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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maya Oct 04. 2024

러브샷




*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나 컨셉외의 모든 인물과 나오는 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

*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빌리버튼)'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요!

















진주는 나를 식탁 앞에 앉혀두고 냉장고를 뒤적여 몇 가지 재료를 꺼냈다. 커다란 새우, 마늘, 방울 토마토, 비누처럼 생긴 딱딱하고 납작한 치즈.


"감바스를 해줄게요. 할 줄 아는 게 몇 개 없어요."


진주가 말하고 돌아서서 멋스러운 나무도마를 꺼내더니 깐 마늘을 얇게 썰기 시작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여러번 해 본 솜씨처럼 능숙했다.


"마늘 많이?"


진주가 묻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진주는 마늘을 한 줌 더 꺼내어 편마늘을 잔뜩 만들고는 토마토와 새우를 씻었다. 토마토는 구멍이 숭숭 뜷린 채에 받쳐 물기를 빼고 머리와 꼬리가 달린 큼지막한 새우는 물에 헹구듯 씻고 몸통의 껍질을 벗겼다. 마늘보다 더 수북히 새우 껍질이 옆에 쌓였다. 그는 그걸 모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마도 중간 중간 치우면서 요리를 하는 타입인 듯 했다. 나는 요리에 집중한 그를 잠시 바라 보다 물었다.


"진짜 이름은 뭐에요?"


기름에 마늘을 볶느라 뒤적거리던 진주의 어깨가 툭, 하고 멈췄다.


"왜요?"


진주가 돌아봤다. 그의 얼굴은 큰 감정을 드러내는 적이 없다. 대부분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데 이번에도 돌아보는 그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으려면 아마도 농도 옅은 미소의 차이나 그 미소 뒤의 한겹 숨겨진 것을 읽어야 하는 거겠지.

나는 그것을 읽기 위해 그를 가만히 들여다 봤다.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도 아니고, 누군가를 놀리는 웃음도 아니다. 그냥 날 때부터 그려진 입술의 곡선이 그렇다. 약간의 호기심을 머금은, 소년 같은 미소.


"왜 그렇게 빤히 봐요?"


진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어깨만 들썩 해 보였다. 궁금해 하라지.


"그 영화 알아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진주가 다시 뒤 돌아 요리에 열중하며 물었다. 기름이 달궈진 팬에서 치이익 하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나는 향긋한 마늘 향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네. 이름은 들어 봤어요. 아직 보진 않았고요."


또 치이익 - 하고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소한 새우향이 뒤따랐다.


"나도 안 봤어요."


진주가 또 어깨 넘어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저건 즐거움의 미소다. 개구쟁이 같은 미소.


"근데 그 말이 좋더라고요. Call me, by your name.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달라니. 그 말이 좋았어요. 네가 여기에 있든 없든 우리가 같이 있다는 뜻 같아서요. 누군가를 나를 부를테고, 내가 존재하는 한 나는 진주와 함께 있는 거잖아요. 어차피 진주는 말을 못하니까 내 이름을 쓸 수 없겠죠. 손해 볼 거 없는 장사에요."


진주가 또 씨익 웃었다. 그리고 다시 요리에 열중했다. 나는 팬을 이리 저리 기울이고 그 속에 있는 것을 열심히 볶고 있는 진주를 두고 거실로 나왔다. 그날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밤이지만 커다란 창 밖으로 뒤틀린 소나무가 보였다.

일 이주 사이에 내 마음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나.

나는 윤주와 완전히 헤어졌고, 가족들과도 완벽히 분리됐다. 몸은 진작 헤어졌지만 내 마음까지 그랬냐고 묻는다면 당당히 그랬다고 답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그들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 순 없어도 내 마음에서 그들이 떨어져 나간 것은 분명하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젠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홀린 듯 기묘한 소나무의 방향을 땅에서부터 눈으로 천천히 쫓아 올라갔다. 수직으로 올라가던 나무는 내 어깨 쯤 되는 높이에서 꽈배기처럼 한번 몸통을 비틀어 수평의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내 키 정도 되는 길이 만큼 땅과 수평으로 가더니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듯 다시 조금 비틀려 머리 꼭지의 방향은 사선으로 위로 솓아 있었다. 방향을 바꿀 때마다 손으로 쥐어 짠 빨래처럼, 꽈배기 마냥 틀어진 거친 결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내가 보낼 수 없는 존재가 있나?


나는 날려 보낸 내 곁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순간은 뒤틀리듯 아팠지만 결국 나와는 방향을 달리해 뻗어나가 버린 사람들을. 그 이름을 내가 갖더라도 어떻게든 보내지 않고 싶던 존재가 나에겐 없었다. 나는 그들을 떼어내 보냈다.

하지만 내가 떠나왔든, 그들이 나를 떠나갔든 서로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누군가 떠나간 자취는 옹이 구멍처럼 공허했다.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한 그 마음의 종류와는 별개로 허전했다. 돌아가거나 돌아온다고 해서 다시 메워질 것 같진 않았다. 그건 그저 끝이 났다는 것에 대한 공허였다.

누구나 마음 속에 이런 공허가 있을테지만 나처럼 이렇게 순식간에, 수 많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적절히 적당한 때를 알지 못하고 안으로만 끌어 안고 있었던 내 잘못이다. 그렇지만 끌어 안고 끝까지 가 볼 수 밖에 없는 존재들 아닌가. 마음을 좀 먹는 줄 모르고 끌어 안고 있었던 것은 잘못이지만 쉽게 버릴 수도 없는 관계들이었다. 소나무의 기둥처럼 생각들이 엉키고 뒤틀렸다. 마음이 춥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저녁 먹어요."


진주의 목소리가 공허 속에서 나를 꺼냈다.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귀여운 봉구와 그 밖에 수 많은 강아지들과 함께한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애의 귀 봤어요? 그 애의 발바닥 냄새 맡아봤어요? 그 애가 아까 어떻게 배를 뒤집고 있었는지 알아요? 내 아이의 재롱을 복기하는 부모처럼 별 것 아닌 것에도 웃고 신기해했다. 별것 아니고 가벼운 에피소드들이 저녁 식사의 주제가 이런 것들이라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TV 드라마 속에 들어 온 기분이었다.


"새해엔 뭐해요? 가족들과 보내나요?"


진주가 이렇게 묻기 전까지는.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얼마나 말해야할까. 그는 어느 정도나 듣고 싶은 걸까. 짧은 시간이지만 머리속에 수 많은 질문들이 오갔다. 그에게 괜한 걸 물었다는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혹시나 두고 두고 나에게 흠이 될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 가족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것이고 그건 내가 가족이 있든 없든, 떠나든 버렸든 피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곤란한 얘기면 안해도 돼요."


문득 툭 하고 멈춰버린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진주가 내 기색을 살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곤란하지 않다는 뜻인지, 이야기 하지 않겠다는 건지 스스로도 정하지 않고 나와버린 행동이었다.


"곤란한 이야기만 나오면 뚝딱거리게 돼요, 나."


내가 어색하게 웃었고 진주도 내 눈치를 보며 미소지었다.


"가족 없어요. 크리스마스를 보낼 가족도, 새해를 보낼 가족도. 생일을 보낼 가족도 없고요.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에요. 영원히 혼자일 것 같아요."


내 극단적인 대답에 진주가 포크를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손을 밑으로 툭 떨어뜨렸다. 극단적으로 대답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오히려 사실적으로 말하려던 것이 꽤나 과격하고 극단적으로 나와버렸다. 그게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도망쳤어요. 내가 살고 싶어서."


"......"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올만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한편으로는 어찌보면 나에겐 해피엔딩일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내가 가족들과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런 평화로운 이별 말고는 없었을테니까. 하지만 진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머리를 꼭 안아 주었다. 아, 저런, 이라고 한숨처럼 내쉬는 그의 위로가 머리 위에 툭 떨어졌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걸요."


그의 배에 머리가 꾹 눌린채로 웅얼거리듯 덧붙였다. 그는 다 괜찮다는 듯 내 어깨를 토닥거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펑펑 울기라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몽글몽글 따뜻한 포옹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놀랄만큼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눈가는 촉촉하긴 커녕 집안의 건조한 공기로 뻑뻑한 지경이었고 마음 역시 먼지가 일어날만큼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저 깊은 공허와 허무가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을 뿐. 그 구멍으로 찬 바람만 이리 저리 불어올 뿐.


"동정은 괜찮아요. 불쌍한 시기는 거의 다 지나갔으니까."


나는 진주의 허리를 밀어 냈다. 진주는 내 옆의 식탁 의자를 빼 앉아 나를 마주 바라 보았다. 내 두 손은 그의 두 손에 잡혀 있었다.


"그래서 늘 그렇게 날카로웠군요?"


진주가 말했다. 그 순진한 듯 눈치없는 질문이 짜증나서 그에게서 손을 빼 슬쩍 밀어버렸다. 눈치 같은 거 없어도 되는 삶을 살고 있는 그의 순간들이 툭 튀어 나올 때마다 그가 참 얄미웠다.


"......정말 숨쉬듯 무례하시네요, 매번."


하지만 반대로 그가 눈치 없이 솔직할 때마다 나 역시 눈치 안 보고 톡 쏘아붙일 수 있는 것은 좋았다. 상처받을까봐, 받은 상처를 다시 나에게 쏘아낼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난 그 날카로움이 좋은 걸요. 재미있어요."


내가 아무리 쏘아 붙여도 딱히 타격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이런 종류의 사람은 종종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진주라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감정은 마음에 담되 쓰레기는 거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귀신같이 그것을 구별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나도 이렇게 눈치 없이 구는 진주씨가 얄밉지만 웃겨요."


진주가 정말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무안을 줘도, 짜증을 내도 그는 늘 이렇게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런 것쯤에는 전혀 상처 받지 않는다는 듯 와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 남자에게서 정말 부러워 하는 것, 어딘지 매번 지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건 이런 그의 태도에 대한 내 열등감 때문이라는 걸.

그의 나이, 재산, 인지도, 능력, 성격, 인맥 등 나 보다 월등히 나은 그의 상황이나 환경은 나에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나는 지금껏 나보다 잘나고 잘사는 사람들을 수천, 수만명은 지나쳐 왔으니까. 누구를 만나도 나보다 못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 것 하나 하나에 상처를 받거나 열등감을 느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미치거나 죽거나, 그랬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늘 진정해야했고 너무 많은 것을 느끼지 말았어야 했으며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빠른 티를 내지 않고 살아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상처를 받지 않았겠는가.


도리어 더 많이 괴롭고 아프고 좌절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을 드러낼 여유가 전혀 없었다. 약점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 보이는 것은 사치였다.

이 남자는 상처를 받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뾰족하게 구는 내가 재미있다는 듯 행동했다. 그 뾰족함은 발끈하는 자존심마냥 어렵사리 감춰둔 나의 열등감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내 매력처럼 느꼈다.

반대로 나는 그것에 끌렸다. 그의 아무렇지 않은 솔직함이 기분이 나쁠 때도, 밉고 짜증날 때도 있었지만 그가 가진 구김 없는 여유가 부러워서 끌렸다.

그 아이러니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란.


"비참해."


나는 그를 가만히 쏘아 보다가 나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참아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뭐가?"


진주가 물었다.


"들키는 기분."


"뭘?"


진주는 나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이 어린 녀석이 무언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게 싫었다. 그가 싫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 그렇게 이해되는 내가 싫었다.

언제나 동등하고 싶었다.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걸 꿈꿨다. 내 사랑의 무게와 상대방이 보이는 사랑의 무게가 같아 보이기를. 뭘 더 배려 받는다거나 인내해 주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것이길 바랐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엉키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런 걸 원했나? 꿈꿨나? 모르겠다. 온화하고 평온한 일상 속에서 아무일 없는 듯 사는 것이 꿈이라고 믿어왔는데 사실은 내 깊은 곳 어딘가에 열정에 불타는 삶을 욕망하고 있었을까? 언제나 사랑을 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은 나도 엄마와 비슷한 인간이었던 걸까?


"날 좋아하는 걸?"


진주의 한 마디에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통통볼이 떨어진 것처럼 철렁하고 떨어지더니 이내 퉁, 퉁, 하는 반동이 느껴졌다. 진주의 손이 슬며시 다가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손바닥으로 옆머리 살며시 감쌌다. 따뜻한 진주의 온기가 귓가와 관자놀이에 퍼졌다. 나의 관자놀이와 진주의 손바닥에서 뛰는 맥박이 서로 다른 박자로 쿵쾅 거렸다. 내가 쿵, 진주가 쾅, 내가 쿵, 진주가 쾅, 쿵, 쾅, 쿵, 쾅, 쿵쾅쿵쾅......


"내 이름은, 경서에요."


유연하고 능글맞은 남자애를 속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는 여전히, 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미숙할 것만 같았다. 적어도 연애에 있어서는.





Two of Cups (두개의 컵) : 좋은 파트너십, 동업, 새로운 연애의 시작 또는 관계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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