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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Aug 02. 2024

내가 갇힌 성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나 컨셉외의 모든 인물과 나오는 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

















연말의 시간은 연중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르는 듯 느껴졌다. 11월이 되자 곧 12월이 되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벌써'라는 말로 인사를 시작했다. 나는 연말 인사를 나눌만한 지인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내 몸하나, 나만 보는 식구들 챙기는 것도 버거워서 철마다 생일마다 명절마다 부지런히 축하한다, 고맙다,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를 돌리는 사람들의 안부인사에 겨우 답장이나 보내면 다행이랄까.

몇년 째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도 자주 보지 못한 사이면 그것조차 점점 면목이 없고 부담스러워져서 더욱 더 먼저 인사를 건내지 못하고 점차 멀어지곤 했다. 윤주는 인간관계 조차 빈곤한 내 전화번호부에 아주 오랫동안 가까운 존재로 남아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어떨 땐 그게 그에게 부담스러울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땐 그 마저도 없으면 어떨까 하는 닥치지 않은 불행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제 정말 그 마저도 없어진 현실을 맞닥뜨리고 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불행하지 않았다. 아직 그와 간간이 연락을 주고 받고 있어서일까? 아직 우리가 서로에게 완벽히 헤어진 연인이라는 인식이 되지 않아서?

철근처럼 무거운 그림자 같았던 식구들을 떼어내고 나니 내가 그동안 그나마 내가 쥐고 있던 '행복의 조건'이라 믿었던 것들의 무게가 한 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이 전엔 이것마저 내게 없으면 나는 정말 나락이다 생각했던 것이 나를 누르고 있던 '불행의 조건'과 비교하니 깃털처럼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달까?

연말이 되니 타로 카드로 신년 운을 살펴보거나 묵혀 둔 한 해의 고민을 풀어보고자 하는 손님들이 꽤 몰려들었다. 내가 이렇게 편안히 돈을 벌어본적이 있을까 싶게 쉽게 벌었고 그것을 가지고 내 입 하나만 건사하면 되니 내일은 어쩌나, 다음 달은 어쩌나 하는 걱정에 늘 약간 구겨져 있던 내 표정도 조금 더 가벼워졌다. 아무 표정 없이 있어도 '너 많이 밝아졌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피식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너 많이 밝아졌어."


나를 이곳에 소개해 준 윤하선배는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지만 화려하게 생긴 얼굴에 냉소적인 미소가 여전했다.


"내가요?"


"응. 봄에 본 게 마지막이었나? 그땐 당장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 같이 보였거든."


솔직하고 꾸밈없는 말투에 눈치 보지 않는 태도로 독설가처럼 보이는 선배는 생긴 것이나 보이는 것에 비해 꽤 따뜻한 사람이었다. 윤주만큼이나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온 그녀가 왜 이렇게 냉소적인 태도가 기본값으로 장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는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금전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윤주와 내가 처음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던 무렵, 괜한 자격지심에 망설이던 내게 용기를 주고 윤주에게 이런 저런 연애 코칭을 해 주며 우리 사이의 오작교가 되어준 사람도 그녀였고, 아무리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도 모자랐던 등록금의 일부를 선뜻 빌려준 사람도 그녀였으며,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카페 주인 언니에게 이 카페 구석자리를 내어주도록 설득해준 사람도 윤하 선배였다.

우리는 각자 습작한 소설을 이메일로 주고 받고 모니터링을 해주며 친해졌는데 그렇게 자주 만나거나 만나서 수다를 떠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늘 혼자라 생각했던 내가 언제나 조금은 기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녀 역시 자연스레 나를 받아주었다.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나 언제나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왔던 그녀에게 나는 일종의 자신의 보살핌이 필요한 애완동물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둘 다 미치도록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열정만큼의 재능은 없었다는 공통점도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곱게 손질한 웨이브 머리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우아하게 커피를 홀짝이는 그녀의 네번째 손가락에 큼직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번쩍거렸다. 다른 이에게는 과해 보이기 쉬운 차림새였지만 본래 그런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그런지 그 모든 것들이 꼭 들어맞는 그림처럼 아름다워보였다. 며칠 밤새서 글을 쓰고 등교를 했다는 날도 그녀는 완벽히 세팅된 상태였다.


" 지금은 살만 한가 봐?"


나는 피식 웃었다. 무례한 말투에 따뜻한 걱정. 그녀가 아니었다면 날카롭게 반응했을 나였다.


"살만 해요. 선배는요?"


선배는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내가 뭐 특별할 게 있겠니? 매일 똑같지."


나는 그녀 옆에 놓인 반짝이는 애나멜 가방을 보았다.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만큼이나 빛나는 그녀의 가방은 새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발끝에서 얌전히 반짝이는 애나멜 구두 역시 오늘 처음 땅을 밟은 신발처럼 매끈했다. 블링 블링. 그래, 그녀는 블링 블링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 존재 자체가 블링블링 했다. 그녀가 가지거나 가까이 하는 것들 중 칙칙한 건 나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아주, 팔자가 좋아? 남편은 여전히 돈 많이 벌고? 너 하고 다니는 거 보니까 그런 것 같긴 한데."


주인 언니가 다가와 곁에 앉으며 말했다. 항상 누구든 살짝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윤하 선배에게 그렇게 대놓고 솔직하게 구는 사람은 거의 본적 없었지만 내가 볼 때 윤하 선배는 오히려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친한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돈은 나도 많아. 돈도 많고, 운도 많고. 나한테 없는 건 글 쓰는 재능 뿐이지."


선배도 지지 않고 대답했다. 마지막 말은 내게 하는 자조적인 농담인지 나를 보며 킥, 하고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우리가 얼마나 원했던 건지.

그녀는 나와 함께 몇번의 공모전에 도전하며 신인작가로 등단을 준비하다가 대학 졸업과 함께 다 그만두고 바로 결혼을 해 버렸다. 그녀의 집안 만큼이나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조건만 보고 한 결혼 같지만 그가 그녀에게 아주 오랫동안 열렬한 구애를 해왔다는 건 우리 동기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대대로 의사 집안의  잘생긴 의대생이던 그는 이제 강남 어딘가에 아주 큰 성형외과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짝이자 러브 스토리였다.


"너 아직도 아주 죽상이면 아르바이트나 소개해 주려고 온건데 살만하면 됐고."


그녀가 나를 떠 보듯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그녀의 애완동물 같은 나를 데리고 놀려는 유희일 뿐, 그녀는 내게 그 일자리를 소개시켜줄 것이 틀림 없었다.


"해 주세요. 아직도 죽을 것 같아요."


나는 주인님 앞에 배를 발랑 까 뒤집는 강아지처럼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내어 주었다. 그녀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한 내가 유일하게 이런 낯간지러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의도 자체가 너무 단순하고 또 유치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비비꼬아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 안에 무슨 숨은 의도가 있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녀의 말투나 행동은 나에게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글 쓰는 거야. 괜찮아?"


이번에는 그녀가 내 눈치를 보았다.


글을 쓰는 일.


우리에게 금기시 된 단어였다. 서로 그것을 얼마나 원했는지, 그리고 원하는 만큼 얼마나 처절히 도달하지 못했는지 알고 있는 사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성공이 보장된, 그리고 이미 성공한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게 실패의 기억을 안겨준 것이었고, 나에겐 단 하나 원했던 것이지만 갖지 못한 것이었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마. 대필이나 편집은 아니고 웹툰 스토리 작가 같은 거야. 그림은 꽤 잘 그리는데 글 쓰는데 소질이 없는 웹툰작가가 있대."


선배가 말했다.


"너는 참 이제 글도 안 쓴다며 어디서 그런 건 잘 알아온다?"


주인언니가 툭 끼어들었다. 윤하 선배는 언니를 매섭게 째려보았고 언니는 못본척 카운터로 돌아갔다.


"너도 그게 신기하니?"


선배의 얼굴에 다시 냉소적이고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나도 그녀를 따라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나는 아니라고 하는데, 이제 괜찮다고 하는데 주변은 그렇게 안보이나봐. 남편이 한번씩 이렇게 뭔가 '거리'들을 들고 와."


"형부가요?"


"어. 난 요즘 책도 잘 안 보거든. 짜증나. 잘 쓰는 놈들이 쓴 글을 보면 '얜 뭘 먹고 이렇게 잘써?'하면서 질투가 나고 못 쓰는 놈들이 쓴 글을 보면 '이런 것들도 소설가랍시고 글을 싸지르는데 내 글은 왜 안돼?'하면서 심술이 나."


그녀의 적나라한 심정표현에 큭큭 웃음이 터져나왔다.


"웃기지? 나도 이런 내가 웃긴데. 어쨌거나 내 정신 건강에 해롭더라구. 글을 쓰는 거, 보는 거 다. 넌 안 그래?"


"난 별 생각 안 하고 있어요. 나도 글을 안 쓴 건 꽤 됐고요. 읽는 것도......요즘은 잘 안하는 것 같네."


"됐어. 그럼 해. 이거. 소개해 준 사람이 남편 초등학교 후배고 웹툰 작가들의 소속사 같은 걸 하는 사람이래. 웹툰은 나도 잘 모르지만 요즘 인기 좀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뭐라더라? 그 회사에서 '밀어주려고' 신경써서 스토리 작가도 대표가 직접 알아보는 건데 글 쓰는 와이프 소개해 주려고 다른 사람 구하지 말랬다면서 엄청 뻐기더라 우리 남편이. 자기 마누라 글 안 쓴지 오랜데."


프랑스 여배우처럼 과장된 그녀의 표정과 제스처가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글을 쓰는 재능은 몰라도 생생한 감정을 표현하는덴 꽤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난 웹툰도 잘 모르고 스토리 작가는 더더욱 모르는데?"


"네가 언제 뭐 따지면서 돈 벌었니?"


그녀가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맞아.

나는 아르바이트의 신처럼 닥치는 대로, 시간이 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곤했다. 뭐든, 한푼이라도 벌어야 했으니까.

그런 내가 조금이라도 따지는 아르바이트가 있다면 '글 쓰는' 종류의 아르바이트였다. 처음엔 경험 삼아 편집이나 대필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그것이 너무 괴롭게 느껴졌다. 선배 말대로 나 보다 잘 쓰는 사람의 글을 만나면 자괴감에 빠졌고, 나 보다 못 쓰는 사람의 글을 만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솟았다.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쓸데없는 자존심 조각 중 하나였다.


"글 쓰는 와이프 대신 글 쓰고 싶어도 여건이 안되서 못 쓰는 와이프 후배 소개시켜준다고 할게. 됐지?"


선배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알아서 정리했다. 나는 그녀의 애완동물이자 일종의 페르소나로서 본체의 명령을 거절하지 못하고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내 책상 위에는 다이어리 한 귀퉁이를 찢은 메모지가 놓여 있고, 그 안에는 전화번호와 담당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윤하선배는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를 바로 내게 보여주지 않고 명품 로고가 가득 찍힌 가죽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를 쭉 찢어 한 눈에도 묵직하고 값 비싸 보이는 만년필을 꺼내 멋들이지게 사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전화번호를 옮겨 적어 주었다.


"이럴 때 밖엔 쓸 일이 없어서."


킥킥거리며 메모를 건내는 그녀는 사춘기 소녀 같았다. 아마도 '글 쓰는 와이프'를 위한 남편의 선물이겠지.

그녀의 남편은 글 쓰는 일, 또는 글 쓰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의 와이프가 '글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사실만은 뼈에 새긴 것처럼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혹은 출시 초기부터 그 내용이 입력된 컴퓨터처럼 '우리 와이프는 글을 쓴다'는  사실에 입각한 선물과 기회들을 지치지 않고 집으로 물고 왔다.

그게 선배에게 즐거움이었을지, 스트레스였을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즐거움이자 스트레스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은 그 수혜를 받는 건 나였다. 그녀의 페르소나.


"고마워요."


"인사는 됐고, 나도 타로나 봐줘."


나는 조금 놀랐다. 내게 이 일을 할 수 있는 장소와 사람을 소개시켜줬지만 한번도 내게 타로카드를 봐달라고 한 적이 없었던 그녀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제나 넘치는 행운이 따랐던 사람이기에 아마도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응."


"뭔데요?"


"......"


그녀가 말없이 부끄럽다는 듯 미소지었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질문을 말 안하고 볼 수는 없어?"


"그건 좀 어려워요. 질문을 모르는 채 상징만으로 카드의 의미를 해석하기엔 내용이 너무 광범위하기도 하고, 정확도가 떨어지기도 하고요."


"좀 쪽팔린데."


선배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것처럼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나는 기다렸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드러낸 적 없이 당당하기만 하던 그녀가 이런 반응을 할 만한 질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예상할만 했다.


"써보려고. 새해부터. 글을."


내 입꼬리가 실룩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솔직하고, 당당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구석이 있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얻지 못한 단 하나의 욕망을.


"글, 쓰면 돼죠. 질문이 뭔데요?"


 나는 모르는 척 침착하게 되물었다.


"내가 끝까지 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좌절하지 않고?"


나는 대답 대신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다시 카드덱을 쥐어주고, 섞고, 펼치고 뽑았다. 이 질문은, 이 꿈은 그녀의 것이자 나의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두근거리면서도 떨리는 마음으로 카드를 펼쳤다. 조용히 진행되는 과정은 내가 이렇게 신성하게 타로카드를 만졌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꽤 오랫동안 그녀가 뽑은 카드를 바라봤다.

평소의 그녀라면 대체 무슨 뜻이냐고 재촉할만하기도 한데 이번엔 그녀 역시 그 카드들을 가만히,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궁금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할 거라도 생각했다. 이 카드가 무슨 대단히 신성한 힘이나 예견의 힘을 가진 것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그녀에겐 작은 용기와 희망이 필요할테니 말이다.


"음......"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카드에 박혀 있었다.


"다른 것보다, 이 카드가 저는 가장 잘 보여요."


"......"


"성 안에 갇혀 있는 여자가 보여요?"


"......응."


"그녀가 갇힌 성문에 걸린 자물쇠도 보이고요?"


"응."


"그럼 자물쇠에 꽂혀있는 열쇠도 보이나요?"


"......"


그녀는 카드로 얼굴을 들이밀고 자세히 그림을 살펴보았다. 잘 보이지는 앉지만 잠긴 성문의 자물쇠에는 열쇠가 꽂혀져 있다.


"......보여."


"선배가 아주 좋은 상황, 아주 좋은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전보다 나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고요. 지금 선배의 마음은 갇혀 있는 게 맞거든요."


"......."


"하지만 나올 수 있어요. 열쇠가 있으니까. 이 성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 갇힌 것이 선배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봐요. 누군가 선배를 가두고 나오지 못한 것인지, 그 핑계로 나오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러면 새로이 상처 받을 일은 없으니까요."


"......"


선배의 눈은 카드에 못박힌 듯 흔들림이 없었다.


"나오고 싶다면 스스로 나오면 돼요. 선배 자신 외에 선배를 가두는 건 없어요. 상처받을까, 좌절할까, 혹은 큰 소리치로 시작해놓고 흐지부지 끝날까 하는 고민은 모두 선배가 만든 성일 뿐이죠.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열고 나오는 것이에요. 사실은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을 거에요."


윤하 선배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나와 비슷한, 하지만 나 보다 좀 더 나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그녀를 바라 봤다. 나는 거울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쉽네?"


그녀의 자신감 넘치면서도 묘하게 냉소적인 미소가 다시 입가에 스며들었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웃듯 나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Eight of Swords (여덟개의 칼): 스스로 자기 자신의 생각의 틀에 갇혀 있는 상태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생각이 너무 많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있지만 현실을 도피하는 것으로 피하려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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