어요. 단지 내 마음을 더 잘 들여다 보고 판단의 이정표로 삼는 거죠."


"그럼,"


참새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허리를 꼿꼿하게 곧추 세우며 말했다.


"그렇게 질문할래요. 그 사람이 내 진짜 사랑이 맞는지."


나는 그녀에게 카드를 쥐어 주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 세상에 사는 사람에겐 그것만이 전부이다.







그녀의 카드에는 온통 답답하고 불운한 기운이 가득했다.


"자, 이 카드 보여요?"


참새는 휴지로 눈가를 찍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해도 되지 않는 일들이 있어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히 있죠. 세상에는."


나는 카드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 여기 사과. 사과 나무에서 사과들이 잔뜩 떨어져 있죠? 이건 농부가 일부러 떨어뜨린 게 아니에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잖아요. 나무가 휘청일만큼."


그녀는 카드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집중하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열심히 가꾼 사과지만 태풍과 바람은 내 노력을 몰라요. 애써 지은 농사를 아무렇지 않게 망쳐버리면서도 죄책감이 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그냥 일어날 일이었으니까. 내가 어떻게 해도 태풍을 막을 순 없죠. 그냥 상황이 좋지 않을 뿐이에요. 그럴땐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오히려 그게 제일 쉽고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고요. 떨어진 사과를 줍고, 쓰러진 나무를 다시 세우는 건 태풍이 다 지나간 뒤에나 할 수 있어요. 마음은 아프지만 지나가도록 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


"내가 노력을 하든, 하지 않든 슬픈 상황은 생길 수 있어요. 내가 뭘 잘못해서도 아니고 내가 뭘 덜 해서도 아니에요. 내가 애를 써도 무언가 자꾸만 어긋나고 잘못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때는 그냥 아무런 노력도 하지 말고 가만히 그 상황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둬 보세요.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간 것들은 언젠가는 잊혀지기 마련이니까요."


결국 그녀는 길잃은 어린새처럼 훌쩍일 수 밖에 없었고 나는 매우 어색하고도 난처한 상태로 그녀가 내민 상담료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말 없이 일어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여자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었고 가장 덜 상처받게 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그녀에게 펼쳐 보여준 카드들을 다시 카드덱 뭉치 속으로 섞어 넣으며 마른 입술을 혀로 훑었다. 뭔가 뒷맛이 씁쓸했다. 나는 정말 객관적이고 적절하게 그녀에게 반응했을까? 원하는 것이라고는 그 사람의 사랑 뿐이라는 속편한 소리나 앵알거리는 보송보송한 그녀가 조금 얄미워서 심통맞게 군건 아닐까?

내 뒤에서 주인 언니가 '참 귀여운 여잔데, 나쁜 남자를 만났나 보네.'라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남자는 정말 나쁜 남자인 걸까?

사랑의 방향과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는 게 선함과 악함으로 규정할 수 있는 문제일까?

그 남자가 여자를 덜 사랑한다는 게,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게, 그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게 더 나쁜 건 아닐까?


적어도 그 남자는 누가 봐도 그 여자가 남자에게 갖는 관심 만큼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표시했다.


농부가 일년 내내 애써 가꾼 사과를 한 순간에 떨어뜨린 태풍의 악행.


나는 갑자기 그런 문구를 떠올렸다. 말이 안되는 얘기다. 태풍은 악행을 저지른 게 아니라 그냥 존재했을 뿐이다. 악행이 있었다면 '태풍이 널 싫어해서 네 사과를 떨어뜨린 건 아닐까?'라고 말한 나 하나 뿐일지도.


부디 다음 번엔 좋은 날씨와 좋은 계절을 만나 사랑을 할 수 있길.


그녀에게 이 마지막 말을 해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Seven of Batons(일곱개의 지팡이/막대기): 열심히 하지만 성과는 없다. 집착과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상황도 잘 풀리자 않고 잘해야 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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